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호

중·노년의 사랑, 황혼 재혼 열풍

50세 이상 재혼 인구 10년 새 2배 재혼 전문 결혼정보사, 신혼여행사 성업 중

  • 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1-06-21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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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혼 이혼’이 화제가 된 시기가 있다. 노인들이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겠다”며 자신의 인생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때다.
    • 뒤를 이어 최근에는 ‘황혼 재혼’이 화제다. 조건 맞는 사람끼리 늘그막에 위로하며 살자는 수준이 아니다. 20대 청춘 못지않게 뜨겁게 사랑하고 제대로 결혼하려는 50대 이상 시니어가 늘고 있다.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들의 재혼 풍속도를 들여다봤다.
    #1. 재혼을 결심하고 두 번째 남자를 소개받았을 때 첫눈에 이상형임을 알았다. 남자답고 성실하고 여자를 잘 끌어줄 것 같은 확실한 남편감이었다. 사실 재혼 상대를 만날 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지 좀 따지는 편이었는데 그이를 만나면서 더 이상 경제력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직 공무원으로 은퇴한 남편은 경제적 여유 대신 듬직함에 카리스마까지 갖춘 사람이다. 우리의 신혼집은 남편이 살던 작은 아파트였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는 결혼 전 더 넓은 집에서 살았는데 “나를 믿고 따라와달라”는 남편의 말에 아무 불평 없이 따랐다. 재혼 후 다시 앞치마를 두르고 남편의 아침상을 차리면서 소소한 행복감을 맛보고 있다. (55세 여성, 재혼 4년차)

    #2. 재혼한 지금의 아내는 내 첫사랑이다. 우리는 대학시절 만나 연애하면서 결혼을 약속했지만 집안 반대로 헤어졌다. 그 후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행복은 끝났다. 지금의 아내를 다시 만난 건 공교롭게도 전처가 입원한 병원에서였다.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그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였다. 우리의 사연을 알게 된 전처는 죽기 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간곡하게 나와 아이를 부탁했다. 운명처럼 재회한 우리는 두 아이와 함께 못다 한 사랑을 누리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52세 남성, 재혼 5년차)

    #3. 아내와 사별하고 딸 하나를 키우며 홀로 살다 이웃에서 식당을 하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 역시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었는데 항상 씩씩하고 상냥함을 잃지 않았다. 동병상련의 처지여서인지 아내가 식당 일 하는 걸 보면 틈나는 대로 도와줬다. 대신 그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면서 자연스레 정이 들었다. 양쪽 자식들이 모두 학업을 마치고 어엿한 직장을 가진 성인이었던 덕에 우리는 자식들의 응원과 축복을 받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재혼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를 지켜봐온 동네 사람들도 자신의 일처럼 축하해줬다. 우리 부부는 노후에 편안하고 든든한 짝을 만나 외롭지 않게 말년을 보낼 수 있게 된 걸 축복으로 여기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61세 남성, 재혼 3년차)

    싫어도 꾹 참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산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백년해로’가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도 저물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0세 이상 재혼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2001년 남성 8876명, 여성 3867명이던 것이 2005년에는 각각 1만4726명, 7320명으로 늘었고, 2010년에는 1만7202명, 1만212명이나 됐다. 평균 재혼연령도 남녀 모두 높아져 2001년 남성 평균재혼연령은 42.6세, 여성은 37.55세였으나 2010년에는 남성 46.11세, 여성 41.59세가 됐다.

    조건보다 중요한 건 ‘진짜 사랑’



    중·노년의 사랑, 황혼 재혼 열풍

    인천시가 관내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마련한 ‘노인 만남의 날’ 행사 참석자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저 나이에 추접스럽게 무슨?” 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분위기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한 노인 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 결혼정보업체 커플매니저는 “요즘 60대 회원은 노인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라고 했다. 황혼 이혼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도 황혼 재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역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1년 50세 이상 남성의 이혼 건수는 1만7353건이었다. 그러나 2005년에는 2만2829건, 2010년에는 3만3116건이 됐다. 여성의 경우도 2001년 8582건에서 2005년 1만2739건, 2010년 2만852건으로 크게 늘고 있다. 요즘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은 것을 감안하면 50대에 이혼한 뒤 재혼해도 새로운 배우자와 20~30년의 결혼생활을 영위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첫 결혼에 비해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이런 세태 변화는 결혼정보업체에서도 감지된다. 재혼 전문업체 ‘행복출발 더원’의 50세 이상 회원 비율은 2006년 26%에서 2010년 31%로 증가했다. 커플매니저 경력이 10년이 넘는 ‘좋은만남 선우’의 한현숙 과장은 “2006년 329명에 불과했던 50세 이상 가입 회원이 해마다 늘어서 2010년에만 546명의 회원이 새로 가입했다. 올해도 현재까지 200명이 새로 가입한 상태”라고 전했다. 전화 등을 통해 황혼 재혼에 대해 상담하는 이는 더 많다.

    중·노년의 사랑, 황혼 재혼 열풍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50세 이상 재혼 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노후에 자식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점. 얼마 전 한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한 50대 중반 여성은 “재혼 상대의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 부자가 아니어도 된다. 다만 나와 대화가 통하고 건강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이상형을 밝혔다. 본인이 대졸자인데다 사별한 전 남편이 미국 명문대 교수였던 이 여성은 실제로 고졸 출신의 평범한 남성과 맞선을 보기도 했다. 체면이나 돈보다 자신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남편과 사별한 뒤 인생관이 바뀌었다. 진정한 삶의 행복을 누리며 인간다운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고백했다.

    재혼에 대한 생각이나 욕구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이상형에 대한 표현도 스스럼없이 하는 것도 요즘 황혼 재혼 세대의 특징이다. 과거 남성의 경우 ‘밥 해주고 수발 잘해줄 참한 여자’를 찾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은 ‘경제적으로 의지할 사람’을 찾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통적으로 ‘취미와 여가를 함께 즐기며 여생의 동반자로 지낼 사람’을 찾는 경향이 강해졌다. 행복출발 더원의 이소민 부장은 “50세 이상 황혼 재혼 희망자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 있는 분들이다. 여성의 경우에도 이혼이나 사별 이후 생긴 돈으로 사업을 해 재력가가 된 경우가 많다. 최근 재혼한 50대 커플은 남자가 의사였는데 아내와 이혼한 후 죽 오피스텔에서 살아왔고 여성은 빌딩을 갖고 있었다. 요즘 재혼 희망자들은 상대방의 경제적인 능력에 연연하기보다 정서적인 소통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행복출발 더원’이 올해 496명의 재혼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남성의 79%, 여성의 68.4%가 ‘재혼배우자 선택 시 고려사항’ 1위로 ‘성격’을 꼽았다.

    주위 눈치 안 보고 결혼식·신혼여행도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은’ 황혼 재혼 희망자들은 인생 후반전에 자신이 멋진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한다. 커플매니저들은 “나이 든 사람끼리의 맞선이니 젊은이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 황혼들은 조건 맞춰 대충 결혼하는 게 아니라 진짜 연애를 한다. 다투고 화해하고,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데, 그때 그들이 보여주는 낭만과 열정만큼은 청춘의 모습 그대로”라고 입을 모았다.

    자녀 둘을 둔 50대 중반의 의류사업가 김동현씨(가명)는 다섯 살 연하의 약사 이혜진씨(가명)를 만난 뒤 퇴근 후 늘 이씨의 약국으로 가 문 닫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데이트를 즐기고 집까지 바래다줬다. 연애가 무르익었을 때 사업차 해외 출장 갈 일이 생겼는데 이번엔 이씨가 휴가를 내고 동반해 해외에서 꿈같은 일주일을 함께 보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서 두 사람은 소유욕과 집착 때문에 생긴 갈등으로 한 달 넘게 냉각기를 갖기도 했지만, 결국 화해해 연애 8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아내를 놓치기 싫어 내가 ‘예스맨’이 되기로 했다. 20대에 연애를 할 때도 지금처럼 공들이진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진짜 사랑’을 만끽하기 위해 황혼 재혼 커플들은 돈도 아끼지 않는다.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성형외과 등을 찾아 젊음과 건강, 외모 가꾸기에도 힘을 쏟는다. 이윤수 ‘이윤수 비뇨기과’ 원장은 “최근 재혼을 앞두고 비뇨기과를 찾는 40대 중·후반~70대 초반 남성이 많아졌다”고 했다. 이 원장은 “요즘 50~60대는 관리만 잘하면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젊게 보인다. 하지만 젊을 때에 비해 성기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동안 발기 유발 약물이나 주사의 도움을 받던 사람도 ‘신부에게 약을 먹거나 주사 맞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수술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해 가족끼리 약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거나 아예 생략한 채 살림만 합치던 과거와 달리 요즘 재혼 커플들은 당당하고 화려하게 결혼식도 올린다. 쉐라톤워커힐 호텔 관계자는 “황혼 재혼 커플의 예식이 1년에 5~10건 정도 열린다”고 했다. 앞서 소개한 의류사업가 김씨 부부도 서울 시내 특급호텔 웨딩홀에서 양가 부모와 친지, 친구들을 초대해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발리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신접살림에 맞게 집 인테리어를 바꾸고 가구와 차까지 두 사람의 취향에 맞춰 새로 구입했다.

    매년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혼수가구박람회’를 여는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 백화점에 따르면 올봄까지 진행된 16차례 박람회의 구매 고객 분석 결과 40대 이상 중년 부부의 가구 구매율이 매년 5%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년 고객은 젊은 신혼부부보다 씀씀이가 커 평균 구매액이 15%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빙관 담당 장경환 점장은 “결혼 연령이 점차 높아지고 황혼 결혼이 증가하기 때문에 오는 9월 진행할 혼수가구박람회 때는 세계명품가구 및 전통가구, 건강침대 등 중년 고객이 선호하는 상품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자녀 방 인테리어 컨설팅을 무료로 진행하는 등 중년 이상의 재혼 고객을 염두에 둔 프로모션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자녀 = 적극적인 지지자

    초혼 부부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재혼 커플은 신혼여행도 호화롭게 즐기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 매어 있지 않은 경우 유럽 고성 투어나 크루즈 여행 등을 통해 장기 허니문을 떠난다. 이에 따라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재혼전문’의 문구를 앞세운 결혼 관련 업체가 크게 늘고 있다. 재혼전문 결혼정보회사, 재혼전문 웨딩홀, 재혼전문 여행사가 눈에 띄는가 하면 재혼 관련 카페도 인기다.

    황혼 재혼에 자식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도 최근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재혼할 상대에게 자녀가 있으면 결혼을 꺼리는 이가 많았지만 지금은 개의치 않는 추세다. “자기 자식을 키운 경험이 있어야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좀 더 강하고 서로의 자녀를 동등하게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재산이 많은 남성이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기를 기다려 미리 재산분배를 끝낸 뒤 홀가분하게 재혼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자식들이 재혼에 적극적인 경우도 늘고 있다. ‘행복출발 더원’ 이소민 부장은 “20대 후반 아들이 취직을 해서 첫 월급을 탔다며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회사를 찾아온 적이 있다. 어머니 생신 선물로 회원 가입을 해드리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아버지가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인 30대 초반 주부는 아버지의 재혼 상대를 찾기 위해 결혼정보업체 문을 두드렸다. 회원가입 상담 중 그가 제시한 ‘새엄마’의 조건은 “됨됨이와 성품이 훌륭한 사람을 원한다. 학벌은 좀 떨어져도 되지만 자식은 없어야 하고, 나중에 아버지가 병이 나면 수발을 잘해줄 수 있어야 한다”였다고 한다. ‘좋은만남 선우’의 한현숙 과장은 “부모의 재혼을 위해 자녀가 문의해오는 경우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자식들이 부모 재혼에 대해 마음을 여니까 부모들도 솔직하게 ‘연애를 해도 되느냐?’ ‘재혼을 해도 되느냐?’고 의사를 물어보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했다.

    황혼 재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들면서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홀로 사는 노인의 배필을 찾아주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인천시는 지난해 말부터 ‘합독(合獨)’ 사업을 준비해 지난 3월30일 ‘노인 만남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첫 행사를 치렀다. 사업 이름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애민(愛民)’편에 나오는 “목민관은 합독이라 하여 홀아비와 과부를 재혼시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 사업을 위탁받은 인천 노인종합문화회관 김세진 팀장은 “지난해 말부터 관내 10개 군·구에서 전문 상담사가 홀로 사는 노인들의 생활환경을 면밀히 파악한 뒤 신청서를 받았다. 남녀 50명이 참석해 행사 당일 20쌍이 성사됐는데 그중 7쌍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회관 측은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 한 달간 법률상담과 성상담을 진행했다. 김 팀장은 “오는 10월 2차 행사를 열 예정인데 현재까지 남녀 합쳐 70명이 신청했다.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사업이라 신뢰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50세 이상 회원 16만명이 가입해 있는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50~60대 싱글들이 황혼의 로맨스를 즐기는 일은 이제 일반적인 흐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멋진 데이트를 즐기다가 진정한 배필을 만나 안정된 노후를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괜찮은 상대가 있어도 서로 구속하지 않은 채 쇼핑과 여행 등 데이트의 즐거움만 만끽하려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런 걸 통해 삶의 활력과 인생의 가치를 되찾으려는 흐름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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