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상자에 대한 공무상 비밀누설 피의사건에 대해 문의할 일이 있으니 2010년 5월7일 10시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 수사2계 지능3팀으로 출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석을 요구한 시점보다 출석요구서가 5시간 늦게 도착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지 못했다.
‘경찰청 e메일, 외교부 출장정보도 뚫려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신동아 2010년 3월호) 확보한 정부 대외비 문건을 바탕으로 공공기관 웹 취약점 실태를 공개한 것. “지금 바로 해킹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담았다.
기사가 나간 후 경찰관 1명이 찾아와 “행정안전부가 수사를 의뢰했다”면서 “대외비 문건 유출자를 알려달라. 공익에 해로운 보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한다”는 한국기자협회윤리강령 7조를 경찰관에게 읽어줬다.
조사받는 처지라서 불편했다. 휴대전화, e메일을 쓸 때 거슬렸다. 전화 통화 내역, e메일을 엿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신(私信)을 주고받을 때 쓰던 e메일 계정을 타인 명의로 바꿨다. 개인사를 누가 훔쳐보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다.
이 같은 경험 덕분에 암호와 해독, 보안과 해킹이란 이슈에 호기심이 동했다. 인터넷서점에 들러 단행본을 찾았다. 문외한이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권위자를 수소문했다. 사람들은 원동호 성균관대 교수(암호학)가 최고라고 말했다. 원동호라는 이름이 암호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같은 표정으로 연구실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다. 보안과 해킹, 암호와 해독의 세계는 흥미로웠다.
시저의 암호

스키테일(scytale) 암호
①원통형 막대를 나눠 갖는다
②원통형 막대에 양피지를 번데기 모양으로 말고 비밀을 적는다.
③양피지를 풀어내면 글자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④같은 굵기 막대를 가진 이는 양피지를 막대에 말아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
원동호 교수는 “오늘날 장군 지휘봉이 이 암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면서 웃었다.
“스파르타와 페르시아가 동맹을 맺어 아테네를 공격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페르시아가 배반했습니다. 스파르타가 페르시아, 아테네를 차례로 공격해 점령했죠. 그때 사용한 암호가 스키테일입니다. 글자를 바꾸는 방식의 시저 암호도 유명하죠.”
평문을 암호로 바꾸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 부장이 화났음”이란 문장을 “음났화 이장부 금지”라고 적으면 암호다. 거꾸로라는 키(key)를 가진 이는 해독이 가능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100~44년 B.C)는 글자를 시프트하는 방식으로 군사기밀을 전했다. A의 3번째 시프트는 C다. B의 3번째 시프트는 D. I love you를 3씩 시프트하면 K nqxg aqw가 된다. ‘3’이라는 열쇠를 가진 사람만 K nqxg aqw를 I love you로 읽는다. 스테가노그래피라고 불리는 암호도 있다. 과일즙 우유 오줌으로 잉크를 만들어 비밀을 적는 것. 물에 담그거나 불을 쪼이면 글씨가 나타난다. 마타 하리(1876~1917)는 평문을 악보로 바꿨다.
인류는 전쟁을 치르면서 암호를 발전시켰다. 암호와 해독, 해킹과 보안은 국가 운명을 가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해군력은 미국보다 강했다. 일본은 항공모함 8척을 보유했고 미국은 3척에 그쳤다. 순양함도 20척 대(對) 8척으로 미군이 밀렸다. 미드웨이해전이 변곡점. 체스터 니미츠(1885~1966) 제독이 일본 해군을 궤멸한 것은 일본군 교신을 해독한 덕분이었다. 북아프리카에서 사막의 여우로 불린 독일의 에르빈 로멜(1891~1944)이 미국의 버나드 몽고메리(1887~1976)에게 패한 것도 암호를 들켜서다. 몽고메리는 독일군 암호를 이용해 역정보를 흘려 로멜을 우왕좌왕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