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2월 완성된 미국의 핵 사용 작전계획 8010-08 표지.
이어 3월2일 열린 미일 안보실무협의에서 일본 측이 미국의 핵 억제력 감축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당국자들이 참석한 이 회의는 핵우산의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자리였다. 북한의 핵개발에 촉각이 곤두선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 차원에서 공식 제기된 것으로 확인되자, 일본 국내 여론도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토마호크 핵탄두 퇴역을 양해한 것으로 알려진 하토야마 내각에 대해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악화된 미일 관계를 만회하기 위해 악수(惡手)를 둔 것”이라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핵 없는 세계’를 표방한 오바마 행정부의 핵무기 감축 정책이 속도를 냄에 따라 일본 전체가 이른바 ‘핵우산 논란’에 휩싸여 있는 데 비해, 같은 핵우산 아래에 있는 서울은 전혀 기류가 다르다. 토마호크 문제만 해도 3월5일 ‘중앙일보’가 “일본에는 퇴역 사실이 통보됐지만 한국 정부에는 언급이 없었다”며 “이는 한미정상회담 등에서 약속돼온 ‘확장된 억제력(extended deterrence)’의 약화를 의미할 수 있다”고 보도했지만, 반향은 거의 없었다. 한 일본 외교관은 “한국 정부나 국민이 미국의 핵 감축이 자국 안보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무신경한 게 놀랍다”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에 대한 핵우산이 사실상 같은 무기체계와 작전개념에 의해 운용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꿈
최근 미국이 차근차근 구체화하고 있는 이러한 변화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월 중 의회에 제출하기로 돼 있는 ‘핵정책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에서 더욱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핵정책보고서는 향후 5~10년간 진행될 미국의 핵무기 관련 예산 배정과 운용 배치의 큰 뼈대가 되는 문서로,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핵정책보고서는 북한을 사실상 핵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해 한반도 안보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초 지난해 말 발표하기로 했다가 이미 세 차례 연기된 오바마 행정부의 핵정책보고서는, 냉전 종식 이후에도 지속돼온 기존의 핵무기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나 동맹국은 물론 전세계의 안보지형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존 핵탄두를 30~ 40%가량 감축하는 대규모 핵 폐기 조치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계기로 러시아와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후속안에 합의한 뒤 4월 워싱턴 핵안보 정상회의와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회의를 통해 명실 공히 핵군축 시대를 열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NPR을 통해 공식화될 핵무기의 대량 감축이 핵무기의 ‘역할 재조정’이라는 기본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월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그라운드제로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안보에서 핵무기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쉽게 말해 미국이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나 대상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북한이 과연 미국의 유사시 핵 사용 타깃에 계속 포함될 것인지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다.
미국의 핵무기 운용과 배치는 우선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의 자문을 받아 작성하는 핵정책보고서를 통해 큰 그림이 그려지고, 그에 따라 국방부와 전략핵무기 운용을 담당하는 전략사령부(STRATCOM)에 관련 전략지침이 하달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이에 따라 전략사령부는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때의 교리와 작전계획을 작성하고, 그에 알맞은 핵무기 배치와 적정수량을 도출하게 된다. 이에 맞춰 핵무기가 부족하면 추가로 생산·배치하고, 특정목표를 위해 새로운 핵탄두가 필요하면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