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호

저출산·고령화, 저성장·양극화 극복하는 한국형 복지국가 설계해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바라본 복지 미래

  • 김용하│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입력2011-06-22 0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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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출산·고령화, 저성장·양극화 극복하는 한국형 복지국가 설계해야

    1973년 12월 주부클럽연합회가 광화문지하도에서 ‘74년은 임신 안하는 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역사는 한국의 보건복지 정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1981년 설립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960년대 설립된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연구실, 1970년대 설립된 국립가족계획연구소, 가족계획연구원, 한국보건개발연구원 등의 명맥을 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사회정책의 싱크탱크(think tank)로 ‘한국형 건강한 복지국가’의 발원(發源)이라 할 만하다.

    복지 씨앗을 뿌리다

    사회보장심의위원회가 출범한 1962년은 군사정권 집권기였다. 당시 정부는 경제개발을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한 동시에, ‘민정이양’과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국민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사회복지제도를 활용하고자 했다.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하다보니 사회보장제도의 시행은 실현가능성이 낮았다. 하지만 군사정부는 국민에게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을 홍보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보장제도 도입을 급격히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연구진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하고 구체적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등 입법과 관련된 실무를 담당했다.

    1963년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 법은 사회보장을 ‘사회보장에 의한 제급여와 무상으로 행하는 공적부조’라고 모호하게 규정했다. 동법은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운영에 관한 사항을 각령에 위임했다. 위임에 의해 제정된 각령은 사회보장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할 사안으로 △의료급여 △휴업급여 △실업급여 △노령급여 △산업재해보상 △가족급여 △출산급여 △폐질급여 △유족급여 △장제급여 △공적부조 등 총 11개를 규정했다.

    이를 영역별로 분류하면 △의료보장(의료급여) △재해보장(산업재해보상) △소득보장(노령급여, 폐질급여, 유족급여, 공적부조) △고용보장(휴업급여, 실업급여) △서비스보장(가족급여, 출산급여, 장제급여)이다.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연구진은 이 중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의료보험제도, 국민연금제도 등의 설계와 제도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국민복지연금법 석유파동으로 시행 이틀 전 연기

    군사정부는 집권 초기, 근로자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제도로서 산재보험제도와 의료보험제도 도입도 계획했다.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연구진은 산재보험제도 연구에 착수한 지 1년 만인 1963년 12월, 입법안을 군사정부 최고회의에 상정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제정됐다.

    또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의료보험법’의 초안을 작성하고, 의료보험제도의 기본 틀을 설계했다. 동시에 국민의료비 부담능력과 의료수요, 건강실태 등을 파악하기 위해 제1차 국민건강조사를 실시했다. 연구 착수 3개월 만인 1962년 6월30일 의료보험요강을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제출했고, 다시 6개월 뒤인 1962년 12월16일 ‘의료보험법안’이 최고회의를 통과해 법제화됐다. 연구진이 최고회의에 제출한 의료보험법안은 고용인 500명 이상 사업장을 당연적용대상으로 규정했지만, 최종 결정된 의료보험법은 적용 여부를 기업의 선택에 맡기는 임의적용으로 규정했다.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연구진은 위원회 출범 초기부터 연금제도 연구의 필요성을 실감했으나 연구인력이 제한되는 등 한계 때문에 본격적인 연구를 추진하지 못했다. 그러나 1968년부터 사회개발 연구가 시작되면서 근로자 연금제도를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부각됐다. 1969년 양로보험기초조사 결과에 근거해 적립방식의 연금제도 도입안이 구상됐으나 입법에는 이르지 못했다. 1971년부터 연금제도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2년간 자료수집, 조사연구를 거쳐 국민복지연금 모형 구축과 법률안 작성이 완료됐다. 1973년 12월24일 마침내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됐지만 제1차 석유파동으로 세계경제가 난관에 직면하자 정부는 시행을 이틀 앞둔 1973년 12월30일 대통령 긴급명령에 의해 그 시행을 연기했다.

    요동치는 인구를 잡아라

    1955년부터 시작돼 1960년대까지 이어진 베이비붐 때문에 한국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인구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가족계획연구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1963년 보건사회부는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작성됐던 ‘가족계획사업계획(안)’을 검토한 후 이를 수정·보완하여 ‘가족계획사업 10개년계획(안)’을 완성했다.

    이 계획안에 따르면 정부는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인구의 자연증가율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종료되는 1966년까지 2.5%, 제2차 5개년계획이 종료되는 1971년까지 2.0%로 저하시키자는 목표를 설정했다. 경제성장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인구는 계속 증가했다. 인구가족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가족계획연구원이 1971년 7월1일 보건사회부 소속의 특수법인으로 설립됐다.

    가족계획연구원은 각급 사업주체의 의사결정에 직접 도움이 되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사업수행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대안이나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가족계획사업의 목표 인구와 국가의 사회·경제적 특성, 그리고 자녀출산과 관련된 태도와 욕구가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주기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했다. 아울러 바람직한 정책대안 및 사업추진전략 개발 등의 정책연구도 활발하게 수행했다.

    가족계획연구원은 일선 사업종사요원의 업무수행 능력 제고를 위한 직무교육 및 교육훈련(OJT) 프로그램 개발·운영도 했다. 연구원이 설립된 지 3년이 지나면서 출산율은 급속히 둔화됐다. 출산력조사 등이 거듭되면서 우리나라의 조사분석방법론이 크게 발전한 것 역시 부수적인 효과다.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출산율이 경계수준에 걸맞아졌고,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출산율이 급락했다. 인구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했다.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 수립된 이유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기능이 출산억제에서 출산장려로 바뀌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전문가 포럼을 운영하는 등 국민과 출산율 제고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했다.

    국민을 건강하게 하라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이 출범한 1970년대 중반에는 경제가 성장세였다. 소득수준도 향상됐고, 영양 상태도 개선됐다. 환경도 개선되고 개인위생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1960년대에 비해 전염병의 발생이 감소했다. 그럼에도 각종 전염병은 여전히 중요한 보건문제로 남았다. 우리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저소득 주민이 건강을 증진시키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보건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은 비용절감형 보건의료전달사업을 추진하고자 출범했다.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은 국민보건과 관련된 제도 발전, 합리적인 의료제공체계 설립, 종합보건의료 시범사업 진행, 장·단기 보건의료 정책 진행 등의 역할을 했다. 연구원은 또 지역사회 주민이 건강을 유지하도록 지원했고, 종합 보건의료 시범사업에 종사하는 의료진을 교육, 훈련했다. 국내외 연구기관과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했으며 국가로부터 위촉받은 보건의료 조사 연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우리나라에 ‘비용절감형 보건의료전달체계’가 뿌리내리도록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은 가족계획연구원과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이 통합된 조직이다.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은 1982년 제2차 지역의료보험 시범사업을 계기로 전 국민 의료보험의 조기 실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료보험 도입’의 기틀을 마련했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에 이어 1988년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되기까지 큰 족적을 남겼다.

    현재 보건의료시스템은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이 1970~80년대 진행했던 크고 작은 조사연구에 의해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가 형성돼 비용효과성이 발생했으나, 정부가 보건의료시장에서 규제자 역할에만 머물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라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면서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더 이상 경제성장만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장 과실을 복지를 통해 되돌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도달한 것. 특히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삶의 질 세계화 선언’을 발표했으며,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방문해 대회의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보장정책 및 복지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국제적으로는 ‘정부개입의 최소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등장했다. 종래 복지국가 모형도 바뀌어 의료개혁, 연금제도 개혁이 추진됐다. 우리나라도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을 마지막으로 “경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가 확산됐고, 경제계획 수립을 종료했다.

    저출산·고령화, 저성장·양극화 극복하는 한국형 복지국가 설계해야

    1980년대 호남에 콜레라가 발생해 철도승객 전원이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

    1987년 국제보건기구(WHO) 오타와 총회는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역학적 전이(epidemiological transition)에 대응하기 위해 건강증진을 ‘신공중보건사업’으로 채택했고 각국의 공중보건사업을 건강증진 중심으로 바꿀 것을 권유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도 ‘국민건강증진법’을 제정해(1995년) 치료가 아닌 질병예방 및 건강증진 중심으로 정책이 전환됐다.

    더불어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을 운영해 1999년 연금개혁의 초석을 닦았고 사회보험통합추진위원회 운영을 통해 4대 사회보험 정보연계, 보험료 부과기준 일원화, 보험료 징수 통합 등 각종 정책을 개선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침체와 대량실업과 고용불안, 가계 실질소득 감소, 소득양극화가 이어졌다.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해 1999년 9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공포한 후 약 1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했다. 정부의 ‘제1차 사회보장발전 5개년 계획’의 핵심 제도이기도 했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가 보호 기능을 확대·강화했다. 아울러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의 적용범위를 확대해 제도적 보편주의를 추구했다. 건강보험은 지역보험과 직장보험을 통합 관리·운영해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했다.

    2000년 이후 사회보장 정책은 제1차 사회보장발전 5개년 계획(1999~2003년)의 일환으로 추진된 ‘생산적 복지’ 정책과 행보를 같이했다. 경제위기 이후의 발생한 ‘절대 빈곤’문제와 실업문제에 대응하는 데 정책적 초점을 뒀다. 이런 정책 대부분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추진됐다.

    2000년 노인인구 비율이 7.2%에 달하고 2018년에는 14.3%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복지를 위해 2007년 전체 노인의 70%(2008년 7월 이후 지급)를 대상으로 기초노령연금제도를 도입했고 2008년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러한 제도를 도입할 때 기초조사연구부터 구체적 정책수립까지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한국형 복지국가를 설계한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 ‘능동적 복지’라는 개념하에 효율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다각적 노력을 기울였다. 2009년에는 친서민 중도 실용정책과 사회통합정책을, 2010년에는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복지정책의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한국의 복지시스템에 변화를 요구했다. 각종 임시 대책이 추진됐지만 경제 사회의 양극화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다.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무상급식이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복지논쟁이 가열됐다. 일부는 무상복지 등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고, 일부는 선별적 복지를 주장했다. 새로운 한국적 복지모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제3차 사회보장 5개년 계획’‘제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제2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등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동시에, 공정사회를 실현하고 100세 시대와 베이비 붐 세대 은퇴 도래 등에 대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저성장·양극화 등에 맞서기 위한 복지모형은 50년 후, 100년 후에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이때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경제사회의 통합적인 발전과 함께 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저성장·양극화 극복하는 한국형 복지국가 설계해야
    金龍夏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상근상임자문위원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現 사회보장심의위원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 연구위원

    저서: ‘희망복지 포트폴리오’ ‘보험과 리스크 관리’ ‘사회보험론’


    적절한 복지지출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면서도 경제 생산성이 극대화돼야 한다.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 관계인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다가오는 고령사회에서 저성장 추세는 불가피하므로, 이에 대응하도록 저비용·효율적 복지체계가 필요하다. 단순한 복지지출 확대가 아니라, 현재 비대칭적인 복지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개 속의 거대 담론이나 앞뒤를 고려하지 않은 고비용의 돌출성 제도 도입 주장을 지양하고,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국가복지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역할이 재삼 강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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