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의미에서 전작권 전환 결정과정과 관련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당시 군 수뇌부의 행보는 사뭇 의외입니다. 뚜렷한 주관이나 판단 없이 대통령과 예비역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것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먼저 짚어둘 것은 전작권 문제가 결정되던 2006년 봄 군 수뇌부는 2012년 전작권 전환에 대해 완전하게 합의한 바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상희 당시 합참의장이나 각군 총장 모두 말이죠. 여기에는 2007~11 국방중기계획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기계획대로 전력 확충이 이뤄진다면 2012년에 전작권이 전환돼도 주한미군 대체전력은 확보할 수 있겠다고 합의한 것이고,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보고한 것이죠.
그러다가 예비역들이 반대하고 나서자 그해 8월경부터 이상희 의장의 입장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당초 노 대통령과 윤광웅 장관은 2009년 환수 입장이었지만 합참과 군의 보고에 따라 이를 2012년 안으로 양보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마저 흔들리고 합참의장의 말이 바뀌니까 노 대통령은 불신을 느끼게 된 것이죠. 대통령의 진노에 맞닥뜨린 군은 결국은 대통령의 지침에 다시 소극적으로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2012년 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콤플렉스와 마타도어
당초 “전력 현대화를 위해 국방비를 증액한다면 2012년까지 전작권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보고했던 이상희 의장은, “2006년 여름 이 문제에 관한 보수 여론이 부정적으로 기울자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였다”고 김 편집장의 책은 기술하고 있다. 2012년까지 준비하는 데 이상이 없겠느냐는 대통령의 질문에 이 의장이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아 대통령이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 두 달이 지난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장에서 노 대통령이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지자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대통령과 군 수뇌부 사이에 싸늘한 냉기가 흘렀고,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이 이를 두고 “합참의장이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는 게 김 편집장의 기록이다.
이와 관련해 책에는 당시 이상희 합참의장이 한 예비역 장성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예비역 장성의 말을 잠시 인용한다.
“예비역들이 전작권 협의와 관련해 청와대에 협조하고 있는 이 의장을 다그치면, 그는 ‘일단 전작권 전환에 협조하면 국방비가 많이 확보된다’며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했다.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실제로 환수하기까지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당장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대신 자신의 재임기간 중 전력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한다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기울었던 것 같다.”
다시 김 편집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당시 이 문제에 대해 군의 진정한 소신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슬픈 대목입니다. 통수권자의 지침과 예비역들의 여론 사이에서 끊임없이 정치를 하느라 바빴다는 거죠. 특히 전작권 논의에 관여했던 당시 군 수뇌부가 정권교체 후 ‘나는 이렇게 노무현에 저항했다’는 방증으로 그때의 논란을 역이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이러니한 대목이라고 봅니다. 심지어는 당시 함께 논의에 참여했던 군 선후배나 동기생들끼리 ‘저쪽이 주무였다’고 마타도어를 뿌리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 정작 노무현 대통령 본인이 자주국방론을 통해 당시 군 수뇌부의 이러한 국방예산 증액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 더욱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구호로 당선된 정권의 지지층 입장에서는 의외였을 테고요.
“노 대통령이 자주국방이라는 이슈를 꺼내든 것에는 자신에 대한 군의 비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고 봅니다. 대선 때부터 ‘강한 국가’를 표방함으로써 이른바 ‘장인 빨치산 전력’ 문제로 인한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정치적 시도가 있었고, 재임기간 내내 이를 의식했으니까요. 군에 대한 의식적 존중과 배려가 자주국방론이나 비약적인 국방예산 증가로 나타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은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의 부국강병론자는 아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장수 장관의 ‘당선인 보고’
이러한 우여곡절과는 어울리지 않게 정작 전작권 전환 시점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과정은 맥이 빠질 정도다.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이 마치 농담하듯 한국의 2012년 안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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