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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의 하마스 간부 암살 작전 전모

무심결의 인터넷 호텔 예약, ‘죽음의 사자’ 불러들이다

  •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모사드의 하마스 간부 암살 작전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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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행, 잠입, 침투, 그리고 암살. 냉전시대 스파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을 법한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이 중동의 현실이다. 1월19일 발생해 2월 하순 전세계 언론을 장식한 두바이에서의 암살사건은 그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고위 간부가 사고사를 위장해 살해된 이 사건의 뒤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뒤에 놓인 이스라엘과 이슬람 세력 사이 살육전의 역사를 하나하나 해부했다.
모사드의 하마스 간부 암살 작전 전모

1월19일 살해된 하마스 고위 간부 마흐무드 알마브후흐가 알부스탄로타나 호텔에서 객실로 들어가기 직전 폐쇄회로 TV에 찍힌 화면. 뒤쪽에 알마브후흐가 예약한 방을 확인하기 위해 테니스복 차림으로 미행해온 살해 용의자 2명이 보인다.

1월19일 오후 3시15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국제공항에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출발한 에미리트항공 소속 EK912편 항공기가 도착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가방을 든 채 공항을 빠져나왔다. 택시를 잡아탄 그는 공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알부스탄로타나 호텔로 갔다. 체크인을 한 그는 자신의 서류가방을 호텔 안전금고에 맡긴 후 예약했던 230호로 들어갔다. 230호는 발코니도 없고 창문도 밀폐된 객실이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그는 한 시간 후 시내 구경을 나가는 듯 외출했다.

오후 8시24분, 새 신발이 들어 있는 비닐 백을 들고 호텔로 돌아온 그는 다음날 오후 1시20분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체크아웃 시간이 돼도 그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호텔 직원들은 비상열쇠로 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처럼 침대에 다소곳이 누워 있는 시체. 호텔 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일단 자연사로 추정했다.

사인(死因)은 9일이 지난 후에야 밝혀졌다. 두바이 경찰청 소속 검시관 파우지 빈 오므란 박사는 사체를 부검하고 각종 검사를 실시한 끝에 살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27년 경력의 오므란 박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살인 방법이 교묘했기 때문이었다.

부검 결과 피살자는 귀와 다리, 가슴, 성기 등에 전기충격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 오므란 박사는 피살자가 전기쇼크에 따른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위장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피살자가 숨져 있던 침대의 전등이 분해돼 있었고, 피살자는 심장질환으로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심장질환이 있는 고혈압 환자가 전기충격을 받을 경우 사망할 수 있다. 오므란 박사는 전등을 잘못 조작해 전기 충격으로 자연사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피살자의 진짜 사인은 누군가 얼굴을 베개로 덮어 질식케 한 때문이라는 것. 베개에는 피살자의 코에서 나온 혈흔이 남아 있었고, 피살자의 몸에는 수술 마취제로 자주 사용되는 근육이완제 숙시닐콜린이 투여된 것으로 밝혀졌다.

‘Do not disturb.’



사인이 살인으로 판명되자 두바이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가장 먼저 확인된 사실은 피살자의 이름과 여권이 모두 가짜였다는 점이었다. 피살자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고위 간부 마흐무드 알마브후흐(50)였다. 알마브후흐는 1989년 이스라엘 병사 두 명을 납치하고 살해한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물이다.

하마스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의 창설멤버였던 그는 가자지구에 무기를 밀반입하는 총책이었다. 그가 두바이를 방문한 목적은 이란의 무기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경호원조차 대동하지 않은 채 극비로 두바이에 온 그는 독살을 우려해 항공기에서는 물론 공항이나 호텔에서도 물이나 음식물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이처럼 조심스러운 행보에도 불구하고 그가 암살됐다는 것은 범인들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두바이 경찰은 범행수법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과거 암살사건들과 유사하다고 보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두바이 경찰은 호텔과 공항에 설치된 CCTV를 토대로 범인들의 윤곽을 좁혀갔다. 두바이 경찰이 공개한 CCTV를 보면, 암살단은 알마브후흐가 두바이에 도착하기 전 두바이 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왔고 알마브후흐의 방 건너편인 237호에 투숙했다. 알마브후흐가 체크인할 때는 테니스 라켓을 든 반바지 차림 암살자 2명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따라붙어 직접 투숙 객실을 확인했다. 알마브후흐가 외출했다가 다시 호텔 방으로 들어간 지 3분 후 복도에서 여성 암살단원이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 잡혔다.

알마브후흐의 방은 카드로 개폐가 되는데, 오후 8시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카드로 방을 열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암살자 4명은 알마브후흐의 방에 미리 들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알마브후흐가 방에 들어간 후 이들이 알마브후흐의 방에서 나와 호텔을 떠난 시각은 오후 8시46분이었다. 암살에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였다. 이들은 ‘방해하지 마시오(Do not disturb)’라는 표지를 방문 앞에 걸어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알마브후흐의 부인이 오후 9시께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 때는 알마브후흐가 이미 살해된 후였다. 범인들은 암살이 성공하자마자 두바이 국제공항을 통해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홍콩 등으로 잇달아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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