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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화해를 읊는 ‘고통의 시인’ 신달자

“내 운명을 미워할 시간조차 없었다”

  • 안기석│출판국 기자 daum@donga.com│

화해를 읊는 ‘고통의 시인’ 신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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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치애인’으로 유명한 시인 신달자씨가 최근 화해의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신씨는 노래와 시낭송을 곁들인 감동적인 강연으로 전국을 누비는 ‘명강사’로도 인기가 높다. 신씨를 만나 자신이 당한 불행을 어떻게 끌어안았으며 가족과 사회에서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 들어보았다.
화해를 읊는 ‘고통의 시인’ 신달자
구약성서에 나오는 ‘욥의 시련’이나 그리스 음유시인 호머가 노래한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인생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허덕이며 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의 영원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아내의 모습은 남편에게 신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악처(욥의 아내)이거나 베틀을 짜며 남편을 기다리는 현모양처(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형이다.

‘백치애인’ ‘물위의 여자’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시인 신달자(愼達子·67)씨는 불행한 운명을 온몸으로 헤쳐 나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욥이나 오디세우스에 가깝다. 결혼한 지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다가 떠나보내고 낙상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9년간 모신 것도 모자라 본인마저 암에 걸려 투병해야 했던 기막힌 운명의 주인공이다.

신씨는 그동안 종교단체, 지자체, 기업, 노조, 여성단체 등에서 수많은 강연을 했다. 요즘도 한 달에 10회 이상 강연을 하며 청중에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한다. “슬픈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려고 노래와 시낭송을 곁들인다”는 것. 연극인 손숙씨는 “신달자 시인의 강연은 공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씨의 강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 감동을 가족이나 친지들과 나누고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이 ‘고통의 시인’이 최근에 그동안 전국을 돌며 강연한 내용과 글들을 모아 에세이집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펴냈다. 자기 자신과 가족과 사회의 화해에 대한 체험담과 생각을 모은 것인데 특히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5월12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신씨를 만났다. 경남 창원시 성산아트홀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강연을 마치고 막 돌아온 신씨는 왼쪽 볼이 약간 부어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강연 일정을 소화하느라 잇몸이 부었다”는 것.



▼ 그동안 몸과 마음을 혹사했는데 좀 쉬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 에세이집을 내고난 뒤 기자회견을 할 때 누구한테 제일 먼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하고 싶으냐고 묻기에 저는 ‘나한테 가장 먼저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동안 저를 너무 혹사시켰어요. 너무 많이 울어서 제 몸은 눈물로 절었지요.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육체는 한계가 있어요. 강연 요청을 많이 받아도 이제는 힘들어 거절하지만 꼭 가야 할 곳이 있어요. 저 자신과 가족 이야기를 하면 청중이 모두 자기들의 이야기처럼 울고 웃어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만큼 모두 힘들다는 거지요.”

▼ 선생님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떤 겁니까.

“좀 모자라는 여자로 살아왔지요. 그런데 살아보니까 모자란 것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너무 영악하고 계산을 잘했으면 다치는 것도 있고 잃어버리는 것도 있었을 거예요. 비바람을 맞으며 모자라게 살았지만 거기에 대한 보상도 있었어요.”

신씨는 자신의 인생을 ‘슬픔의 쓴잔을 마시고 불행의 질긴 갈비를 뜯듯’ 살아왔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 선생님이 받은 인생의 밥상에는 삼키기 어려운 쓰디쓴 음식만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코스요리에 비유하자면 다음 요리가 무엇이 나올지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나오는 대로 받아먹고 지금까지 살아왔지요. 그러나 그중에 단것도 있었을 겁니다. 딸아이들이 아무 탈 없이 자라준 것도 제 삶에 좋은 음식이었어요. 위로 둘은 일찍 출가해서 아이들도 있고 막내는 오는 8월에 혼례를 올립니다.”

신씨는 자전적 에세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에서 막내를 ‘기적의 비타민’으로 불렀는데 36년 동안 함께 ‘지지고 볶고 울고 웃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신씨의 딸 사랑은 각별하다.

“제가 받아야 할 불행의 몫을 제가 받지 않고 피하면 절반이나 일부라도 우리 딸들한테 가지 않을까 염려했어요. 우리 딸들의 어깨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제가 다 받는다는 심정으로 살아왔어요.”

▼ 자전적 에세이를 내기 전까지는 딸들이라도 어머니의 속마음을 몰랐겠지요.

“왜 몰랐겠어요. 아버지가 쓰러진 뒤 어머니가 너무 힘들게 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살았잖아요. 예전에 평화방송에서 인물에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제 얘기를 다뤘는데 프로그램 담당자가 저 몰래 큰딸에게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고 했어요. 인터뷰할 때 갑자기 그 편지를 보여줬는데 ‘엄마가 늦게 오면 왜 안 오지 걱정하면서도 그래 안 왔으면 좋겠다. 더 좋은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구절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많이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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