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좋더라. 전망도 끝내주고. 글 잘 써지겠다.
친구들의 덕담에 취해, 술기운에 취해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벽지가 지저분했다. 보일러가 노출된 베란다에서는 폐가스 냄새가 진동하고, 수도를 틀면 한참 기다려야 온수가 나왔다. 청소기를 돌리자 어딘가에 숨어있던 벌레들이 하나둘 나와서 꿈틀댔다. 귀뚜라미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비실비실 장판 바닥에 죽은 듯 누워 있다 내 손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베란다에 가득했던 짐을 치우자, 더러운 모서리가 드러났다. 시커먼 때가 덕지덕지 눌어붙은 창틀은 걸레로 여러 번 문지르고 닦아도 검은 때가 벗겨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서울’에서 드디어 첫날밤을 보낸 뒤에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뜯어보니 사방이 허물투성이였다. 성인이 된 뒤에 내게 걸린 가장 불결하고 불편한 집에서 앞으로 2년을 살아야 한다니. 또 내가 실수했구나. 산이 보이는 경치에 속아, 낭만에 속아 서둘러 계약한 내가 잘못이었다.
기다려라. 내가 다 먹어줄 테니
벽지라도 새로 바꾸면 덜 우울해질 것 같아, 주인을 설득해 기어이 도배를 감행했다.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던 날이었다. 여자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편안히 새집에서 보려고 일부러 이사날짜를 하루 앞당겼는데, 춘천에서는 잘만 나오던 텔레비전이 서울에 오자 갑자기 바보가 되어, 화면상태가 좋지 않았다. 주말에 이사 뒤처리를 자청하며 후배들이 와인을 들고 찾아왔다. 내 주위에 매우 희귀한 생활인, 지식인의 머리를 가졌으면서도 살림에 밝은 그들의 민첩한 손을 빌려 가구배치를 다시 하고, 욕실에 커튼을 달고 형광등을 바꾸고 현관문에 걸쇠를 달고 베란다에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자상하게 이것저것 수리한 뒤에도 뭐 더 해줄 일이 없냐고 묻던, 그네들 덕분에 나는 새집에 정을 붙이고 낯선 환경에 그럭저럭 적응해갔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서함 만들기였다. 우체국사서함이 있으면 이사할 때마다 출판사들에 새 주소를 알려주는 번거로움도 피하고, 내가 사는 곳이 노출되어 스토커들의 표적이 되는 위험도 물리칠 수 있으니 여러 면에서 편리했다. 거주지의 관할우체국 사서함에는 빈자리가 없어, 혹시나 해서 중앙우체국에 전화했는데, 희한하게도 빈자리가 있단다. 중심이 오히려 한가하다니. 게다가 사용료도 없다는 말을 듣고 나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뻔해 보이다가도 가끔 뒤통수를 치는 놀라움을 간직한 나라, 인구 천만이 복작대는 거대도시의 예측 불가능성이 나는 좋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내 번호’를 만들기 위해, 안심하고 방랑할 최후의 보루를 확보하기 위해, 나는 명동으로 내달렸다.

이제 다시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며 우아하게 살아야지. 춘천에서 그리고 일산에서 잃어버린 청춘과 아름다움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지난 10여 년간 내 발에 구두가 신겨진 날이 대체 며칠이나 될라나. 예쁜 구두를 신고 시멘트와 유리의 숲을 활보할 나를 상상하며, 우체국을 나와 근처의 백화점에 들어갔다. 나를 서울로 이끈 가장 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도심의 서정을 즐기며 개운한 만두국물을 들이켜기 위해서. 남산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으며 나는 슬펐던가, 기뻤던가. 서울에 오면 반드시 신세계백화점에서 떡만둣국을 먹고, 지하의 식품매장을 구경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빵을 사고, 그리고 배가 꺼질 만하면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핥는 게 정해진 순서였다.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면 백화점을 나와 시청 앞의 프라자호텔 커피숍에 앉아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척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지나는 행인들을 관찰했다. 광장을 마주한 면이 통유리로 되어, 안에서 밖을 구경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날씨가 차가운데도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유유히 걸어가는 처녀들. 무거워 보이는 여행 가방을 가뿐히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외국인, 분수대에서 서로 물을 끼얹으며 장난치는 소년들의 싱그러운 볼에 매달린 하얀 웃음. 날씨가 따뜻해지면 데모대에 접수되어 어수선한 시민의 광장. 올 때마다 다른 풍경이 지루하지 않은데다 지하철 1호선이 가까워 약속장소로 나는 그곳을 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