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살펴볼 다음 요소는 북한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 현재 북한 주민 가운데 탈출 여건이 마련될 경우 탈출을 시도할 만큼 경제적·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체제 불안요소가 될 수 있는 주민들을 원천적으로 격리하기 위해 이른바 성분조사 작업을 실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분류된 3계층 51개 부류에 대해 진학과 직장 선택, 의식주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별정책을 실시했다. 이 3개 계층 가운데 핵심계층(지배계층)이 594만명(28%), 동요계층(기본계층)이 954만명(45%), 적대계층(복잡계층)이 573만명(27%)을 차지한다.
이 가운데 그간 체제 차원에서 불이익을 받아온 적대계층은 우선적으로 탈출의지를 갖게 될 이들이라고 가정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적대계층 총인원 573만명 중 노약자나 신체장애자, 그 가족 일부를 제외한 약 350만명을 이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탈출경로의 통제 가능성이나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이들 전부가 난민이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탈북자 설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탈출의지를 가진 350만명의 20%인 약 70만명이 탈북을 실제로 결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북한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보고한 북한 총인구 약 2300만명 가운데 급변사태시에도 탈북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 평양의 특권층 약 300만명을 제외한 이들의 3.5%에 해당하는 숫자다.
난민은 체제의 통제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는 시점에서 증가하기 시작해 정권이 붕괴되는 급변사태 상황에서 급증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체제 통제력이 약화되는 시점과 통제력이 완전히 상실되는 시점을 구분해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역시 독일의 사례를 준용해보면 북한의 경우 체제 통제력이 약화되는 시기에 전체 난민의 15%인 10만명이, 정권이 붕괴되고 통제력을 상실할 때 나머지 85%에 해당하는 60만명 규모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 가지 경로
물론 이들 난민이 모두 국경이나 휴전선을 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들이 어느 경로를 거쳐 어느 지역으로 탈출할 지를 예상하려면 우선 북한의 지형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전면적의 70%가 산악이며 평균고도가 440m에 달하는 험준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 큰 바가지 여러 개를 엎어놓은 듯한 산지구획형(山地區劃形) 지형으로, 산과 산 사이에 도로와 철도가 개설돼 있고 이 도로와 철도를 통해서만 이동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중국과의 국경 또는 휴전선으로 탈출하기 위해서는 주로 남북으로 연결된 도로와 철도를 이용해야만 하는 구조다.
북한 지역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도로와 철도는 서부, 중부, 동부로 구분해볼 수 있다. 서부에는 서울에서 신의주에 이르는 1번 도로, 휴전 후 북한이 개설한 평양-개성간 고속도로(평개고속도로)가 있고, 철도는 서울에서 신의주에 이르는 경의선이 부설돼 있다. 중부지역 도로는 의정부에서 곡산에 이르는 3번 도로와 의정부에서 구읍리에 이르는 43번 도로가 있고, 철도는 서울에서 원산에 이르는 경원선이 있지만 현재는 비무장지대에서 단절돼 있다. 동부지역 도로는 강릉에서 원산에 이르는 7번 도로와 인제에서 신고산에 이르는 31번 도로가 있고, 철도는 동해선이 있다.
이들 가운데 서부의 1번 도로와 경의선 철도, 동부의 7번 도로는 남북 합의에 따라 이미 연결돼 있는 상태다. 북한 급변사태시 한국 정부가 난민을 수용하기로 결정할 경우 이들 도로와 철도는 곧바로 혹은 소규모 공사를 거쳐 탈출 유도경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경로로 어느 정도의 난민이 이동할 지 추산하려면 거주지와의 인접성을 고려해야 한다. 휴전선 인근의 황해북도에 거주하는 주민이 휴전선으로 바로 남하하는 경로 대신 평양을 거쳐 자강도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을 시도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이는 현재 압록강을 건너 한국으로 입국한 북한 이탈 주민의 대부분이 중국 국경과 인접한 지역 출신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입증된다.
북한의 지형을 고려할 때 탈출경로는 크게 중국과 러시아로의 국경탈출, 휴전선을 통한 남한으로의 지상탈출, 일본 및 한국으로의 해상탈출로 나누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해상을 통해 일본으로 향하는 경우는 북송 재일교포와 그 가족, 친척 등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고, 역시 선박으로 남한으로 향하는 경우도 북한 동해안이나 서해안 축선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제한될 공산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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