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들이 노래실력을 겨뤄 탈락자를 정하는 MBC 음악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연일 화제다. 임재범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시청자를 매료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나가수’의 노래가 감동을 주는 생물학적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봤다.
심지어 방송될 내용을 미리 흘려 김을 빼는 스포일러마저 등장하고 있다. 출연자인 임재범과 이소라가 싸웠다는 엉뚱한 소문으로 인터넷이 시끌벅적하기도 했다. JK김동욱이 가사를 잊어 재녹화했고 이것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당사자가 하차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나는 가수다’뿐 아니라 ‘세시봉 콘서트’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 최근 인기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귀가 감동에 얼마나 굶주려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첨단 음향장비로 다듬어 만든 음악이 아니라, 진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출연자들이 기타를 치는 모습이 방영된 뒤 통기타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뉴스도 있다.
일종의 아날로그가 주는 감성이다. 1990년대 초 서양의 언플러그드 음악 열풍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때로 거칠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한 가수들의 걸러내지 않은 목소리가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일까? 또한 사람이 동물과 달리 그렇게 촉촉하거나 굵거나 감미롭거나 청아한 온갖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소리와 기타의 원리
사람은 부모에게서 목소리의 특성을 물려받는다. 대체로 아들은 아버지, 딸은 어머니와 목소리가 비슷하다. 성대와 머리의 형태가 부모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악기를 피리 비슷하게 만들면 피리 비슷한 소리가 나고, 나팔 비슷한 형태로 만들면 나팔 비슷한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말투도 부모에게서 배울 테니 부모와 더욱 비슷해진다.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곳은 성대다. 성대는 목에서 공기가 지나가는 통로에 있는 엄지 손톱만한 기관이다. 위에서 보면 납작한 고무 밴드가 두 개 걸쳐 있는 듯하다. 숨을 내쉬면 폐에서 나오는 공기의 압력에 고무 밴드가 양쪽으로 벌어진다. 이때 소리가 생긴다.
성대가 전부는 아니다. 기타를 예로 들어보자. 줄을 튕기면 진동하면서 소리를 낸다. 이 소리의 근원이 음원이다. 그러나 실제로 기타 줄에서 나는 소리는 어느 한 음이 아니라 여러 음이 뒤섞인 것이다. 줄의 장력과 길이가 완벽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진동할 때 예를 들어 ‘솔’이라는 음이 주로 나더라도 다른 음들도 섞인다. 기타의 몸체인 울림통은 이 잡음들을 걸러내 ‘솔’이라는 소리만 증폭시킨다. 증폭된 소리는 기타 한가운데에 있는 구멍을 통해 나온다. 구멍은 확성기 역할을 한다.
목소리를 낼 때에도 마찬가지다. 성대가 음원이라면 성대부터 입까지 이르는 통로는 울림통 역할을 한다. 성도라고 하는 이 울림통은 길이가 15~20㎝쯤 된다. 성도를 통해 걸러지고 증폭된 목소리는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가수는 성대와 성도 잘 다뤄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은 각기 다른 소리진동수에 의해 특유의 음을 만들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치와 박치는 타고난 것이며 구제불능이라고 여겼다. 이제 보컬 트레이너나 목소리를 다루는 의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성대에 본래 이상이 있어 소리를 제대로 못 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올바른 지식을 갖추고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한다.
음치가 음치인 이유는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고르게 내뱉어야 한다. 성대를 진동시키는 법을 터득하고 올바른 자세를 취하며 목과 입속의 모양을 알맞게 배치함으로써 성도에서 필요한 음만을 증폭시켜야 한다. 또 입술 모양과 벌어지는 크기 및 혀의 위치를 조절해 정확한 발음으로 원하는 소리가 왜곡되지 않고 퍼지게 하면 된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그러나 얼마든지 음치를 극복할 기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김연우는 어느 순간 반주를 끄고 목소리만으로 노래를 부른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윤도현은 요란한 소리의 전자기타를 비롯해 밴드가 연주하는 와중에 노래를 부른다. 그래도 그의 목소리는 악기 소리에 묻히지 않는다. 가수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도록 마이크를 조절한 덕분도 있지만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 가수의 목소리는 묻히지 않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우리가 대화할 때 옆에서 피아노만 쳐도 상대방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 말이다.
과학자들은 진동수의 차이를 주된 이유로 꼽는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은 대개 진동수 500㎐ 근방에서 최대 소리를 낸다. 사람의 귀는 20~2만㎐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3000~4000㎐ 소리에 가장 민감하다. 평소 말할 때 내는 소리의 진동수는 100~220㎐다. 즉 성대가 떨리면서 내는 이른바 기본 진동수가 이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에 말할 때는 목소리가 주위의 악기 소리에 묻히기 쉽다.
가수들이 노래할 때 내는 소리는 다르다. 진동수가 말할 때보다 더 높게 나온다. 소프라노는 1500㎐까지 낼 수 있다. 성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리 법칙에 따라 모든 울림통은 공명할 때 원래 음의 정수배에 해당하는 음들도 낸다. 소프라노가 성대로만 1500㎐의 소리를 내면 성도는 3000㎐의 배음을 만들어낸다. 이런 배음은 소리에 힘을 불어넣는다. 가수는 연습을 통해 이 둘이 조합을 이루어 입 밖으로 나오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악기 소리보다 훨씬 더 잘 들리는 소리를 낸다.
여기에다 목소리 특유의 음색과 떨림도 주위를 사로잡는 구실을 한다. 임재범의 거친 목소리, 박정현의 비브라토는 악기 소리보다 더 집중하게 만든다.
임재범의 거칠고 굵은 목소리와 김연우의 흔들림 없는 깔끔한 목소리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람의 목은 다 비슷비슷한데 어떻게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모든 악기는 저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만 소리의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기타는 피아노 소리를 낼 수 없다. 비슷한 모양의 현악기라도 바이올린과 첼로는 소리가 다르다. 게다가 악기 소리는 음을 내는 기구의 특성과 울림통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다. 낮고 웅장하게 울리는 소리를 내려면 울림통이 크고 현이 길어야 한다. 높고 새된 소리를 내려면 울림통이 작아야 한다.
반면 사람의 목은 다양한 소리를 낸다. ‘성대모사’의 달인은 피아노 소리뿐 아니라 첼로 소리, 북소리, 피리소리까지 흉내 낸다. 이와 관련해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의 목소리 과학자인 잉고 티체는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말한다.
노력하면 원하는 목소리 갖는다
우리가 듣는 소리란 공기의 진동이며, 공기가 진동하려면 일정한 간격으로 떠는 물체가 있어야 한다. 그 물체가 초당 얼마나 떠는지를 나타내는 단위가 바로 ㎐다. 물체는 탄성이 있어야 떨 수 있다. 즉 휘어질 때 원래 상태로 돌아오려는 힘이 있어야 한다. 물리학 용어로는 장력이다. 갈댓잎을 입술에 대고 잘 불면 잎이 바르르 떨리면서 소리를 낸다. 잎이 바람에 휘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타 줄도 마찬가지다. 잡아당기면 다시 돌아가려는 힘이 있다. 잡아당기는 힘과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힘이 상호 작용을 일으켜 줄이 떨리며 소리를 낸다.
성대도 그렇다. 성대는 고무줄처럼 탄력이 있는 인대와 그것을 움직이는 근육으로 이뤄져 있다. 그 겉을 장력이 있는 점막이 감싸고 있다. 폐에서 나온 공기가 밀려 올라갈 때 인대가 늘어나면서 그 사이의 공간이 벌어진다. 이때 점막이 부르르 떨린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공기의 흔들림이 바로 목소리다.
악기의 현이나 리드는 재료의 특성에 따라 장력이 어느 범위까지 정해져 있다. 장력이 세면 진동수, 즉 음이 높아지고 장력이 약하면 낮아진다. 또 음은 현의 길이에 따라서도 정해진다. 현이 길수록 음은 낮아진다. 현악기는 대개 장력은 고정시켜 놓고 운지(運指)를 통해 현의 길이를 바꾸면서 음을 만들어낸다.
이와 달리 성대는 장력과 길이를 함께 조절할 수 있다. 이럼으로써 다양한 높낮이의 소리를 낼 수 있다. 또 악기와 달리 몸은 울림통의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목을 좁혀 울림통을 나팔 모양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입을 오므리고 목을 넓혀서 다른 모양도 만들 수 있다.
목소리의 굵기는 주로 성대의 부피에 따라 정해지지만 성도의 모양을 바꿈으로써 굵거나 가는 소리도 낼 수 있다. 또 성대와 성도가 닫혔다 열리는 시간차와 그때 생기는 공기 압력 차이로 더 강한 음파를 내기도 한다. ‘나는 가수다’의 출연자들은 많은 연습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요소들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다.
수십 년 전까지 과학자들은 음악과 말이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뇌 손상을 입어 언어 능력에 장애가 생겨도 음악 능력은 간직하는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뇌는 노래와 말을 전혀 다른 영역에서 처리하는 듯했다. 연구자들은 노래는 감성적인 것이므로 우뇌가 처리하고 언어는 이성적인 것이므로 좌뇌가 담당한다고 추론했다.
그러나 1990년대 뇌 기능 영상 같은 첨단 기법이 나오자 결론이 달라졌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자 뇌의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 등 언어를 처리하는 부위가 활성을 띠었다. 뇌에서 음악과 언어를 처리하는 과정은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심리학자 다이애나 도이치는 이를 어머니와 태아의 관계로까지 끌고 간다. 어머니는 배 속의 아기를 위해 이런저런 말도 하고 노래도 불러준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이 어머니의 자궁에 마이크를 넣고 녹음을 해보았더니 말은 어머니의 신체 조직을 통과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게 되고 운율과 선율만 남는다는 점이 나타났다. 즉 태아는 어머니의 말을 음악으로 듣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뒤 어머니가 아기에게 하는 말, 예컨대 ‘까꿍’같은 말 역시 높낮이가 더 크게 변하는 음악적인 소리다. 아기는 음악으로서 말을 배우며 이는 음악과 언어가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이 언어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가정이 성립될 수 있다. 음악을 6개월 동안 가르친 아이 집단과 그렇지 않은 아이 집단을 비교한 결과 전자가 말의 의미와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연구가 있다. 말은 감정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지는데 음악을 통해 음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법을 터득한 아이들은 운율 같은 말의 높낮이 변화를 더 잘 포착한다는 것이다.
도이치는 나아가 어릴 때 배우는 언어가 음악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사성(四聲)을 지닌 중국어처럼 성조가 있는 언어를 배운 이들은 절대음감을 지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성조가 없는 영어를 배우는 미국 아이들은 1만명에 1명꼴로 절대음감을 지니지만 성조 언어를 배우는 중국이나 베트남의 아이들은 그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다. 도이치의 주장에 따르면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모차르트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모차르트 효과가 실제로 있는지 아니면 그저 잠시 그렇다고 느끼는 것에 불과한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번식본능 때문에 음악에 감동
진화생물학자라면 ‘사람이 왜 음악에 감동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 곁에 남아 있으며,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형질이 보편적이라면 그것이 인류가 진화하는 데 어떤 이점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음악은 생존에 어떤 이점을 주었을까? 사실 사냥이나 전쟁에서 음악은 뚜렷한 이점을 제공하지 않는다.
음악이 생존에 주는 이점은 성(性) 선택과 관련 있는 것일 수 있다.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사람은 이성의 관심을 더 끌고 이에 따라 더 많은 후손을 남길 확률이 높아진다.
이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음악은 음들을 아무렇게나 조합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음들을 질서 있게 조합한 것이다. 어떤 음들이 모이면 기분 좋게 들리고 어떤 음들이 모이면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된다. 장조 음악은 즐겁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반면 단조 음악은 무겁고 슬프게 들린다.
피타고라스 이래로 학자들은 화음이 수학적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리학적으로 음들의 진동수가 1.334대1과 같은 복잡한 비율이 아니라 2대1이나 3대2처럼 수학적으로 단순한 비율을 이룰 때 우리 귀에도 듣기 좋다는 것이다. 자연은 본래 수학적이며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의 수학을 선호한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듀크대의 신경생물학자 데일 퍼베즈는 인류의 음악 애호 성향을 인류의 또 다른 보편적 특징인 언어와 관련짓는다. 언어는 인류가 다른 동물들을 넘어 지금과 같은 문명을 만들 수 있도록 한 핵심 형질이다. 퍼베즈는 음악이 우리의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언어를 미묘하고도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상기시킨다고 본다.
퍼베즈 연구진은 600명의 실험 대상자에게 10~20초 동안 문장을 말하게 한 뒤 녹음한 소리를 짧게 끊어 남녀의 음높이 차이 등 개인 차이를 다 지웠다. 이렇게 해서 모든 언어의 공통된 모음을 발성할 때의 높낮이와 진동수를 찾아냈다. 사람이 반복해 내는 높낮이가 일정한 소리는 대화할 때 내는 소리다. 말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높낮이의 음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모음이 그렇다. 이렇게 균질화한 소리를 그래프로 나타내자 놀랍게도 반음계의 12음과 상당히 일치했다. 즉 말과 음악 사이에는 통계적인 상관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소리의 높낮이만을 따지면 말과 음악은 거의 동일하며 인류는 말의 높낮이에 상응하는 음들을 골라 음악으로 삼았다는 뜻이 된다.
인류 진화의 산물
어떤 음의 조합은 협화음이 되고 다른 음의 조합은 불협화음이 되는 이유에 대해 퍼베즈는 모음을 이루는 음들 사이의 간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음 소리는 성도를 거치면서 공명 현상을 통해 나뉜 몇 개의 소리로 이루어진 복합체다. 예를 들어 영어의 ‘O’ 음은 500㎐와 1000㎐의 소리가 함께 들리는 것이다. 그 각각의 진동수에 해당하는 음을 형성음이라고 하는데 퍼베즈는 모음 형성음 사이의 간격이 음악에 흔히 쓰이는 화음의 간격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따라서 음악은 생물학적 토대를 지니며 그것이 우리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퍼베즈는 사람이 즐겁게 대화할 때는 모음 형성음들의 간격이 장조에 상응하고 슬픈 이야기를 할 때는 단조에 상응한다는 가설을 검증하고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장조 음악을 들을 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즐거운 말과 연관 짓고 그에 걸맞은 감정 반응을 일으킨다. 음악은 근원을 모르는 애매하고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 진화의 부산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