2010년 4월호

책 읽는 여자는 아름답다

  • 입력2010-04-02 1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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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꿀벅지’ 소녀시대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학생들 사이에 최고 인기를 끈 여학생은 문학소녀였다. 남학생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여학생에게 다가와 쓸데없는 말 한마디 툭 붙이고 돌아서곤 했다. 책 읽는 여학생은 우아하고 고상하게 보여 사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소녀들에게 즐겨 있는 책의 장르와 공원 벤치용 장르가 따로 있었다. 혼자 읽을 때는 선정적인 연애소설을, 홍보용 책은 사색을 필요로 하는 철학 위주로 선정했다. 책은 취향을 드러내기 때문에 절대로 연애소설이나 잡지를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역시 여성용 잡지다. 여자들은 미용실이나 찜질방에서 잡지를 절대로 놓지 못한다. 화장법을 비롯해 여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물론이요 수다의 원천인 스타들의 동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통속적인 잡지에 빠져 있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루셀의 ‘책 읽는 처녀’다.

    젊은 여인이 벌거벗은 채 잡지를 읽고 있다.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와 벌거벗은 몸은 강한 대비를 이루는데 머리 모양은 처녀임을 나타내며 벌거벗은 몸은 육체적 갈망을 암시한다. 여인이 음부 위에 펼쳐놓은 책은 뜬소문이 주류를 이루는 통속적인 잡지를 암시하며 여자의 붉어진 뺨과 손은 잡지의 통속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배경의 검은색 커튼은 여자의 벌거벗은 몸과 잡지를 강조하면서 은밀한 공간임을 나타내며 의자 위의 걸쳐놓은 기모노는 실내복으로 여자가 편안하게 잡지를 읽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그려진 기모노는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옷이다. 자포니즘의 영향으로 일본풍의 옷이나 가구가 당시 유럽을 휩쓸었다. 테오도르 루셀(1847~1926)의 이 작품은 19세 모델을 기용해 제작한 것으로 런던에서 전시되었을 때 비난을 받았다. 아름다운 주제를 외설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였다.



    책은 편안하게 읽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도 읽기 불편하면 노동이다. 밥을 먹는 것처럼 편안해야 책 읽는 것이 즐겁지 노동이 되면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다. 침실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발라동의 ‘누드’다.

    침대에 앉아 있는 여인은 책 읽기에 빠져 있다. 침대 기둥에 걸려 있는 옷과 뒤로 젖혀져 있는 이불은 그녀가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으며 책에 몰입해 있음을 암시한다.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와 군데군데 선홍빛을 드러낸 여인의 벌거벗은 몸이 아침임을 나타낸다. 하얀색의 침대 매트리스가 그녀의 무게 때문에 아래로 내려앉았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침대는 작품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닫힌 문의 고리가 잠겨 있는 것은 여인이 책의 세계에 빠져 있음을 나타내며 발밑에 깔린 붉은색 바탕에 기하학 무늬로 수놓인 양탄자는 책의 내용이 복잡함을 암시한다.

    쉬잔 발라동(1867~1938)의 이 작품에서 붉은색과 노란색 줄무늬 이불은 여인의 우윳빛 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여인의 몸을 강조한다. 미모와 아름다운 몸매로 19세기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누드모델로 가장 유명했던 발라동은 66세 때 자신의 노년 모습을 누드화로 제작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책 읽는 여자는 아름답다

    (좌) <책 읽는 처녀> 1886~87년, 캔버스에 유채,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우) <누드> 1922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시립미술관 소장



    책 읽는 여자는 아름답다

    (좌) <서 있는 여인의 나체화> 1910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우) <마릴린 먼로가 율리시즈를 읽다> 1952년, 사진

    지식과 지혜를 뛰어넘어 삶의 자양분을 선사하는 책은 평생 가까이해야 할 목록 중 하나다. 하지만 볼 것이 넘쳐나는 영상시대에 책 읽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가만히 시선만 고정시키고 있어도 텔레비전에서 알아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책은 다양한 정보를 순식간에 쏟아내는 텔레비전과 다르게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마르케의 ‘서 있는 여인의 나체화’다.

    벌거벗은 여자가 두 손으로 책을 움켜쥐고 서 있는 자세로 책을 읽고 있다. 여인의 시선은 책에 집중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한쪽 다리를 앞에 내밀고 있는 자세는 안정감을 준다. 창문은 보이지 않지만 창문 사이로 들어온 햇살은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알베르 마르케(1875~1947)의 이 작품에서 벽에 걸린 그림들은 화가의 아틀리에임을 나타내며 흔들의자와 여인의 서 있는 자세는 그녀가 모델임을 암시한다. 그는 파리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이 작품을 제작했으며 모델은 동거녀였던 이본이다.

    미모는 선천적인 것이고 지성은 후천적인 것인데도 풍만한 몸매를 가진 여인은 책은 읽지도 않고 오로지 미모만 가꾸는 줄 알고 있다. 미인이라고 지적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인들도 책을 읽는다. 책 읽는 미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널드의 ‘마릴린 먼로가 율리시즈를 읽다’다.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볼 마릴린 먼로가 비키니 차림으로 나무 둥치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와 좁은 나무 둥치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먼로의 자세, 그리고 책에 고정되어 있는 시선은 그녀가 책을 집중해서 읽고 있음을 나타낸다.

    책 읽는 여자는 아름답다
    박희숙

    동덕여대 미술학부 졸업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졸업

    강릉대 강사 역임

    개인전 9회

    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클림트’ ‘명화 속의 삶과 욕망’ 등


    이브 아놀드(1913~)의 이 작품에서 풍만한 가슴이 드러나는 비키니 차림은 먼로가 섹스 심볼임을 암시하며 또한 그녀가 사진 촬영 중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먼로는 사진 촬영용으로 ‘율리시즈’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촬영 중 휴식시간에 짬을 내서 실제로 읽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먼로와 10년 동안 친구로 지내오면서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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