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호

“공무원은 듣고(Listening), 배우고(Learning), 반응(Responding)해야”

집무실에 CCTV 단 진익철 서울 서초구청장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입력2011-06-23 11: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공무원은 듣고(Listening), 배우고(Learning), 반응(Responding)해야”
    몸관리를 잘했구나’하고 생각했지만, 보면 볼수록 체구에 비해 그의 장딴지 근육은 유독 컸다. 마주 앉은 테이블 아래로 기자의 시선이 자주 꽂히자 그는 다리를 들어 뭔가를 풀어 들어보였다.

    “이건 근육이 아니라 모래주머니예요. 약 2㎏짜리니까 양쪽에 4㎏짜리를 달고 있죠. 이걸 ‘달고’ 돌아다니면 따로 시간 내 운동할 필요가 없어요(웃음).”

    6월9일 서울 서초동 서초구청장실에서 만난 진익철(60) 구청장은 무언가에 신이 난 사람처럼 보였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의 답변은 막힘이 없었고,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기자는 소풍 가기 전날 초등학생을 떠올리면서 ‘일에 신바람이 났다’는 표현 외엔 마땅히 그의 말과 행동을 나타낼 표현을 찾지 못했다.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한 진 구청장은 서울시 환경국장과 재무국장, 한강시민공원사업소장 등을 지낸 뒤 2009년 퇴직한 행정가 출신.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 구청장에 당선됐다. 한강에 떠 있는 플로팅 아일랜드(세빛둥둥섬) 사업과 수상택시, 서울숲 사업 등 서울시의 대형 사업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그가 건넨 명함에 찍힌 휴대전화 번호와 QR코드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 찍은 이유

    ▼ 구청장 명함치고는 드물게 휴대전화 번호가 찍혀 있네요.

    “선거운동 할 때부터 휴대전화 번호가 담긴 명함을 뿌렸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주민들이 구청장에게 직접 전화하면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되니까요.”

    ▼ 귀찮지 않나요? 억지 민원인도 있을 텐데요.

    “물론이죠. 그런데 그보다는 도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주민들이 구청장에게 전화하려면 여러 번 숙고하고 확인한 뒤 하잖아요? 전화를 받고 현장에 달려가보면 잘못된 구정으로 피해 보는 주민이 허다합니다. 구청 직원이 제게 허위보고한 것도 알 수 있고요.”

    ▼ 허위보고요?

    “취임 직후였는데 한 동네에서 아스팔트 도로공사와 관련한 민원 전화가 자꾸 와요. 현장에 가보니 시방서대로라면 기존 아스팔트를 제거하고 새로 5㎝ 두께의 아스팔트를 깔아야 했는데 기존 아스팔트 위에 덧씌웠더라고요. 기존 아스팔트도 당초 5㎝ 높이로 깔았다가, 몇 년 뒤 그 위에 5㎝를 덧씌워 10㎝였어요. 여기에 또 5㎝를 깔았으니 15㎝ 높이가 된 겁니다. 도로 양쪽 집의 출입구만큼 높으니 집중호우가 내리면 침수피해가 생길 수도 있겠더라고요. 30년간 행정을 했는데 이걸 모르겠습니까?”

    ▼ 그래서요?

    “구청 감사관에게 조사를 시켰더니 감사관도 잘못을 찾아내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공사 담당 팀장, 과장, 주무관을 불렀죠. ‘나는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지냈고, 내 주변에도 설계도면 읽는 사람이 많다. 바로 얘기해달라’고 했어요. 아, 그런데 주무관은 ‘구청장 말이 맞다’고 하는데 팀장은 주무관이 틀렸다는 겁니다. 결국 시공사 사장과 감리회사 사장들을 불렀어요. 감리회사 사장들도 제대로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단을 쳤더니 이실직고하더라고요.”

    ▼ 다시 공사를 했겠네요.

    “그럼요. 서류를 보니 설계변경해서 몇 억원을 더 얹어줬더라고요. 설계시방서대로 다시 공사하고, 설계변경해서 몇 억원 올려준 건 못 준다고 했죠. 대부분의 민선단체장이 이처럼 공무원들이 허위·축소 보고하면 잘 몰라요. 그러니 현장 확인을 해야 합니다.”

    ▼ 구청 곳곳에 ‘현장에 답이 있다’는 문구가 보이는 것도….

    “그럼요. 저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항상 듣고(Listening), 배우고(Learning), 즉시 반응(Responding)하는 소통융합행정을 강조합니다.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고 얘기를 듣죠. 경청(傾聽)은 중요하지만, 듣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주민 의견에 곧바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건 구청장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구청 직원 1300여 명이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관료 계층제 없앤 ‘파격’ 현안회의

    “공무원은 듣고(Listening), 배우고(Learning), 반응(Responding)해야”

    자신의 집무실에 설치된 CCTV를 가리키는 진익철 구청장.

    ▼ 스피드 행정인가요?

    “스피드? 그렇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창의력과 스피드 넘치는 기업문화를 강조하잖아요? 행정도 마찬가지예요.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어야죠. 공무원이 아닌 주민중심의 발상 전환. 이 때문에 사실 처음 6개월간 구청장으로서 상당히 절망했습니다.”

    ▼ 절망까지….

    “주민을 위한 아이디어 내라고 하면 (직원은) 머리 아파 하고(웃음), 현장에 나가 확인하는 것도 기피하고, 심하게는 허위·축소 보고하는 직원도 있었죠. 그래서 간부 60여 명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했고, 아이패드도 구입했어요. 주민들과 빠르게 소통하려면 간부들이 변한 세상에 적응해야 하잖아요? 1년 지났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주민과 소통하려고 현장에 달려갑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주민과의 소통을 ‘입에 달았다.’ 그만큼 구정 철학 핵심도 ‘소통’과 ‘반응(피드백)’이었다. 취임하자마자 구청 대문과 담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한 것도 그렇다. 구청장실 옆 국장실을 옮기고 그 자리에 신문고(申聞鼓)인 ‘직소민원실’을 만든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서초구는 지난해 12월 한국인터넷커뮤니케이션협회(KICOA) 선정 ‘2010년 대한민국 인터넷 소통대상’에서 지자체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의 구정 철학은 다소 파격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가 도입한 ‘현안회의’가 그렇다.

    보통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면 담당자→팀장→과장→국장→부구청장→구청장까지 6단계를 거치기 마련. 그만큼 ‘피드백’은 늦다. 기자 역시 A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을 때 ‘팀장 결재가 안 나서’ ‘국장이 휴가 중이어서’ ‘문서가 넘어오지 않아서’ 같은 대답에 ‘뒷목이 뻣뻣해진’ 경험을 했다. 진 구청장은 이 과정을 없앴다. 관내 주요 민원이 제기되면 부구청장을 비롯한 관련 부서 직원들과 구청장이 직접 머리를 맞대 ‘현안회의’를 연다. 회의 주제가 도서관 건립이면 문화행정과와 재무과, 토목과 등 관련 부서 직원들이 한자리에서 논의하고 구청장이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원스톱 행정’인 셈인데, 그만큼 피드백도 빠르다.

    ▼ 관료 계층제를 없애고 청장이 현안회의를 여는 것은 파격적이라 할 만한데요.

    “그건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행정의 중심은 공무원이 아닌 주민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관료 계층제 폐해는 완벽하게 깨부숴야 해요.”

    2010년 대한민국 소통대상 지자체로 선정돼

    그가 잠시 물을 마시는 사이 배석한 하익봉 행정지원국장은 “‘현안회의’를 통해 지금까지 320여 건의 민원을 심의,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다소 미심쩍다는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직원이 ‘현안회의 개최현황 자료’를 건넸다. 지난해 7월23일부터 올해 6월7일까지 개최된 현안회의는 모두 318건. 통학로 개선 추진계획, 잠원동 경로당 건립 민원 검토, 서초노인전문요양센터 준공지연 대책검토 등 내용도 다양했다.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진 구청장의 손이 올라갔다.

    “관내 한 대학이 대학 부지 내 절개지에 있던 (손을 올린 것은 아름드리나무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나무를 모두 베어냈어요. 구청에서 집중 호우에 대비해 절개지 관리를 당부하는 공문을 보냈더니 나무를 다 베어낸 거죠. 그러니 인근 아파트 주민 수십 명이 주민과 협의 없이 과도하게 벌목했다고 구청장을 호출하더군요. 가서 얘기를 듣고 보니 주민들 얘기도 맞아요. 갑자기 동네 나무가 다 없어졌으니 얼마나 황량하겠어요.”

    ▼ 그래서요?

    “총장을 설득해 다시 나무를 심게 했어요. 대학도 인근 주민들과 소통을 해야 했고, 구청도 관례처럼 공문을 보낼 게 아니었어요. 현장에 가보고 정확한 의견을 담은 공문을 보냈어야지….”

    ▼ 구청장께 전화하면 일이 풀리는군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모든 행정은 법을 근거로 이뤄지고, 구청장 권한을 넘어설 수도 없어요. 그래서 ‘예스’와 ‘노’를 분명히 합니다. ‘노’라고 하더라도 주민들 얘기에 귀 기울이는 게 중요합니다.”

    ▼ 구청 홈페이지에 ‘구청장에게 바란다’ 코너가 있던데요?(기자의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직원에게 구청 홈페이지를 연결해보라고 했다)

    “(홈페이지를) 보세요. 하루 20건가량 올라옵니다. 아침에 제가 가장 먼저 열어보고 답을 해줍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 답하고, 전문적인 부분은 담당자와 과장과 상의하라고 합니다. 과장급은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려줍니다. 물론 구청 직원이 전화를 하죠. 보시다시피 구청 담당자가 언제 민원인과 통화했고 어떤 처분을 했는지 올라오잖아요? 민원이 해결되면 제가 직접 전화를 해 만족도를 점검합니다.”

    “공무원은 듣고(Listening), 배우고(Learning), 반응(Responding)해야”

    진 구청장이 주민들과 반포천 차집관로 현장 점검에 나선 모습.

    ▼ 구청장의 전화에 감동받겠군요.

    “4대강 사업처럼 큰 국책사업에 대해선 ‘나와는 별개’라고 생각하지만, 자기와 관련된 일에 공무원이 전화하면 감동 받기 마련이죠.”

    ▼ 재선을 향한 선거운동 효과도 있겠군요.

    “그건…(웃음). ‘구청장이 그렇게 시간이 남아도나’하는 분도 있어요. 저는 제 역할을 하는 것뿐이죠.”

    “피곤하더라도 공무원 생각 바꿀 때가 됐다”

    ▼ ‘어른이 나서면 아랫사람이 피곤하다’는 옛말도 있는데요.

    “피곤하더라도 생각을 바꿔야죠(웃음). 그렇다고 피곤하게만 하지 않아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는 반드시 보상을 합니다. 우수정책을 제안하고 실행한 직원은 ‘서초 창의행정 명예의 전당’에 올려 인센티브를 주거나 마일리지 점수를 줘요. 일정 점수가 되면 해외 연수를 보내줍니다. 이제는 관행대로, 서열대로 승진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겁니다.”

    ▼ 열심히 뛰어라? 그런 의미로 운동화를 사줬나요?(진 구청장은 올해 초 직원들에게 켤레당 5만5000원짜리 ‘업무용 운동화’를 지급했다)

    “인센티브 예산으로 검은색 운동화를 구입했어요. 정장에도 잘 어울리고, 현장에 달려가기에도 편해 저는 적극 권장합니다.”

    인센티브 예산은 민선 5기 외부기관 평가에서 ‘서초구청이 잘한다’고 받은 포상금을 말한다. 지난해 7월 이후 서초구는 모두 17개 분야에서 모범 사례로 선정돼 7억2400만원의 인센티브 예산을 따냈다. ‘국가생산성 대상 지자체 1위’로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차별화된 보육정책으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서초구청은 자주 언론을 탔다. 옛 토지문서에서 날려 쓴 한자를 꼼꼼히 확인한 지적관리팀의 공로로 ‘조상 땅을 가장 많이 찾아준 구’가 됐다는 뉴스도 있었고, 구청 주차장 차량번호판 인식시스템에 ‘자동차세 체납차량 자동알림 장치’를 장착해 체납 자동차세 1억4000만원을 징수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민원인이 민원신청서를 작성하지 않고 말로 민원을 신청하는 ‘서초 e-스마트 민원센터’도, 지난해 태풍 곤파스로 나무 1만여 그루가 뽑힌 서리풀·말죽거리 공원에 주민들이 기증한 나무로 ‘주민 참여 숲’을 만든 것도 뉴스거리가 됐다. 친할머니·외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면 수당을 지급하는 ‘손자 돌보미 서비스’와 폐(廢)휴대전화를 가져오면 양재천 수영장에 무료입장시키는 아이디어는 다른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고 했는데요, 비리행위에 대해선….

    “철저히 배제합니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One strike out) 제도로 단 한 번의 비리행위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 원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아웃’도 아니고, 가혹한 것 아닌가요?

    “물론 이실직고하거나 반성하면 참작은 합니다. 매주 월요일 간부회의 때는 실패사례를 ‘자아비판’해요.”

    ▼ 자아비판?

    “과천 남태령 넘어가는 길에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램프가 설치돼야 하는데 레미콘 공장이 있어요. 이 공장을 이전해야 하는데 담당 과장이 이전신고를 증설신고로 유도한 겁니다. 법대로라면 공장이 신고를 해도 반려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공장을 봐주게 되는 거죠. 공무원 말을 듣고 증설신고를 냈다가 반려됐다면 구청 행정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을 겁니다. 담당 직원이 잘못을 반성했어요, 이런 사례를 교훈 삼아 다시 실수하지 않으면 되죠.”

    “공무원은 듣고(Listening), 배우고(Learning), 반응(Responding)해야”
    ▼ 구청장도 ‘자아비판’합니까? 구청장 신상필벌은 누가….

    “그건 유권자가 하시겠죠(웃음). 그동안은 스스로 조심해야죠.”

    그는 구청장실 천장 모서리에 달린 폐쇄회로(CC)TV를 가리켰다. 구석에 설치돼 눈에 띄지 않았다.

    봉투 건넬 땐 “CCTV 보세요”

    ▼ 저건 CCTV 카메라인데요?

    “저는 항상 청장실 문을 열고 집무를 봐요. 구청장 당선되고 아는 분들이 찾아와 ‘축하 봉투’를 주려 하기에, 안 받으려다가 ‘밀고 당기는’ 모습도 연출되더라고요. 비서실 직원들도 다 봤을 겁니다. 내가 설령 (봉투를) 거절했더라도 모양새가 좋지 않잖아요? 그래서 달았죠. 제가 집무실에 앉아 조는 모습도 비서실 화면에 다 나와요.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투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와서 돈을 줬다고 억지 주장을 하면 CCTV 녹화 기록을 풀면 되잖아요? 비서실 대형 화면에 제가 뭐하는지 다 나오니까 스스로 감시하자, 뭐 이런 자기최면이나 암시적인 뜻도 깔려 있어요.”

    ▼ 불편하지 않나요?

    “아뇨. 오히려 편합니다. 한번은 제가 서울시에 있을 때 모셨던 선배 공무원이 축하하러 왔다가 ‘직원들과 회식하라’며 봉투를 꺼내려 하더라고요. 손짓만 했죠. ‘저거 보시라’고. 그랬더니 ‘예끼 이 친구 보게’하면서 봉투를 다시 넣었어요.”

    ▼ 그렇군요. 인터뷰 전 자료를 보니 ‘아이돌보미 서비스’가 눈에 띄던데요.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면 수당을 주는 것도 그렇고요.

    “저출산은 참 문제입니다. 서초구 출산율은 0.93명입니다. 서울시 전체로는 0.96명, 전국 평균은 1.15명이에요. 왜 아이를 안 낳느냐? 구청에서 출산장려금을 준다고 낳겠습니까? 아이 맡길 곳이 없어요. 우선 소득에 관계없이 두 자녀 이상 둔 가정에 월 40시간 돌보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교육과정을 이수한 65세 이하 여성이 돌보고 구청이 관리하니까 믿을 수 있어요. 그리고 손자를 가장 잘 돌봐줄 분은 친(외)할머니 아닌가요? 이분들에게 수당을 주고 손자를 돌보라고 하면, 일자리도 생기고 부모도 믿을 수 있죠(이러한 보육정책으로 서초구는 지난해 9월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셋째부터는 소득에 관계없이 대학 등록금 전액을 주려고 지금 조례를 만들고 있어요.”

    ▼ 소득에 관계없다는 건데, 서초구는 일반적으로 집값이 비싸 고소득 주민이 많은데요.

    “그런 지적도 있지만, 보금자리주택 등으로 관내 임대아파트도 꾸준히 들어서고 있고….”

    ▼ 서울에서 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곳도 서초구인데요(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지난 2월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1995년, 2008년 연령별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서초구 기대수명은 83.1세로 나타났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최고였다).

    런던, 파리, 밴쿠버 같은 ‘삶의 질’ 도시 만들 것

    “그렇습니다. 사는 동네의 주거환경과 생활수준, 구청이 제공하는 서비스 등이 모두 주민 건강과 기대수명에 영향을 미칩니다. 일례로 자외선 지수가 높은 날에는 구청이 오존주의보 문자를 보내고, 황사가 많은 날에는 도로 물청소 빈도를 높이는 것도 영향을 줍니다. 구에서 지속적인 건강 시책을 펼치면 궁극적으로는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유방암 제로 프로젝트나 암예방 대학, 대사증후군 관리, 성인병 건강검진 등 보건소 프로그램과 어린이 안전급식지원센터 운영, 학교별 건강매점 지원 등에도 신경을 쓰고 있어요. 서초구만 해도 44만 인구 중 노인 인구가 3만5000명이 넘어요. 그래서 노인종합복지관이 세 곳이나 있고, 복지관마다 70~80개의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 선거 때부터 ‘삶의 질’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는데요.

    “맞습니다. 삶의 질은 수치로 나타내기도, 단기간에 높이기도 어렵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질은 194개국 중 42위였습니다. 우리의 보육환경도, 사교육비나 일자리 문제도, 노인 문제도 간단치 않습니다. 저는 서초를 뉴욕이나 런던, 파리, 밴쿠버 같은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고 싶어요. 이런 도시의 특징은 무엇보다 ‘삶의 질’을 먼저 따집니다. 주민이 원하는 맞춤형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생활환경 속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요소가 도시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주민들이 불편 없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거죠. 주민들의 뜻을 정확히 읽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삶의 질 세계 1등 도시, 서초’는 그렇게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공무원은 듣고(Listening), 배우고(Learning), 반응(Responding)해야”

    서울 양재나들목 국기게양대에 대형 태극기가 걸린 모습.

    ▼ 글쎄요. 다소 뜬구름 같은….

    “(시계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려도 될까요?”

    기자는 “네”라고 답했지만, 그가 되물은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이후 10분이 넘도록 그는 보고서 한 장 보지 않고 ‘대(對)언론 브리핑’을 했다. 브리핑 중간 화제를 돌리고 싶었지만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 추가 질문을 아꼈다. 서초구 주민에게는 유용한 정보일 수 있다는 판단에 그의 브리핑을 요약한다.

    “△서초권역에는 정보사 부지 관통터널 사업을 추진한다. 국방부 계획에 따라 2013년 부대 이전과 동시에 터널 공사를 시작한다. 정보사 부지에 대한 활용방안은 구민 의견을 수렴할 것이다. 예술의전당 인근 문화특구 지정 사업도 유관기관과 협의를 통해 진행한다. △방배권역은 추진되고 있는 9개 지역 ‘방배 재건축 추진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방배동 528번지 일대 등 2개 지역이 정비예정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서울시와 협의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방배동 옛 가야병원 부지에 445억원을 투입해 지하 5층, 지상 6층 규모의 방배종합문화행정센터를 착공한다. 2013년 말 준공 목표다. △반포·잠원권역은 서울시 한강 공공성 재편계획과 연계된 전략정비지구 지정계획을 마련한다. 최고층수를 40층에서 50층으로, 용적률을 250%에서 300%로 완화하고 한강과 연계한 수변문화 중심의 친환경 아파트 단지로 조성한다.△양재권역은 서초구민회관 재건축을 추진한다. 서울시 소유 부지 2100평(6942㎡)에 건립된 노후 구민회관을 재건축할 것이다. 서울시장 승인을 얻어 내년 상반기 중 13층 규모로 착공한다. 우면 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내에 조성할 세계적인 R·D 연구단지 조성사업은 국토해양부 장관의 개발밀도 완화 승인이 나는 대로 용지공급 추천 대상자를 선정한다. 입주 후에는 석·박사 등 고급 연구인력 1만여 명이 활동하는 최첨단 미래 산업단지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 가능합니까?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입니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또 있어요. 태극기….”

    ▼ 태극기요?

    “곧 대형 태극기를 게양합니다.”

    ▼ 어디서요?

    “양재나들목 부근에 높이 50m의 국기게양대를 설치했어요. 6·25 전날 가로 12m, 세로 8m의 대형 태극기를 걸 겁니다. 그곳의 풍향 등을 체크해봤더니 달리는 차들로 일정한 바람이 불었어요. 이로 인해 대형 태극기는 항상 펄럭일 겁니다.”

    “아내의 격려에 선거레이스 완주”

    ▼ 그 정도 크기면 30평 아파트와 맞먹는데, 항상 펄럭일까요?

    “서초나들목에 설치한 가로 7.5m, 세로 5m짜리 태극기로 실험해봤어요. 펄럭입니다.”

    ▼ 명절 차량 정체가 빚어지거나 비가 와도?

    “….”

    ▼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는 이유가 뭡니까?

    “미국에선 집채만한 성조기를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잖아요? 자연히 성조기를 통해 국민화합을 다지는데, 우리나라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서울을 드나드는 길목에서 항상 태극기를 볼 수 있다면 기분도 좋고 애국심도 생기고….”

    그러고 보니, 그는 ‘애국심’을 여러 차례 꺼냈다. 중국 베이징 서울무역관장과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 베이징 수석대표 등 5년 반 해외 근무 경험을 말할 때도 그랬다. 당시엔 ‘좌천’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애국심을 비롯해 많은 것을 깨우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 서울시장 ‘가방모찌’(비서 및 비서실장)를 여러 차례 한 것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한 것도 공무원으로서 애국을 많이 생각한 계기였다고 한다.

    ▼ 개인적인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30년간 행정공무원을 하시다가 선거판에 뛰어든 기분이 어땠나요?

    “처음엔 때려치우려고 했어요(웃음).”

    ▼ 왜요?

    “처음에 (선거) 명함 돌리니까 (시민들이) 안 받더라고요. 저 멀리서 보니까 집사람도 저와 비슷하게 퇴짜를 맞고 있었죠. 집사람에게 너무 미안해 ‘때려치우고 집에 가자’했더니 자기는 더 돌리다가 가겠대요. 눈물이 돌더라고요. 선거 임박해서는 저도 180도 바뀌었어요. 받을 때까지 눈을 쳐다보면서 명함을 건네니까 받더라고요. 그건 종이 한 장 차이였어요.”

    ▼ 내성적인 성격인가요?

    “아버지가 교편을 잡으셨는데 너무 엄하셨어요. 게다가 저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어서 선거 초기엔 고생 좀 했습니다.”

    ▼ 사모님이 구청장을 만든 거네요.

    “그렇게 되나요? 집사람은 아버지 제자 소개로 만났어요. 제가 고시 합격하고 부산에서 수습생활 할 때 부산역에서 만났어요. 집이 안동인데, 고수머리를 하고 왔더라고요. 오랜 시간 기차 타고 왔는데 머리 헝클어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겠어요. 그 마음이 좋아, 곧장 울산으로 가 아버지께 인사시켰어요.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했습니다.”

    진 구청장은 울산 화정동에서 태어나 부산 경남고를 졸업하고 건국대 행정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석사)에서 공부했다.

    ▼ 일각에선 ‘행정의 달인’이라고 하던데요, 행정가로서의 삶에 만족합니까?

    “달인은 아니고요, 저는 그냥 영원한 행정가로 남고 싶어요. 단 하루라도, 단 4년이라도 44만 구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끝까지 섬긴다는 자세로 일할 겁니다. 서초구를 삶의 질 1등 구로 만들고 싶어요.”

    ▼ 1000만 시민을 위해 일하고 싶은 생각도 들 텐데요.

    “아이고, 거기까지야…. 구청장으로서 서울시장과 잘 협조할 겁니다. 시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구청장도 있는데요,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구민들에게 돌아갑니다. 구민을 위해 실리만 취하면 되지,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