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폭발력 있는 기사 하나가 주요 언론지면을 장식했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에 대한 공동연구를 개시했다는 소식이었다. 2010년 9월 한국국방연구원(KIDA)과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국(MDA)이 KAMD 공동연구를 위한 약정서(TOR)를 체결했으며, 이를 토대로 연구가 심화하고 있다는 정부 당국자의 설명도 이어졌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세계적인 미사일방어체계(MD)에 한국이 참여하느냐 여부는 김대중 정부 이래 한미관계는 물론 동북아 국제정치의 핫이슈로 자리매김한 극히 민감한 사안. 양국의 공동연구가 한국이 미국의 MD 구축에 본격 합류하는 신호탄은 아닌지 관심이 집중된 것은 이 때문이다. 쉽게 말해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에 자리한 미국의 잠재적 적국(敵國)이 미 본토를 향해 발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조기에 요격하는 시스템에 한국군이 그 하부구조로 참여하게 되느냐는 질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방부 등 관계당국은 재빠르게 선을 긋고 나섰다. 해당 공동연구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 가하는 미사일 공격만을 상정하는 ‘한국형’일 뿐, 중국 등 다른 주변국에서 미 본토를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과는 아무런 상관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나선 것. 더욱이 그나마도 이론적인 연구에 불과할 뿐 구체적인 사업진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해명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 안보당국 핵심관계자는 “일단은 립서비스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측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MD 참여를 압박해왔음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미국이 지난해 전시작전권 전환일정 연기나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공동대응 과정에서 한국을 적극적으로 배려해준 것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보조를 맞춰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 MD 문제에 몸이 달아 있는 미국을 달래기 위해 적절히 선을 그어가며 취하는 제스처라는 의미다.
출범 이후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의 주요 이슈와 관련해 주고받기식 전략을 주로 구사해왔다. 개별 주제의 적실성을 따지기보다는 양국 사이의 현안들을 테이블 위에 한꺼번에 올려놓고 균형을 맞추는 식의 협상이 골간을 이뤄온 것이다. 현재는 한국군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허용하는 미사일협정 개정이나 원전 폐연료봉의 재활용을 위한 원자력협정 개정 등 굵직한 이슈를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이 미국에 요청해야 하는 사안인 반면, 내놓을 수 있는 ‘당근’은 MD 관련 논의가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이미 한참 진행됐다
이렇듯 당국자들의 설명을 듣고 나면 언뜻 공연한 호들갑이었나 싶지만, 그러나 수면 아래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을 확인하고 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우선 한미 간에 진행되는 MD 관련 논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이미 2009년 여름부터 KIDA는 미 국방분석연구소(IDA)와 이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검토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복수의 당국자를 통해 확인됐다. 여기서 설정된 이론적인틀을 바탕으로 최근 공개된 KIDA-MDA 공동연구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양국 연구기관 간의 논의가 첫 단추이고 국방당국 간의 논의가 마지막 단추라면, 한국의 연구기관과 미국의 주무당국이 테이블에 앉는 이번 공동연구는 이미 논의가 2단계 수위로 발전됐음을 의미한다. 국방부 측이 해명한 ‘이론 수준의 검토’는 진작 넘어섰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지난해 연례안보협의회(SCM)를 통해 두 나라가 합의한 사항들이다. 당시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한국에 MD체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확장억제정책위원회 가동에 합의했다. 3월 말 하와이에서 열린 이 위원회의 첫 공식회의에서는 오는 10월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위협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 구체적인 수단을 함께 가동해보는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TTX)을 처음 실시한다는 합의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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