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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교수가 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 ⑥

자연과학 연구 선구자 정약전… 모더니티 추구한 종합과학자 정약용

정약전과 정약용

  •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자연과학 연구 선구자 정약전… 모더니티 추구한 종합과학자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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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모더니티 사이에서

자연과학 연구 선구자 정약전… 모더니티 추구한 종합과학자 정약용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편지.

가족주의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한걸음 물러서서 볼 때 가족주의는 긍정적인 기여보다 부정적인 폐해가 더 두드러진다. 유사가족주의인 학벌주의와 지역주의를 생각하면 한국식 가족주의는 극복의 대상이지 장려의 문화는 아니다. 내가 가족주의를 주목하는 것은 전통에서 모더니티로 가는 시간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내 마음을 더없이 처연하게 했던 한 지식인 가족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정약용과 그 형제들의 삶은 전통과 모더니티 사이에서 고뇌하고 새로운 방향을 치열하게 모색한 개인사, 가족사, 그리고 사회사를 생생히 보여준다. 결코 범상치 않은 이 가족의 복잡다단하고 파란만장한 삶에는 언어로 전달하기 어려운 우리 역사의 한 시대가 있는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정약용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이나 그 형제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은 이미 적잖이 나와 있다. 특히 이덕일 선생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2’는 이 가족이 겪어야 했던 더없이 무거운, 그러나 치열했던 역사를 소설 못지않게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비록 각주가 많이 달린 전문 연구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저자가 재구성한 정약용 일가의 삶은 여전히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재에도 작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내가 정약용과 그의 가족을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부 시절이었다. 1980년대 초반 역사학을 공부하는 선배로부터 시간이 날 때 한번 읽어보라고 정약용의 책 두 권을 추천받았다. 송재소 교수가 펴낸 ‘다산 시선’과 박석무 선생이 펴낸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그것이다.



“쓸쓸한 석우촌 / 앞에는 세 갈랫길

두 말 서로 희롱하며 / 저 갈 곳 모르는 듯

한 말은 남으로 가고 / 또 한 말은 동으로 가야 하네

숙부님들 머리엔 백발이 성성하고 / 큰 형님 두 뺨엔 눈물이 줄을 잇네

젊은이는 다시 만날 기약이나 한다지만 / 노인들 앞일을 누가 알리요

조금만 조금만 하는 사이에 /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어졌네

앞만 보고 가야지 뒤돌아보지 말고 / 앞으로 다시 만날 기약이나 새기면서”



인용하기엔 다소 길지만 송재소 교수가 우리말로 옮긴 정약용의 시 ‘석우촌의 이별’이다. ‘다산 시선’에 실린 원주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가경(嘉慶) 신유년 정월 28일, 나는 소내에 있다가 화가 일어날 것을 알고 서울에 들어가 명례방에 있었다. 2월8일에 조정에서 의논을 발하여 그 다음날 새벽종이 칠 때 투옥되었다가 27일 밤 이고(二鼓)에 은혜를 입고 출옥하여 장기에 유배되었다. 그 다음날 길을 떠남에 숙부님들과 형님들이 석우촌에 와서 서로 이별했다. 석우촌은 숭례문에서 남으로 3리에 있다.”

내가 이 시를 처음 읽은 것은 1981년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시대적 상황 탓인지 이 시에 담긴 그 어떤 비장함, 안타까움, 서러움에 마음이 더없이 착잡하고 처연했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어쩌다 숭례문이나 서울역 주변으로 갈 때 부지불식간에 이 시를 떠올리고, 비극적인 삶을 견뎌야 했던 정약용과 그의 가족을 떠올리곤 한다. 내친김에 하나 더 인용하자면, 같은 해에 씌어진 ‘아들에게’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두시(杜詩)가 내 마음 먼저 알아서 / 네 편지 받아 보니 너도 사람 되었구나

세상 밖 강산은 이리도 고요한데 / 어지러운 속에서도 모자간(母子間)은 친하구나

의심받고 놀란 몸 병을 어찌 면하겠나 / 살림살이 가난한 것 걱정치 말고

부지런히 힘써서 남새밭 가꾸어 / 맑고 밝은 세상에 일민(逸民)이나 되어라”

일민이란 벼슬을 하지 않고 숨어 사는 사람을 말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더욱이 전통사회에서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이 최상의 가치였다. 그런데 정약용은 아들에게 정작 일민이나 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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