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호

북한과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의 核 인정 방정식

“北, 핵보유국 요구는 美 손익계산서 파악 못한 결과”

  • 엄상윤│세종연구소 연구위원 scare96@sejong.org

    입력2011-06-21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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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11일 ‘베를린 선언’을 통해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한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관련 비밀접촉 내용을 폭로하는 외교적 결례까지 범하면서 이명박 정부와는 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공개한 2011년도 ‘연례 안보위협 보고서’를 둘러싸고 이런 우려와 의구심이 재연됐다. 2011년도 보고서에는 2010년도 보고서에 명시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정책’이라는 구절이 누락된 것이다. 그러자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묵인하는 방향으로 대북 핵정책을 수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지리하고 답답한 싸움은 언제 끝날까?
    북한과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의 核 인정 방정식

    아리랑2호 위성이 2006년 10월16일 촬영한 북한 핵실험 추정 지역.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을 훌쩍 넘긴 북핵문제는 아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들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당사국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당사국들은 남북회담→북미회담→6자회담이라는 3단계 회담 개최에도 합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사과 거부로 북핵 회담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11일 ‘베를린 선언’을 통해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한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도 북한의 냉담한 반응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관련 비밀접촉 내용을 폭로하는 외교적 결례까지 범하면서 이명박 정부와는 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6자회담의 조속 재개 여부도 불투명하지만, 6자회담이 재개되어도 회담이 순항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도대체 북핵문제를 둘러싼 지리하고 답답한 싸움은 언제 끝날 것인가? 북핵문제 해결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북핵문제는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든지 아니면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야 막을 내리게 된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를, 북한은 국제적 핵보유국 지위 획득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반된 목표가 지리하고 답답한 싸움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6자회담의 공전(空轉)이 장기화하고 북한의 핵능력이 크게 향상됨에 따라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많다.

    그렇다면 또 다른 종착역, 즉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논리 개발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을 포기하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 찾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북핵문제가 장기화하고 답보상태를 거듭하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크게 향상됐다. 북한은 2004년 1월 영변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공개하고 2005년 2월 핵 보유를 공개 선언했다. 2006년 10월에는 1차 핵실험을, 2009년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2010년 11월에는 평양을 방문한 헤커(Siegfried S. Hecker) 박사를 통해 원심분리기 1000개 이상이 설치된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했다.

    북한은 이런 핵능력을 근거로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에 북한 핵 보유 인정을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지난 3월14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 군축회의에서도 북한은 핵보유국 행세를 하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 이면에는 국제사회의 대북 핵 포기 압력과 제재 해제는 물론 자위수단의 안정적 확보, 6자회담과 북핵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 확보, 국제적 위신과 영향력 제고, 국내정치의 불안정 해소, 북한 주민들의 단합과 사기 진작,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정적 구축, 핵 수출을 통한 경제적 이익 증진 등 다방면에서 핵보유국의 지위와 권한을 적극 활용해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편 한미일(韓美日)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의 거듭된 ‘북한 핵보유 인정 불가’ 공식 천명에도 미국의 북한 핵 보유 묵인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이 북한 핵 보유를 불가피한 현실로 인정하고 대북 핵정책의 목표를 ‘비핵화’에서 ‘비확산’으로 수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를 들어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우려와 의구심은 2010년 4월 “북한이 1∼6개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클린턴 국무장관의 루이빌대 연설을 계기로 크게 증폭됐다. 지난 2월에는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공개한 2011년도 ‘연례 안보위협 보고서’를 둘러싸고 이런 우려와 의구심이 재연됐다. 2011년도 보고서에는 2010년도 보고서에 명시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우리(미국)의 정책’이라는 구절이 누락된 것으로 미루어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방향으로 대북 핵정책을 수정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은 국제적 핵보유국 지위 획득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고 한미일 일각에서는 미국의 북한 핵 보유 묵인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美 안보보고서, ‘북한 핵 보유 인정 불가’ 누락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 지위가 인정되는 방식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범세계적 국제 레짐인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통한 공식 인정이다. NPT는 ‘1967년 1월1일 이전에 핵무기 또는 핵폭발장치를 제조하고 폭발시킨 국가’를 핵보유국으로 규정하고(제9조 3항), 핵보유국과 비핵국의 의무를 별도로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개별 국가들은 NPT 회원국 가입과 동시에 1967년 1월1일 이전에 핵실험에 성공한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을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 5개국은 현재 NPT의 189개 회원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 인정받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선별적 인정을 통한 비공식 인정이다. 미국이 ‘사실상(de facto)’의 핵보유국들 중 일부를 선별해 핵 보유를 인정하고 여타 국가들이 이런 미국의 인정을 추종하거나 묵인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 지위가 비공식적 관행으로 인정된다. 이런 관행은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자 핵 확산 저지를 위한 국제적 감시와 제재를 주도하는 국가라는 점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정부적 국제사회의 속성이 핵보유국 인정 면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2006년 이후), 이스라엘(1960년대 후반 이후), 파키스탄(2001년 이후)은 이런 관행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은 사례다.

    이러한 2가지 방식 중 전자는 현실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1967년 1월1일 이후에 등장한 ‘사실상’의 핵보유국들은 NPT를 통해 그 지위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을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NPT 창설의 목적이 핵 확산 방지에 있는 만큼 핵보유국 지위를 추가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목적 위반이다. 더욱이 NPT 제9조 3항은 ‘사실상’의 핵보유국들의 존재마저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후자의 방식만이 현실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인정 획득이 선결적·절대적 관건이다. ‘사실상’의 핵보유국들이 그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인정부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주로 미국을 상대로 핵보유국 지위 인정 요구를 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미국의 선별 여하에 따라 용인, 적극적 묵인, 소극적 묵인 등 인정 형태도 다소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되는가?

    ‘공식 인정’의 경우는 전술한 바와 같이 NPT 규약에 명문화돼 있다. ‘용인’의 경우도 문서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예컨대, 인도의 사례는 2006년에 체결된 ‘미국-인도 핵협정’에 잘 나타나 있다. ‘묵인’의 경우는 다소 모호한 점이 있지만, 국제적 핵 포기 압력과 제재의 해제가 핵심 판별기준이 된다. 즉, 핵 포기 유도를 위한 설득과 협상 노력의 철회는 물론 핵 보유 저지를 위해 취해졌던 기존의 국제적 압력과 제재 조치들이 해제되면 핵보유국 지위가 묵인되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비핵화’와 ‘비확산’의 경계선도 보다 명확해진다. ‘비핵화’는 핵 포기 압력과 제재의 지속을, ‘비확산’은 이의 해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핵 포기 압력과 제재를 지속하면서 현실적 대응책 모색 차원에서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상정하는 정책은 ‘비핵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 ‘비확산’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루이빌대 연설과 DNI의 2011년도 보고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여하튼 핵보유국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 없이 핵무기를 보유·개발할 수 있는 특권을 향유하게 된다. 따라서 핵개발로 야기된 국제적 압력과 제재의 해제뿐만 아니라 자위수단의 안정적 확보, 핵전력 확충과 신형 핵무기 개발 도모, 국제적 위신과 영향력 제고, 국내정치의 불안정 해소, 국민 단합과 사기 진작 등의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도 핵보유국 지위 획득에 수반되는 다양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 특히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핵보유국 인정 요건과 형태

    ‘사실상’의 핵보유국들이 국제적 핵보유국 지위를 비공식적으로나마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인정’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미국의 인정은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설정된 기준에 의거해 선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의 사례를 분석해보면 핵 보유 능력 입증, 자위권 차원의 핵 보유 정당성, 대미 우호협력정책 구사, 미국의 세계 전략적 활용가치, 핵 비확산 의지와 노력,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구현, 명백한 핵 보유 선언 등이 미국의 인정 요건이다.

    핵 보유 능력 입증, 자위권 차원의 핵 보유 정당성, 대미 우호협력정책 구사는 기본 요건에 해당된다. 인도는 1974년의 최초 핵실험과 1998년의 추가 핵실험 단행 등을 통해 핵 보유 능력을 입증했다. 중국과 파키스탄의 안보위협에 따른 자위권 차원의 핵 보유 정당성도 인정받았다. 1999년 파키스탄과 치른 카길전쟁(Kargil War) 이후 오랜 대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대미 우호협력정책도 적극적으로 구사했다.

    이스라엘은 1966년 네게브(Negev) 사막에서 단행한 비밀 핵실험과 1973년 10월 중동전쟁 이후 매년 2~5개의 핵무기 생산 추정 등을 통해 핵 보유 능력을 입증했다. 아랍국가들의 안보위협에 따른 자위권 차원의 핵 보유 정당성도 인정받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운명공동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1948년 건국 당시부터 대미 우호협력정책도 적극 구사해왔다. 파키스탄은 1998년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등을 통해 핵 보유 능력을 입증했다. 인도의 안보위협에 따른 자위권 차원의 핵 보유 정당성도 인정받았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쟁을 계기로 오랜 대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대미 우호협력정책도 적극 구사했다.

    세계 전략적 활용 가치는 미국의 핵보유국 인정을 가름하는 핵심 요건이자 최소한의 요건이다. 핵보유국 인정을 원하는 국가가 미국의 세계적 패권경쟁 및 안보위협 저지와 직결된 전략적 활용 가치를 크게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여타의 요건들이 모두 충족되어도 이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미국의 인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볼 때, 인도는 중국의 팽창 견제, 인도양·페르시아만·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 영향력 확대, 미국-인도 경제협력,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쟁 수행의 전초 기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 영향력 유지·확대, 이스라엘은 반미 아랍국들 견제, 중동 지역에서의 미국 영향력 유지·확대 등에서 전략적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파키스탄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쟁 수행에서 여타 국가를 활용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치는 1979~8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기에 미국이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군사적 전초 기지로 활용하는 대가로 파키스탄의 핵개발을 묵인해주는 요인으로도 작용한 바 있다.

    핵 비확산 의지와 노력,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구현은 핵보유국 인정의 적극성 여부를 가름하는 부대 요건이다. 이런 요건을 구비한 인도와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적극적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파키스탄은 소극적 인정을 받는 데 그치고 말았다.

    명백한 핵 보유 선언은 용인과 적극적 묵인을 가름하는 부대 요건이다. 인도는 1998년 핵실험 직후 핵 보유를 공식 천명해 용인의 근거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핵 보유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한 입장(NCND)을 취했다. 용인의 근거를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정 요건들의 충족 정도에 따라 미국의 핵보유국 인정 형태도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은 인정 요건들을 모두 충족한 인도에 대해서는 용인, 명백한 핵 보유 선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적극적 묵인, 핵 비확산 의지·노력 및 민주주의·법치주의 구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소극적 묵인의 형태로 핵 보유를 인정하고 있다. 소극적 묵인은 한시적 인정, 즉 전략적 활용 가치 상실과 더불어 철회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198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미국이 파키스탄의 핵개발에 대한 압력과 제재를 재개했다는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쟁 종식 이후 미국이 파키스탄의 핵 보유에 대한 소극적 묵인을 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플루토늄 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2차례의 핵실험까지 단행한 만큼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북한도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인정이라는 험준한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미국의 관문 통과 여부는 결국 미국이 설정한 인정 요건의 충족 여부에 달려 있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은 미국의 인정 요건들 중 핵 보유 능력 입증과 명백한 핵 보유 선언밖에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지정학적 활용 가치 떨어지는 북한

    북한은 뿌리 깊은 대미 적대정책을 외교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현대 세계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대 세습 독재체제, 무자비한 인권탄압, 빈번한 무력도발도 자행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눈을 속여가면서 핵·미사일을 확산시키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따라서 대미 우호협력정책, 민주주의·법치주의 구현, 핵 비확산 의지 및 노력이 인정될 만한 근거가 부재하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위권 차원의 핵 보유 정당성도 미국의 위협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한은 세계 전략적 활용 가치라는 핵심(최소)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세계전략과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 북한의 전략적 활용 가치를 찾아본다면 중국의 세력팽창 견제를 위한 군사기지 차용이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 인접한 한국, 일본과 견고한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있고, 이 두 나라에 대규모의 미군기지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은 한·일을 통해 동북아 지역에서 대중 견제에 필요한 전략적 활용 가치를 충분히 제공받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대중 견제를 위한 북한의 지정학적 활용 가치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고 중국의 세력권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핵·미사일 확산을 일삼음으로써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를 세계 전략적 주요 목표로 설정한 미국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정권 그 자체가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의 견제·타도 대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 보유 능력 입증과 핵 보유 선언 요건 충족은 오히려 미국의 북한 핵보유국 인정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요컨대, 북한은 미국의 인정 요건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요건만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파키스탄의 사례와 같은 소극적 묵인조차 기대할 수 없다.

    북한과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의 核 인정 방정식


    북한과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의 核 인정 방정식

    일본 6자회담 수석대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이 5월11일 외교부 청사를 방문해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강력한 요인들이 존재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비확산’ 정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도 핵보유국 지위를 허용하지 않는 ‘비핵화’ 정책이 대단히 긴요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유출 행태와 경제파탄 상태를 감안하면, 핵보유국 인정은 북한의 핵 유출을 크게 촉진할 것이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놓고 북한의 변방에서 핵 유출을 감시·통제하는 ‘울타리 봉쇄’보다는 핵보유국 지위를 불용하면서 완전한 핵 폐기를 압박하는 ‘원천 봉쇄’가 비확산의 지름길이다. 미국의 북한 핵보유국 인정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하는 오바마 정부의 세계전략과도 배치된다. 핵무기를 열망하는 국가들에 바람직하지 못한 선례도 남기게 된다.

    한·일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이 여타 지역으로 유출·확산되는 것도 골칫거리지만, 미국의 입장과는 달리 북한의 수중에 핵무기가 놓여 있는 것 자체가 커다란 위협이다. 따라서 한·일은 미국의 북한 핵보유국 인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 설령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다고 해도 한·일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경우 한·일은 정당한 명분하에 NPT를 탈퇴하고 독자적 핵무장을 감행할 수도 있다. 한·일의 핵잠재력과 핵무장의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한·일의 독자적 핵무장은 다방면에서 미국의 엄청난 국익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도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만한 근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의 핵 보유는 미국의 세계전략 및 국익 추구와 정면으로 배치될 뿐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인정이 없다면 국제사회의 인정도 기대할 수 없다.

    ‘벼랑 끝 전술’로 버텨도 북핵 인정은 허황된 꿈

    국제사회, 특히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북한의 기대는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무력도발과 ‘벼랑 끝 전술’로 버티고 고집 부린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주는 것은 아니다. 버티고 고집 부릴수록 북한의 운명을 재촉하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만 지속되고 가중될 뿐이다. 20년 이상 핵개발에 매달린 결과가 경제파탄이요 체제위기다.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핵무기가 북한의 생존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생각도 엄청난 착각이다. 핵무기는 외부의 위협을 막는 데는 다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경제파탄과 비민주성에서 야기되는 내부의 위협을 막는 데는 무용지물이다. 북한의 생존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국제사회의 북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은 북핵문제 해결의 종착역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는 분명하다. 다른 하나의 종착역, 북한의 핵 포기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한체제의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생존도 보장될 수 있고 한민족의 밝은 미래도 기약될 수 있다. 북한은 가능성도 없는 핵보유국 지위 획득의 망령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3단계로 예정된 북핵회담을 조속히 가동시키고 북핵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핵 포기 시 핵 보유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더 큰 보상도 제공된다.

    우리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태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대응책 모색 차원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상정하는 것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본질이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북한 핵 보유 묵인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 제기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자’는 심정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핵보유국 인정의 국제정치 생리와 미국의 손익 계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지나친 우려와 막연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은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초래하고, 불필요한 한·미 갈등을 초래하고, 핵보유국 지위 획득에 집착하는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북한·한반도·동북아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의 핵보유국 인정 사례가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섣부른 논리도 적극 경계해야 한다.

    북한과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의 核 인정 방정식
    엄상윤

    1964년 경북 문경 출생

    고려대 정치학 박사

    現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 연구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통일연구원 연구원,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한국적’ 정치이론 2개 개발, 고려대 ‘석탑강의상’ 6회 수상

    논저:‘한국적 국제정치이론의 모색’(공저), ‘동맹의 정치학’(공저), ‘제2공화국시대의 통일논쟁’ 외 다수


    무엇보다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을 포기하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종착역에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핵협상이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고 협상이 재개되어도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한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대북 군사공격을 선택할 수는 없다. 지난하고 힘들어도 북핵협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머리를 맞대고 북핵협상이 성공할 수 있는 묘안을 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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