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인배(57) 한국전기안전공사(KESCO· Korea Electrical Safety Corporation) 사장은 대표적인 정치인 출신 공기업 CEO다. 그는 1996년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3선을 한 한나라당 유력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뒤 2008년 10월 ‘잠시 있다가 떠나는 철새’라는 눈총을 받으며 KESCO 사장에 임명됐다. 12년간 정치 무대에서만 활동한 그는 전기와 경영에 문외한이었다. 그를 둘러싼 비판을 잠재운 것은 1년 만에 만성적자의 회사를 흑자로 전환한 리더십이었다.
뜻한 바 모두 이뤄 떠나
5월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국전기안전공사 집무실에서 임인배 사장을 만났다. 임기를 5개월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그에게서 그간의 소회를 듣기 위해서였다. 민감한 질문에도 그는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정치인이나 리더가 되는 순간 누구나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쿨한 지론이다. 넥타이를 푼 채 거침없는 직설화법으로 속내를 털어놓는 그에게 가식은 없었다.
▼ 지난주 사의를 표명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물러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사의를 표시해도 후임자를 물색하는 데 두 달 걸립니다. 그러면 석 달 정도 임기를 못 채우는 셈이죠. 저는 처음 부임하면서 뜻한 것을 다 이뤘고 회사는 안정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자리를 비워주는 게 조직의 활성화나 새로운 변화를 위해 좋다고 판단했죠. 개인적으로도 저는 ‘영원한 정치인’이니까 할 거 다 했는데 월급 받기 위해 회사에 있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했어요.”
▼ 자신을 ‘영원한 정치인’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일각에서는 정치인이 공기업 CEO를 경력관리를 위해 거쳐 가는 자리로 여기는 것을 비판합니다.
“양면성이 있어요. 정치인은 장관이나 공기업 CEO를 거치면서 부처나 공기업의 어려운 점을 알게 됩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제도적으로 뭘 바꿔야 하는지 감을 잡게 되는 거죠. 저는 정치인으로 있을 때보다 공기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공기업이 이렇게 가서는 선진국이 안 됩니다. 그걸 정치인들이 모르죠.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공기업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데, 기업에서는 나쁜 걸 절대 안 보내줍니다. 저는 (공기업에) 어떤 문제가 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피부로 느끼고 떠납니다. 국회의원이 공기업에 오는 것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대통령께 공기업을 경영하며 느낀 점을 건의하고 싶어도 직접적인 소통 루트가 없어 답답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어 MB정부의 아쉬운 점으로 ‘소통 부족’과 ‘타이밍을 놓친 대처’를 꼽았다. 평범한 공기업 CEO라면 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저는 느끼는 대로 바른 소리 다 하는 스타일입니다.” 정치 현안에 대한 그의 소신 발언이 이어졌다.
“이번 4·27 재보선의 교훈은 ‘한나라당, 까불지 말라’는 겁니다. 분당 주민은 무조건 한나라당을 찍고, 봉하마을 주민은 꼭 민주당을 찍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정치를 잘못하면 민심이 변할 수 있다는 걸, 강남도 날아갈 수 있다는 걸 한나라당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정치의식이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앞으로 친이(親李), 친박(親朴) 간 싸움이 없어지는 것도 보여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