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미국 현지취재

“1972년, 고장난 핵탄두를 박스로 날랐다 고엽제 드럼통의 아름다운 페인트 똑똑히 기억한다”

주한미군 출신 고엽제 피해자들의 증언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TV 저널리스트 gabjini3@hanmail.net

“1972년, 고장난 핵탄두를 박스로 날랐다 고엽제 드럼통의 아름다운 페인트 똑똑히 기억한다”

1/6
  • ● 6·25전쟁 때 만들어진 무지개 제초제가 고엽제의 원조
  • ● 모기, 거머리 막으려 몸에도 바르고 군화에도 뿌리고
  • ● 미군, 우리 국무총리 허락받고 고엽제 140만ℓDMZ에 살포
  • ● 퇴역 주한미군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충격적인 증언들
  • ● “가해자인 미국이 해결할 문제를… 한국인들에게 미안하다”
“1972년, 고장난 핵탄두를 박스로 날랐다 고엽제 드럼통의 아름다운 페인트 똑똑히 기억한다”

미군기지 내 고엽제 매립 사실을 증언한 전 주한미군 하우스씨.

한퇴역 주한미군의 폭로로 시작된 고엽제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퇴역 군인은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사는 스티브 하우스(54)씨로, 1978년 경북 왜관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600여 통의 고엽제 드럼을 묻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자신이 이 문제를 지금 밝히는 이유에 대해 “나 자신의 고엽제 후유증이 점점 심각해짐에 따라 한국인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의 증언이 보도되자마자 한국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가 말하는 고엽제는 개인의 건강장애뿐만 아니라 수대에 걸쳐 기형 및 건강장애를 일으키고, 광범위한 인위적 환경파괴로 심각한 생태계 교란을 야기하는 등 인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고엽제가 처음 개발된 동기는 아이러니하게도 6·25전쟁이다. 전쟁 발발 당시가 6월이니 한국은 초목이 울창할 때였다. 북한군은 그 울창한 산림 속을 통해 남하했고 적을 식별해야 하는 한국군과 미군에게 이 초록색 산림은 엄청난 장애가 됐다. 고엽제는 “어떻게 하면 이 나무들과 산림을 제거하고 시야를 확보해 전투를 할까”하는 고민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약품을 뿌려 나무의 잎사귀를 말려 죽여야 시야를 확보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화학물질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고엽제의 이름이 무지개 제초제(Rainbow Herbicides)였다. 이 물질을 담은 드럼통에 에이전트 블루·오렌지·화이트·퍼플 등 각기 다른 색 페인트를 칠해 구분했다. 무지개라는 예쁜 이름을 쓰며 색깔을 달리 표시한 이유는, 각각의 고엽제가 성분이 조금씩 달라 죽이고자 하는 식물에 따라 에이전트 오렌지를 쓸 것이냐, 블루를 쓸 것이냐가 달랐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2,4-D’와 ‘2,4,5-T’라는 화학 성분이 반반씩 섞인 고엽제다. 이 두 분자 모두 식물의 성장호르몬인 옥신(Auxin)과 구조가 비슷하다. 호르몬은 식물이나 동물 같은 다세포 생물이 자라고 생존하는 데 필요한 세포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지만, 성장호르몬인 옥신은 농도가 아주 높으면 오히려 식물의 잎을 말려 죽인다. 이 원리를 응용해 만든 것이 고엽제다. 식물에 에이전트 오렌지를 뿌리면 식물은 이것을 화학약품이라고 생각지 못하고 성장호르몬인 옥신이라고 스스로 착각해 죽어가는 것이다. 즉 식물에게 고엽제를 성장호르몬이라고 속이면서 식물이 자살하게 만드는 것이다.



“1972년, 고장난 핵탄두를 박스로 날랐다 고엽제 드럼통의 아름다운 페인트 똑똑히 기억한다”

지난 6월2일 경북 칠곡에 있는 캠프 캐럴에서 한미공동조사단이 고엽제 등 묻혀있는 물체를 발견하기 위한 지하수 채취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고엽제가 개발되자마자 미국의 화학회사들이 앞 다퉈 생산에 나섰다. 다우케미컬과 몬산토, 허큘러스, 발레로에너지 등 미국의 7개 고엽제 제조회사가 호황을 누렸다. 호황의 절정은 베트남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랜치 핸드 작전(1962~71년)을 통해 미군은 베트남 전역에 이 고엽제를 살포했다. 베트남도 울창한 정글이 국토에 골고루 퍼져 있는 나라다. 정글은 미군이 베트콩과 전투를 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됐다. 이 정글을 신속하게 제거하는 데 고엽제는 아주 유용한 물질이었다. 비행기로 공중 살포해 베트콩이 은신한 삼림을 고사시키고, 게릴라 장악 지역의 농업 기반인 경작지를 파괴했다. 미군은 당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이 작전은 항공기를 이용해 정글 위 40m 이하 상공에서 시속 240㎞의 저속으로 비행하면서 고엽제를 살포해 4분 이내에 폭 80m, 길이 16㎞의 정글을 완전히 말려 죽였다. 고엽제는 1961년부터 1975년까지 게릴라의 근거지인 사이공 주변이나 떠이닌 성이나 박리에우 성 등지에 대량으로 살포됐다.

미국 재향군인국 자료에 따르면 당시 살포된 고엽제 양은 무려 8360만ℓ에 달했다. 그렇게 미국 화학회사는 베트남전쟁으로 고엽제를 대량 판매하며 큰돈을 벌어들였고 고엽제는 막대한 군수 비즈니스를 창출했다. 미군은 이 고엽제를 사용해 전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돼 좋았고 미국 화학회사는 정부에 고엽제를 팔아 엄청난 이익을 얻어 좋았다. 적어도 이 고엽제가 인간에게 엄청난 후유증을 준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1/6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TV 저널리스트 gabjini3@hanmail.net
목록 닫기

“1972년, 고장난 핵탄두를 박스로 날랐다 고엽제 드럼통의 아름다운 페인트 똑똑히 기억한다”

댓글 창 닫기

2023/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