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스 간부 암살에 참여한 아일랜드 국적의 여성 게일 폴리어드의 수배사진. 모사드의 암살전문조직 키돈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두바이 경찰이 밝힌 모사드의 암살단은 최소 26명이나 된다. 2월24일 발표한 용의자 공개수배 내용을 보면, 암살단이 사용한 서방국가의 여권은 영국이 12개로 가장 많고 아일랜드 6개, 프랑스 4개, 호주 3개, 독일 1개였다. 이들 가운데 남성은 20명, 여성은 6명이다. 두바이 경찰은 이들이 모두 UAE에 들어올 때 비자를 받지 않아도 되거나 입국시 정밀검사 등을 거칠 필요가 없는 국가의 여권을 이용했다며 사건 발생 수개월 전 두바이에 들어와 잠복하면서 암살 작전을 사전에 준비하거나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여권 분실한 적도 없다”
암살단이 위조한 여권에 기재된 인물들은 대부분 실존하는 사람들이며 이스라엘 국적이 있는 이중국적자들이었다. 영국 외무부는 암살사건 용의자들이 사용한 영국 여권은 모두 실제 살아 있는 인물의 신상정보와 여권을 도용해 정교하게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아일랜드와 독일 정부도 범행에 사용된 자국 여권이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에 이름이 적혀 있는 바람에 졸지에 ‘킬러’가 된 실제 인물들은 “여권을 분실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영국 켄트 출신의 폴 킬리는 두바이를 방문한 적도, 여권을 잃어버린 적도 없었다. 킬리는 15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한 키부츠(집단농장)에서 거주하고 있다.
모사드는 그동안 해외 암살임무 등에 외국 여권을 자주 위조해 외교 분쟁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요르단에서 발생한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마아샬의 암살 기도 사건이다. 가짜 캐나다 여권으로 요르단에 잠입한 모사드 암살단은 당시 마아샬의 귀에 독극물을 주사하는 수법으로 죽이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마아샬의 경호원들이 암살단 중 두 명을 현장에서 붙잡는 바람에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에는 심각한 외교적 갈등이 빚어졌다. 캐나다 정부도 강력히 항의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할 수 없이 요르단 정부에 해독제를 제공했으며 수감 중이던 하마스 조직원 22명을 풀어줘야 했다. 석방된 인물 중에는 하마스의 창시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도 포함됐다. 당시 모사드의 최고책임자였던 대니 야톰 국장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반면 죽음 직전에 살아난 마아샬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로 부상했다.
눈웃음 흩뿌린 미녀 비밀요원
이번 암살 사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모사드가 여성요원들까지 작전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CCTV를 보면 게일 폴리어드(26)라는 이름의 아일랜드 국적 여성은 암살대상인 알마브후흐와 호텔 복도에서 단둘이 맞닥뜨렸을 때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하며 지나쳐 갔다. 캐주얼 정장 차림에다 금발머리인 게일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호텔 체크인 당시 호텔 직원들과 밝은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는 등 시종일관 환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모습은 암살단원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녀는 평범한 여행객처럼 호텔 수영장과 레스토랑을 드나들었고, 복도에서 호텔 직원과 마주치면 먼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2월21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그녀가 모사드의 암살·납치 전담 부서인 ‘키돈(Kidon)’의 일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키돈은 히브리어로 총검(銃劍·소총에 꽂아 사용하는 단검)을 뜻한다. 키돈의 여성단원들은 2년간의 훈련에서 각종 무기와 폭발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을 배운다. 또 미행기법, 호텔 객실 침입방법, 속옷 안에 권총을 은폐하는 기술, 위장술 등도 교육받는다. 이와 함께 성(性)을 이용한 작전도 서슴지 않는다. 모사드는 키돈 여성요원의 역할과 중요성과 관련해 “여성은 남성이 가지지 못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면서 “여성은 남녀 사이의 잠자리 대화(pillow talk)를 통해 정보를 얻는 데 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키돈은 48명의 소수정예로 구성돼 있다. 현재 이스라엘 야당인 카디마당의 대표인 치피 리브니(52) 전 외무장관도 젊은 시절 키돈의 파리 지부에서 활동한 바 있다.
키돈 여성요원의 존재는 이스라엘의 핵 기술자 모르데차이 바누누를 납치하는 과정이 2004년 세상에 알려지면서 드러났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 사실을 폭로한 바누누는 1986년 런던 도피 중 신디라는 암호명의 키돈 여성요원에게 유혹당해 로마로 밀월여행을 떠났다. 그가 신디와 탑승했던 항공기에는 모사드 요원 5명이 동승했고, 로마의 호텔 방에도 이미 모사드 요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마취주사를 맞은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이스라엘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