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전임자의 유급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제도가 시행 1년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경영계와 노동계는 여전히 대립한다.
- 이유가 뭘까. 오는 7월 국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근로시간 면제에 대한 각계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지난 6월8일 현대자동차 노사가 울산공장 본관 아반떼룸에서 2011년 임단협 첫 상견례를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년 5월 말 현재 타임오프제를 도입한 노조는 89%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수치에 불과하다. 대기업 노조 상당수는 여전히 기존 전임자를 무급 전임자, 즉 조합비로 임금을 대체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기아자동차의 경우 기존 234명이던 유급 전임자 수를 21명으로 대폭 줄였다. 그러나 노조에서 임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노조 전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무급 전임자는 현재 70명에 달한다. 기존 234명에 비하면 절반 이상이 전임활동을 접은 셈이지만 법적 잣대로 보면 정해진 인원보다 몇 배나 많은 노조 전임자가 활동하는 셈이다. 한국철도공사도 노조 전임자 수를 64명에서 17명으로, 현대중공업은 55명에서 15명으로 줄였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많은 수가 사실상 노조 전임자로 일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기존 대비 10분의 1로 급작스럽게 줄어든 노조 전임자 수를 곧이곧대로 수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무급 전임자, 편법인가 합법인가
물론 무급 전임자 형태로 노조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근로시간 면제 제도에서 규정한 것은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는 유급 전임자 수일 뿐, 노조 전임자 수 전체에 제한을 두지는 않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기업들 외 다른 대형 노조들도 많게는 전임자의 절반 정도가 무급 전임자 형태로 노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기존처럼 회사에서 임금을 받는 형태가 아니라 노조에서 거둔 조합비의 일부를 월급으로 지급받는다는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월급을 어디에서 받느냐의 차이일 뿐 노조 전임자가 현업에 종사하지 않고 노조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표면적으로 1년 전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9일, 현대자동차 노조 노동안전위원이던 박모(48)씨가 ‘노동탄압’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하면서 타임오프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박씨는 유서에서 “회사에서 타임오프제 시행에 따른 노조활동 탄압을 계속해왔으며 이를 빌미로 근태를 문제 삼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 측이 박씨의 죽음을 ‘가계 빚에 따른 압박’이라 해명하면서 노사 간 갈등이 커졌다. 노조 측의 반발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조업이 한때 중단되는 등 갈등이 폭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번 사태를 두고 민주당 조춘화 노동전문위원은 “사람마저 제도에 끼워 맞추기 급급해 벌어진 일”이라고 개탄하며 노조 전임자 인원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짓밟을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사업장마다 근로시간 면제제에 대한 노사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지난해 4월 노조 측의 ‘기존 전임자 유지를 위한 교섭 요구’를 2개월간이나 거부해오던 기아자동차 사측은 6월에 이르러서야 무파업을 조건으로 보상을 실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같은 해 9월, 법적으로 사측이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21명 외에 노조가 임금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70명이 추가로 전임 활동을 계속하는 데 합의했다. 지난해 10월 기아자동차 노조가 합의한 내용은 기본급 7만9000원 이상, 성과일시금 300%+500만원 지급, 신차성공 격려금 주식 120주 지급, 보전수당 6000원 등이다. 노조 전임자 관련 조항은 특별 협약을 통해 협의되었는데 무급 전임자의 경우 무급 휴직 처리하는 대신 근무시간 중에는 조합 활동을 금지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내용 합의는 이뤄졌지만 협상 내용을 바라보는 노조 측과 회사 측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특히 신설된 보전수당 6000원(실질임금 기준으로 약 1만5000원)에 대해 노조 측은 결과적으로 회사 측이 무급 전임자의 임금까지 지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고려해 취한 조치로 받아들인다. 실제 업계에서도 “기아차가 타임오프제 도입에 반대하는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기존에 없던 이 수당을 만들고, 노조는 수당 인상분만큼 조합비를 인상해 이것으로 무급 전임자 수당을 지급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고 분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반면 회사 측은 동종사와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신설한 항목일 뿐이라고 못 박고 있다. 보전수당의 경우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을 포함한 기아자동차 사원 전체에 지급하는 수당이므로 조합원들이 무급 전임자의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추가로 거둔 조합비(1만4200원)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지금껏 노조 전임자들의 활동비를 사측에서 지급함으로 인해 노조 측이 임금 인상폭에 대해 양보한 부분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앞으로 임금협상 과정에서도 이 부분은 보이지 않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자동차 사측은 타결된 협상안에 대해 최초의 무분규 타결로 20년간 계속돼온 파업의 고리를 차단하고 노사관계가 안정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또한 이는 현대기아차 모두가 동시에 무분규 교섭 타결을 이룩한 것으로 전국 노사협의의 무분규 타결을 불러올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하지만 타결안 시행 이후에도 보이지 않는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이미 사측이 전임자들의 월급 지급을 중단하고 새롭게 정리된 21명의 유급 전임자 명단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나 현행 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노조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는 노조 측이 이를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개정된 법 시행 이후 노조 측에서 자발적으로 나서 유급 근로시간 면제 제도를 안착시킨 사례도 있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매 위기의 순간을 노사합의를 통해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3년째 임금 동결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노조 전임자까지 줄여야 하는 이중고를 겪은 쌍용자동차 노조는 노조 전임자를 48명에서 30명으로 과감히 줄이는 대신 9명을 파트타임 전임자로 보직을 변경해 타격을 줄였다.
“노조 활동이 꼭 인원에 비례해 진행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초기 인원 감축에는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지만 사측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쌍용 노조의 생각이었습니다. 노조의 경영 참여가 자연스럽게 노사 화합 문화를 정착시킨 듯합니다. 상생의 문화가 쌍용의 무기인 셈이죠.”
쌍용자동차 노조 이규백 교육선전실장은 파트타임으로 활동 중인 무급 전임자들의 임금은 합법적인 수익 사업을 통해 운용해나가고, 노조 활동의 합리화로 부족한 인원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는 데 힘쓰는 것이 타임오프제를 안착시키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법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
비단 기아자동차 노조뿐만이 아니라 실제 대부분의 노조가 현행 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심지어 최근에는 한국노총마저 한나라당과 정책 연대를 깨고 노조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서 노조법을 둘러싼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7월 국회를 앞두고 여야 모두가 쟁점 사안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노동계와 경영계 측의 대립도 만만찮다. 6월9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노동3권 실현을 위한 올바른 노조법 개정방향’ 토론회에 참석한 김기덕 변호사(법무법인 새날)는 발제문을 통해 ‘현행 노조법상 노동조합 전임자는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로서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자를 말한다’(제24조 제1항)고 전제하고, 개정된 법안에서 규정하는 유급 전임자 외에 절차상 무급 휴직자로 규정됐으나 실질적으로는 노조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무급 전임자 역시 재적 전임자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적 전임자는 그 법적 지위에 관한 판례에 비춰서도 휴직 근로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으며 휴직 근로자에 대해 유급 등 일정한 처우를 하는 것을 단체교섭의 내용에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조법이 재적 전임자의 급여지급을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근로시간 면제 제도를 두어 일부 허용하는 등 법으로 강제한 것은 해당 사업장 근로자인 재적 전임자 처우에 관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정할 수 있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제한 내지 금지하는 조항이라는 것이다. 그 예로 지난해 7월1일 근로시간 면제 제도 시행 과정에서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한 사항을 노동부가 개입해 시정명령을 내림으로써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었음을 지적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4당과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함께한 이 자리에서 각 대표들은 노조 전임자 급여지원은 노사 간의 자율에 맡길 문제라는 공통된 입장을 확인하고 노사 간 단체교섭을 통해 전임자의 급여를 지급하기로 한 것을 국가가 금지하고 처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진통 끝에 타결된 법안을 제대로 시행조차 해보지 않고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려 드는 것은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보자는 노조 측의 못된 심보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는 재계의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는 노조의 무급 전임자 임금 지급을 ‘변칙적 제도 운용’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이 부분을 둘러싼 노사갈등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총은 성명을 통해 “노조법이 시행된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에서 충분한 협의와 정당한 절차를 거쳐 개정한 법률을 제대로 시행도 하지 않고 또다시 노동계의 요구대로 개정하려는 것은 일부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산업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 주장했다. 또한 양 노총이 산업현장의 노사관계 선진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노조법 재개정을 내세운 정치 투쟁에만 매달리는 것은 노동귀족들의 밥그릇 지키기 싸움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지금이라도 양 노총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위를 지키기 위해 계속하고 있는 불법 집회와 투쟁을 접고 노사관계 선진화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불법과 변칙으로 얼룩진 노동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 경총의 입장이다.
전임자 급여는 누가 주나
그렇다면 노조 전임자에 대한 선진국들의 처우는 어떠할까. 우리나라와 같은 기업별 노조 조직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노조 전임자를 무급 휴직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급여는 당연히 노조의 재정으로 지급한다. 미국도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은 노조가 부담하고 있으며,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확립돼 노조에 대한 사측의 경비 지원을 부당노동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사용자가 노동조합에 금전을 지원하는 것은 형사법 위반으로 처벌되며 노동조합이 전임자 급여 지급을 사측에 요구하는 것 또한 위반 사례에 해당한다. 단,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근로시간 또는 임금을 상실하지 않고 사용자와 협의하는 것을 사용자가 허용하는 경우는 예외로 둔다. 영국 또한 사용자가 초기업 단위 노동조합의 조직에 대해 어떠한 금전적 지원이나 물질적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노동조합 측도 노동조합의 자주성 유지를 위해 사용자 측에 금전을 비롯한 물질적 지원을 요구하지 않는 것을 관례로 생각한다. 특히 영국의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정하는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통합법’은 사용자 또한 그 노동자 연합체의 처분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규정하고 있으며, 노동자 연합체가 사용자로부터 재정적·물질적 지원 등을 받지 않음으로써 사용자로부터 개입을 받지 않는 독립된 단체일 것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업장이 근로시간 면제 제도로 타격을 입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근로시간 면제 제도로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대형 사업장이나 병원과 같은 산발적 사업장이 하나의 노조로 묶여 있는 경우입니다. 대형 사업장의 경우 총 인원대비 전임자가 턱없이 줄어 실질적인 활동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고, 종합병원처럼 전국 각지에 사업장이 흩어져 있는 경우에는 한 사업장당 인원이 많지 않은 데다 같은 브랜드의 병원 노동자 전체 인원이 하나의 단위로 분류되는 바람에 사업장별 노조 운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집니다.”
민주당 조춘화 노동전문위원은 오히려 노조 활동 자체에 어려움을 겪던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전임자 인원이 법으로 정해져 노조 전임자의 합법성을 인정받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사업장마다 특성이 다른 만큼 노조 전임자 수를 법으로 규제할 것이 아니라 노사 합의를 통해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를 비롯한 야당과 노동계의 의견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노조법에 대한 입장은 매우 단호하다. 2007년 노동부의 ‘복수노조 허용과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이 노사관계,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 및 경제적 효과분석’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노사관계 비용(2005년 기준)은 2조8544억원에 달한다. 특히 회사의 전임자 급여비용은 3243억원이지만, 노조 전임자의 투쟁 및 파업 선동, 전임자 수 확보와 대우에 대한 분쟁으로 인한 파업, 작업장 분위기 및 생산성 저하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감안하면 노조 전임자 문제로 파생되는 피해규모는 몇십~몇백 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손실만을 따진다면 경영자 입장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줄만한 근거는 몹시 미약해 보인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활동인 노동조합의 근간이 되는 노조 전임자 활동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이권 다툼이 아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고 이해의 폭도 너무 넓기에 그 간극을 줄이기란 만만치 않아 보인다.
6월9일, 한나라당 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초재선 의원 50명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재개정안을 제출했다. 내달부터 시행 예정인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한 현행법을 폐지하고 상급단체 파견 노조 전임자를 타임오프제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해 노동계를 회유하기 위한 정략적 개정안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덕분에 대화의 장은 다시 마련됐다. 노조법을 사이에 두고 끝없이 평행선을 그릴 것만 같던 노사, 여야의 대립 구도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깃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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