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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공 세운 전직 경찰관의 참회록

해수욕장 탈의실 포위해 단체로 끌고 가고 실적 올리려 구치소 수감자까지 넘겨

  • 김형우│전 해운대경찰서 형사

삼청교육대 공 세운 전직 경찰관의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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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공 세운 전직 경찰관의 참회록

김형우 전 경찰관

교육기간 6개월이 지나면 부대에서 다시 데리고 가라고 연락이 왔다. 역시 전경버스에 무장한 형사들을 태우고 가서 인수해왔다. 인원을 세어보면 갈 때보다 2~3명이 적곤 했다. 같이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생사를 모른다고 했다.

1980년 12월 중순 어느 날, 수정동에 사는 한 여성이 사무실로 와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경위를 물어보니 하나뿐인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온 자신의 친구를 마중한다고 부산진역에 갔다가 행방불명됐다는 것이다. 그녀가 처음 찾아간 곳은 부산 동부경찰서였다. 거기서는 해운대에 있는 육군 부대로 가보라고 했다. 찾아가보니 면회가 안 됐다. 그래서 답답한 심정에 해운대경찰서를 찾았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전과나 문신이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했다. 대신 왼쪽 팔뚝에 어릴 때 다친 상처가 있다고 했다. 그 상처 때문에 삼청교육대로 끌려갔음이 분명했다. 학생 신분에 전과도 없고 문신도 없으니 4주 교육만 받으면 귀가할 수 있다고 설득해 돌려보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식을 키우는 처지에서 마음이 아팠다.

이제 우리 가족 얘기를 해보자. 나는 4형제 중 장남이다. 바로 아랫동생이 거구였다. 키가 180㎝ 넘고 체중도 80㎏ 이상이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와 권투를 해 경남도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웠다. 동생은 경남 삼천포 부두와 전남 여수 부두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했다. 전과가 5~6개 됐다.

몇 년 지나 동생은 몸을 크게 다쳐 아무런 활동도 못하는 장애인이 됐다. 조폭 세계를 떠나 어머니와 둘이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면서 근근이 생활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내게 급히 연락해왔다. 삼천포경찰서 형사들이 동생을 잡아갔다는 것이었다. 아차 싶었다. 전과가 있으면 삼청교육대 A급이었다. 교육대상자들을 검거하고 심사하느라 바빠 미처 동생 문제를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 동생에게 피하라는 연락을 하지 못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됐다.



아는 사람을 통해 삼천포경찰서장한테 전화했으나 때가 늦었다. 동생은 이미 창원에 있는 모 육군부대로 넘겨진 상태였다. 주변 인맥을 다 동원해 로비를 한 덕분에 동생은 4주 훈련만 받고 귀가했다.

포상금에 대통령표창까지

상부에서 워낙 실적을 강조하는 통에 각 경찰서는 경쟁적으로 검거에 나섰다. 검거실적이 나쁜 경찰서의 서장은 문책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을 교육대상자에 포함시키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 나는 형사 몇 명을 데리고 부산구치소를 찾아갔다. 사전에 준비한 자료와 정보를 바탕으로 대상자를 골라 삼청교육대로 보냈다.

이런저런 실적으로 내가 근무하는 해운대경찰서는 부산 지역 경찰서들 중에서 가장 큰 실적을 올렸다. 부산지방경찰청에서 내가 받아온 포상금을 계급별로 나눠 지급했다. 뜻하지 않은 돈잔치로 그간의 고충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뛰었던지 김모 형사는 전국 최고의 실적을 인정받아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표창까지 받았다.

검거과정이 불법과 탈법 일색이다보니 삼청교육대 관련 서류는 대외비였다. 절대로 외부에 노출하지 말라는 교육까지 받았다. 삼청교육 대상자 검거가 마무리된 1982년 상부로부터 삼청교육 관련 공문을 비롯한 모든 서류를 소각하라는 지시를 받고 내가 직접 불태웠다.

사정이 이렇기에 국방부의 공식발표 내용은 진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1982년 국방부가 발표한 삼청교육생은 모두 3만9786명. 교육생 중 절반 가까이가 초등학교 학력이었다. 전과 5범 이상이 8.2%, 초범이 22.3%, 아무런 전과 없는 사람이 35.9%였다. 그중 사망자는 57명으로 병사(病死) 36명, 구타 10명, 총기사고 3명 등이었다. 1988년 국회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교육 후유증 사망자가 397명, 부상자가 2786명이었다. 이런저런 정황을 감안하면 실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이보다 20~30% 많을 것으로 본다.

삼청교육대는 이 땅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해운대경찰서 형사계 관리반장직을 수행하면서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삼청교육대로 보냈다. 없는 범죄사실을 자백게 해 육하원칙에 맞게 서류를 꾸몄다. 죽기 전에 이 같은 사연을 세상에 알려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 김 전 경찰관은 1980년 10월 삼청교육 대상자 검거 공로를 인정받아 경찰서장 표창을 받았다. 그는 1993년 경장으로 퇴직했다. 현재 부산의 한 행정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신동아 201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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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전 해운대경찰서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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