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공학과 현대음악의 발전
1947년 커다란 방 안을 꽉 채운 기계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의 가로등이 깜빡일 정도로 많은 전력을 소비한 이 괴물 같은 기계의 기능은 ‘계산’이었다. 전쟁에 사용될 대포의 탄도를 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나중엔 수학 연구나 일기예보를 위해서도 사용됐다. 최초의 컴퓨터라고 알려진 에니악(ENIAC)이다. ‘아타나소프 베리’라는 컴퓨터가 에니악보다 먼저 개발됐다고 밝혀졌지만,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에니악이 최초라고 각인되어 있다. 에니악이 작동을 시작한 지 1년 후, 기존의 레코드판보다 재생시간이 더 길어진 ‘LP’가 등장한다. 마침내 30분 정도 되는 클래식음악을 한쪽 면에 담을 수 있어 사람들은 음악을 더 편리하고 쉽게 접하게 된다. 최초로 LP에 녹음된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멕시코의 한 술집에 기타 케이스를 든 사람이 들어간다. 갱단이 지배하고 있는 이 마을 분위기답게 식당 안에 있던 손님과 주인 모두 긴장한다. 이방인이 주인에게 술을 시키며 묻는다. “연주자가 필요하십니까? 저는 마리아치(악사)입니다. 전 친구들도 있고 밴드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저를 채용하세요.” 주인이 대답한다. “밴드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한 명의 마리아치가 있고, 그가 밴드요 오케스트라입니다.” 주인이 신호하자 산초 모자를 쓴 사람이 뭔가 커다란 것을 들고 나온다. 신시사이저다. 그는 쿵짝거리는 반주를 틀더니 유치한 음악을 연주하며 좋아한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처녀작 ‘엘 마리아치’는 이렇게 스릴러 액션 영화에서 코미디로 분위기를 바꾼다. 영화에서처럼 연주자들의 밥줄을 끊어놓은 것이 신시사이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곡가들에게는 큰 기회였다.
빅터레코드사로 알려진 RCA에서 개발한 신시사이저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큰 기계였다. 주파수를 조절해 소리를 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로 작아지고, 직접 무대에서 공연할 수도 있게 됐다. 미리 준비된 음악은 기존에 사용되던 커다란 릴 테이프가 아니라, 그것의 축소판 격인 카세트라는 작은 상자에 담을 수 있었다. 전통악기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진보였다. 에드가 바레즈는 “음악을 한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전자공학을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독일의 다름슈타트에서 해마다 열리는 현대음악제는 수많은 전위음악가의 데뷔무대다.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도 이 음악제를 통해 데뷔했다. 그는 요제프 보이스나 존 케이지, 백남준 같은 전위예술가들과 만나기도 했는데, 그들과 다른 방향을 택했다. 다른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12음 음렬기법을 사용했지만 동양적인 철학과 사상을 접목시키고, 그것을 서양악기로 표현했다. 현대음악제에서 연주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 세계인의 주목을 끌면서 윤이상은 최고의 음악가로 성장했다.
“쉼표도 음악이다”
한편 존 케이지(John Cage)는 ‘4분33초’ 같은 새로운 음악을 발표했다. ‘4분33초’를 음악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이 곡은 사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피아노 연주자가 무대에 등장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퇴장한다. 이 곡의 초연 당시 4분33초를 연주(?)했기 때문에 이 같은 제목이 붙었다. 어릴 때 음악선생님이 노래를 급하게 부르는 아이들에게 “쉼표도 음악이야”라고 지적하셨는데, 존 케이지의 작품을 보면 그 말뜻이 이해가 간다.
살아 있는 현대음악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는 음악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작곡가이지만 지금은 지휘자로 더 유명하다. 활동이 왕성해 그가 지휘한 공연 DVD가 아주 많다. 수많은 현대음악가에게 사사한 경력 때문에 그는 현대음악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에서부터 현재 살아 있는 작곡가들의 수많은 스타일이 그의 작품들에 녹아 있다.
국내에서도 공연한 적이 있는 필립 글래스(Philip Glass)는 단순한 음을 반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미니멀리즘’을 구사한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라는 곡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음을 배경으로 여러 명의 내레이터가 아인슈타인의 복잡한 공식들을 읊는다.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의문이 있는데, 과연 저 공식들이 음악과 관계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공식으로 음악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참 잘 어울리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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