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환(42) 감독의 자기소개다.
“저널리스트도, 투사도 아니에요. 아무도 안 다룬 주제 중에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입니다.”
인터뷰 내내 이 말도 참 여러 번 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정의의 수호자’ 쯤으로 보는 게 영 부담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런 ‘오해’를 감수해야 할 것 같다. 5월 초 전주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관객상을 받은 영화 ‘트루맛쇼’ 때문이다.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우리나라 TV 음식 프로그램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파헤친 고발 다큐멘터리다. 김 감독은 경기도 일산에 분식집을 하나 차렸다. 거울 뒤마다 카메라를 설치한 ‘몰카 친화형’ 레스토랑. 식당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다큐멘터리 세트장인 이곳에서 그는 평범한 식당이 TV 맛집으로 변신하는 전 과정을 촬영했다. 브로커가 등장하고, 홍보대행사가 오고 가고, 외주제작사와 방송사 제작진도 주요 배역을 맡아 열연한다. 브로커는 방송을 위한 가짜 메뉴를 만들고, 홍보대행사는 식당에 뒷돈을 요구하고, 가짜 손님은 한 숟가락 떠먹을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식이다. 식당 주인은 이들에게 이리저리 돈을 건넨다. 그리고 마침내 방송 성공!
김 감독의 분식집은 지난 1월 SBS ‘생방송 투데이’에 ‘맛집’으로 등장했다. 1000만원이 들었다. ‘트루맛쇼’에 따르면 지상파 3사의 주요 맛집 프로그램에는 공정 가격이 있다. MBC ‘찾아라! 맛있는 TV’ 중 ‘스타맛집’ 코너는 900만원, ‘맛객’은 600만원이란다. 누구나 짐작했지만 정말 그러랴 생각했던 ‘맛집 방송’을 둘러싼 추악한 커넥션이 드러나는 순간, 김 감독의 카메라는 지상파 방송사를 정조준한다.
“현장에서 방송 조작하고 뇌물 받는 PD와 제작사를 그냥 나쁜 놈이라고 한다면 방송사는 T.O.P(더 나쁜 놈의 은유적 표현)다. 세상 온갖 나쁜 일은 다 시켜놓고 혼자 고고한 척 저널리즘과 공영성을 논하는 방송사가 미디어계 타락의 몸통이다.”
무소불위의 권력 미디어, 그중에서도 핵심에 위치한 지상파 방송 3사를 상대로 동시에 칼을 겨누다니 이 사람 제정신인가 싶다.
“세금 다 냈거든요. 살면서 손해 본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상처 주거나 재정적으로 큰 손해 입힌 적 없고, 쓰레기를 주우면 주웠지 버린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아, 좀 재수 없게 들리겠다.”
“1000만원만 내시면…”

김 감독은 ‘트루맛쇼’ 연출자면서 동시에 이 영화를 제작한 B2E프로덕션 대표다. MBC PD로 방송 일을 시작한 뒤 2002년 퇴사해 창업했다. 그러니까 ‘트루맛쇼’는 외주제작사 대표가 지상파 방송사를 향해 보낸 선전포고이면서, 동시에 전직 PD가 고향을 향해 날린 카운터펀치가 되겠다. 그는 “뇌물 주고받는 식당과 제작사·파워블로거, 그들을 이어주는 홍보대행사와 브로커, 돈으로 업계 사람들을 타락시켜온 프랜차이즈, 조작하는 PD와 작가…. 누군가는 이 뇌물과 타락의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은가”라며 “스스로 자신의 부조리와 위선을 고발할 용기가 없는 방송사를 위해 내가 맞춤 포탄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맛집’이 아니라 ‘미디어’다.
▼ 왜 이런 영화 만들 생각을 하셨나요?
“대학 졸업하고 금융회사 다니다가 뒤늦게 PD를 시작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가 가진 파워, 권력을 그때 알았어요. 내가 하는 일은 방송을 만드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걸 통해 세상을 봐요. 방송 프로그램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엄청난데, 미디어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걸 이용하죠. 정색하고 미디어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되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느끼게 되길 바랐어요. 맛집은 이 딱딱한 주제를 말랑말랑하게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소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