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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⑥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개심사 솔숲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개심사 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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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4대 사찰에 속하는 개심사는 굽은 소나무가 인상적인 솔숲과 왕벚꽃으로 현대인의 메마른 정서를 다독인다. 쉼 없이 내달려온 일상이 문득 덧없이 느껴질 때, 개심사 솔숲에서 심호흡 해보라. 한 번, 두 번, 세 번….
  • 깊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송홧가루 묻은 숲 공기가 지친 몸과 마음을 슬며시 어루만져준다. 성난 짐승처럼 날뛰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고,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몸은 기운을 회복한다.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개심사 솔숲

개심사 산신각의 솔숲.

속도 강박증에 걸린 채 먹고사는 일로 허우적거릴 때, 헛된 망상과 강퍅해진 마음으로 심란할 때,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눈앞을 가릴 때, 솔바람 소리가 그 무엇보다 든든한 위안이 된다. 봄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솔바람 소리로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자 개심사(開心寺)로 향했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솔바람 소리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송운(松韻)’ ‘송성(松聲)’이라 칭하며 솔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어머니들이 솔밭에 정좌하여 솔바람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면서 시기와 증오와 원한을 가라앉혔던 이유도 솔바람 소리가 상처 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때 묻은 마음을 씻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절집인들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지 않으랴만, 솔바람 소리가 품고 있는 의미와 관련해 개심사를 떠올린 이유는 솔숲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 표석에 대한 옛 기억 덕분이었다. 바로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절집’이라는 의미가 아니던가.

각기 세심동과 개심사가 새겨진 두 개의 조그마한 표석은 솔숲을 오르는 돌계단 초입 양쪽에 붙박이 모양으로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세태에도 변함없이 정겨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그 광경에 가슴이 저려왔다. 절집으로 향하는 숲길은 구도와 사색과 명상을 위한 길이 아니던가. 그 숲길이 편리함과 효율을 좇아 점차 자동차 길로 변하는 세태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는 감회가 복잡했다. 더불어 산천의 깊이와 크기에 따라 작은 인공물조차 앉힐 자리를 헤아려 배치했던 옛 스님들의 안목이 그리웠다. 공간 활용에 대한 옛 사람의 지혜가 새삼 그리운 이유는 오늘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찰 주변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자연파괴 행위 때문만은 아니다. 무작정 실용만 좇는 우리네 삶의 가벼움도 한몫했을 것이다.

계단 길을 두세 굽이만 돌면 바로 다다를 수 있는 짧은 거리를 긴 여정인 양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가슴을 펴고, 귀를 활짝 열고 천천히 걷는다. 마침내 고대하던 솔바람 소리가 쏴~하고 불어온다. 솔숲 위로 바람이 인다. 가지가 흔들리고, 가지 끝의 솔잎들도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한다. 장자는 바람을 ‘대지가 뿜어내는 숨결’이라고 했던가. 솔잎 사이로 지나면서 만드는 바람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영혼을 흔드는 소리를 담는다. 막혀 있던 귀가 뚫린다. 납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던 망상이 심호흡과 함께 빠져나간다. 어느새 순진무구한 상태로 부처님의 나라에 도착한다. 어느 시인은 바람결에 실려온 냄새만으로도 솔숲을 지난 바람인지 참나무 숲을 지난 바람인지 아니면 대숲을 지난 바람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어떤가? 혹 솔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잠깐의 여유조차 아까워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기 바쁘다면, 여러분은 일 중독자일지 모른다. 바람결에 실려 온 계절의 독특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자연의 진수를 남보다 더 깊고 진하게 체득하는 자연주의자일 것이다.



굽은 소나무의 생명력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개심사 솔숲

산신각에서 바라본 개심사 전경.

개심사의 들머리 솔숲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답지 않게 대부분 50~60년 묵은 비교적 어린 소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엔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6·25전쟁이나 이후 사회적 혼란기에 훼손된 탓일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강원도의 백담사나 법흥사, 경북 울진의 불영사 경내의 곧게 자라는 소나무와 달리 개심사의 모든 소나무는 구불구불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형태적 차이는 서해안이나 남해안의 인구밀집 지역에서 꽃피운 농경문화와 관련이 있다. 소나무는 이 땅의 어떤 나무들보다 건축재나 조선재로 활용도가 높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던 서해안이나 남해안의 구릉과 평야지대의 소나무들은 지속적으로 농경문화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건축재와 조선재로 벌채되었다. 옛 사람들 역시 오늘날의 우리처럼, 재목감으로 줄기가 곧은 소나무들을 먼저 벌채해 사용했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곧은 소나무를 계속하여 벌채했으니 지금은 형질 나쁜 나무만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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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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