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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취재

“1972년, 고장난 핵탄두를 박스로 날랐다 고엽제 드럼통의 아름다운 페인트 똑똑히 기억한다”

주한미군 출신 고엽제 피해자들의 증언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TV 저널리스트 gabjini3@hanmail.net

“1972년, 고장난 핵탄두를 박스로 날랐다 고엽제 드럼통의 아름다운 페인트 똑똑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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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최악의 물질 다이옥신

“1972년, 고장난 핵탄두를 박스로 날랐다 고엽제 드럼통의 아름다운 페인트 똑똑히 기억한다”

(위) 6·25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로 쳐들어온 북한군 (아래) 베트남전에 참여한 미군

고엽제 속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인 다이옥신이 함유돼 있다. 이것은 고엽제를 만드는 화학적 과정에서 불순물로 생성된 것이다. 쉽게 말해 일부러 고엽제 속에 첨가한 독극물이 아니라 고엽제를 섞는 과정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다이옥신은 치사량이 0.15g인 청산가리의 1만배, 비소의 3000배에 달하는 독성을 가진 맹독 물질이다. 다이옥신 1g이면 2만명을 죽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 물질은 잘 분해되지도 않고, 용해되지도 않기 때문에 인체에 극히 적은 양이 흡수돼도 점차 몸에 축적돼 각종 후유증을 일으킨다.

베트남전 당시 전장에서 이 고엽제를 살포하던 병사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전투가 치열했던 상황이라 고엽제 후유증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뿌려지는 이 고엽제를 모기약이라고 착각하고 온몸으로 맞거나 거머리 등을 방지하기 위해 군화 속에 뿌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뿌린 지 4분 안에 시야를 확보해주는 이 고엽제가 전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모를 일이다. 다이옥신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미래가 어찌 될지에 대해 그들은 당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이 고엽제에 함유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성분을 파악하고 고엽제 사용을 금지한 때는 1971년이다. 하지만 이미 1964년부터 미국과학자연맹에서는 미국이 에이전트 오렌지를 사용한 생화학무기를 실험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1966년에는 존 에드설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해 30여 명의 과학자가 에이전트 오렌지 살포는 야만적 행위이며,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라고 경고했다. 고엽제 생산 회사들은 생산 단계에서 이미 이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었고 미국 정부도 충분히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베트남전에 이 고엽제가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었던 것은 냉전시대 안보 상황 때문이었다. 고엽제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물질이지만 그때 자유주의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냉전의 신념은 고엽제 휴우증에 대한 우려를 뛰어넘었다. 군사안보를 위해서라면 민주주의나 환경, 복지 등은 희생당해도 된다는 구시대 안보개념이었다. 원래 안보란 외부의 군사적 침략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인데, 이를 이유로 다른 가치들을 희생시켜도 무방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바로 그 안보 개념의 결과이다.

고엽제 휴우증을 살펴보자. 발암성이 가장 높다는 맹독성분인 다이옥신에 의한 폐암, 간암, 임파선암, 혈액암 등의 건강장애가 제일 심각하고, 심각한 생식기능장애, 면역기능 손상으로 각종 전염성 질환에 걸릴 수가 있다. 호르몬조절 기능 손상으로 불임, 기형·장애어린이 출생, 발육 장애 등이 올 수 있다. 에이전트 오렌지에는 맹독성인 다이옥신 외에도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러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다. 피부발진, 사지감각손실, 신경손상, 성욕소실, 불면증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이외에도 두통, 위장염, 신장염, 장출혈, 혈관질환 등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이에 유엔은 고엽제를 ‘제네바 일반의정서’에서 사용 금지한 화학무기로 보고, 베트남전쟁 이후 고엽제 사용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고엽제 후유증은 베트남전이 끝난 이후 참전군인들 사이에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의 이름도 모르고 시름시름 앓는 원인이 고엽제라는 사실을 자각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치는 에이전트 오렌지 때문이었지만 관계당국은 초기에는 참전 군인들의 원인 모를 발병에 대해 고엽제와의 상관성을 발뺌하거나 부인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고엽제와 참전군인들의 질병 간 상관관계가 밝혀졌다. 사람들은 에이전트 오렌지가 밀림을 고사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 노출된 사람들을 오랜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게 만들고 유전적으로 후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들을 슬로 블릿(slow bullet)이라고 부른다. 서서히 죽어간다는 뜻이다.

이 고엽제의 정체를 알고 난 후 미국 베트남 참전군인들은 ‘오렌지 희생자회’를 결성했고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사회에서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79년 9월 오렌지 희생자회가 에이전트 오렌지를 제조했던 다우케미컬 주식회사 등 7개 업체를 대상으로 400억달러 규모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 소송은 무려 5년간 끌다가 1984년 5월 업체에서 고엽제 피해자와 가족에게 1억8000만달러의 기금을 준다는 약속을 받고 합의해 사법부의 판단을 보기도 전에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애초 오렌지 희생자회가 제기한 400억달러에 비하면 그 합의금은 정말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베트남전에 사용된 고엽제의 피해를 군인들이 증명하기가 힘든 상황이었고 너무 오랜 시간 소송에 지쳐서 고엽제 제조회사가 내민 이 합의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이후 미국 정부는 고엽제 피해에 대해 침묵했으며 인정하더라도 되도록 보상 범위를 줄이고자 노력했다. 미국이 모든 고엽제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미국의 베트남 참전 군인뿐만 아니라 호주, 한국, 뉴질랜드 등 다른 참전 국가의 군인들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소송 러시를 가져올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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