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펀드가 한창 잘나갈 때야 투자자나 판매자 모두 투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고 신이 났지만 끝도 없이 추락하는 펀드 수익률 앞에서 투자자들의 비난은 당연히 판매사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예측이 어려운 시기라면 금융계는 더더욱 섣불리 입을 열기 어렵다. 금융계가 내심 펀드 이동제를 경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나마 위축된 투자심리를 자극, 자본의 대거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증권사로
펀드 이동제가 실시된 첫날인 지난 1월25일, 은행과 증권사 창구는 의외로 한산했다. 이후로도 펀드 이동제의 영향으로 대규모 자산 이동이 있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펀드 이동제 실시 이후 한 달간 자본 이동 규모는 약 1000억원. 하루 평균 300건이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액수도 하루 평균 51억원 정도로 2010년 3월2일 현재 펀드 이동이 가능한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116조원 중 겨우 0.01%만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외의 소규모 이동인 셈이다. 금융계의 모습 역시 침착하고 담담하다. 펀드 이동제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높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펀드판매사 이동제도는 휴대전화의 번호 이동처럼 보유 중인 펀드를 환매수수료, 선취판매수수료 부담 없이 다른 판매사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제도다. 위탁판매계약이 맺어진 모든 펀드 판매사로 이동이 가능하되 해외펀드나 온라인 펀드, 지방은행이 운용하는 펀드나 운용사와 판매사가 같은 자체 펀드 등을 제외한,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는 공모펀드로 그 대상이 한정된다. 따라서 펀드판매사를 갈아타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펀드 계좌가 이동이 가능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런 다음 기존의 판매사를 방문해 펀드판매사 이동에 필요한 계좌확인서를 발급받고, 계좌확인서 발급 후 5일 이내에 이동할 판매회사를 방문해 새로운 계좌를 개설, 이동 신청을 해야 한다. 한번 판매사를 이동하면 3개월 내에 재이동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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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판매한 펀드에 불만을 가진 고객은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러 갔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창구직원의 말만 믿고 덥석 가입했다가 낭패를 보았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익이 한창 날 때야 은행예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득을 챙길 수도 있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상태에서 가입한 펀드는 증시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탓이다. 이 때문에 펀드의 ‘펀’자도 모르던 고객들이 한창 펀드 열풍이 불던 때 예금 대신 가입했던 펀드를 이제야 제대로 관리해볼 요량으로 증권사로 옮겨가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