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여름 음악축제에서 재충전을!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입력2011-07-20 10: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여름 음악축제에서 재충전을!

    2010년 대관령국제음악제 연주회의 한 장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결정됐을 때 기자의 머릿속에는 겨울보다는 여름 평창이 먼저 떠올랐다. 올림픽이 열리게 될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와 강원도 일원에서 7월24일부터 8월13일까지 제8회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클래식 마니아라면 아마 한번쯤 그 여름의 정취를 만끽해봤을 법한데, 올해는 올림픽 때문에 좀 특별한 울림을 갖게 될 듯하다.

    장마와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주머니에 돈이 좀 부족해도 어디론가 떠나려는 욕망은 마음 바닥에서부터 샘솟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디로 갈 것인가. 북적이는 데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떠들썩하게 여름휴가를 보내려는 이들이 찾을 만한 곳은 많은 반면 정적이고 울림 있는 휴가를 보내려는 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그 대상이 적다.

    대관령국제음악제 개최지는 그중에서도 몇 안 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 음악제의 인기는 티켓 판매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저명연주가 시리즈’(7월28~31일, 8월3~7일)는 6월 초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이틀 만에 매진됐다.

    그렇다고 실망은 금물. 이 음악제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여럿이다. 우선 서울에선 한강반포지구의 새빛둥둥섬에 설치된 스크린 상영회를 통해 대관령에서 펼쳐지는 음악회를 감상할 수 있다. 또 연주회장 바깥 야외에서도 스크린 상영회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간다면 오히려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몇 년 전 용평리조트 콘서트홀에서 연주회가 열렸을 때였다. 당시 실내에서 구경하다가 막간에 서늘한 바깥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가 야외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연주회를 감상하면서 이따금씩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알펜시아 외에 강원 일원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을 갖고 있다면 대관령국제음악제가 마련한 다른 프로그램 ‘찾아가는 음악회’를 찾아가는 것도 좋을 법하다. ‘저명연주가 시리즈’에 참석했던 유명 연주가들이 7월24일 철원 화강문화센터 공연을 시작으로, 25일 춘천 강원대학교 백령아트센터, 29일 원주 연세대 강당, 8월1일 평창문화예술회관, 8월2일 강릉문화예술관, 8일 태백문화예술회관과 평창군 월정사, 8월9일 강릉문화예술관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입장권은 공짜인데 콘서트홀에서 선착순으로 배포한다. 예약도 가능하다. 인근에 머물며 알펜시아 리조트 평창홀에서 열리는 ‘마스터 클래스’나 음악가와의 대화, 떠오르는 연주자 시리즈 등을 구경하는 것도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안목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유명 연주자가 학생들에게 예술적 연주기법이나 표현법을 강의하는 ‘마스터 클래스’ 티켓 값은 1만원이다(강원도민은 무료).



    이번 음악제에서 들을 수 있는 곡들은 ‘빛(illumination)’이라는 주제로 한데 묶여 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인 ‘레퀴엠’, 슈베르트가 죽던 해에 작곡한 현악오중주 C장조 , 멘델스존의 만년 작품인 현악오중주 2번, 쇼팽의 ‘피아노를 위한 바카롤’, 브람스의 심오한 사색이 녹아 있는 ‘클라리넷 삼중주’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처음 예술감독을 맡은 정명화 감독은 ‘빛’을 주제로 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압박, 전쟁의 위협, 질병으로 인한 제약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작곡가들에게도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한 그들의 선택은 우리의 감각과 영혼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빛을 비추며 오랫동안 깊은 영감을 안겨줄 것이다.”

    연주가들의 면면도 눈길을 끈다. 부상을 딛고 재기해 6년 만에 고국의 실내악 무대에 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공동예술감독)와 세계적 클라리넷 연주자 리처드 스톨츠만, 그리고 바이올린의 토드 필립스, 조안 권, 비올라의 로버트 디아즈, 장 슐렘, 첼로의 정명화, 카리네 게오르기안, 피아노의 세실 리카드, 케빈 케너 등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한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베이스 바리톤 전승현과 테너 강요셉, 젊은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와 피아니스트 손열음 등도 한자리에 모인다. 특히 지난 6월 제14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수상한 손열음이 고향 원주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금의환향할 예정이어서 기대가 된다.

    여름 음악축제에서 재충전을!

    2010 BBC 프롬스의 한 연주회. 무대 바로 앞에 관객이 서서 공연을 즐기고 있다.



    BBC 프롬스에 정명훈 등장

    이맘때면 외국에서도 여름 음악축제가 음악 팬들을 손짓한다. 클래식음악에만 한정한다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축제, 스위스 루체른축제, 독일 베를린 음악축제, 미국의 탱글우드축제, 프랑스 액상 프로방스축제, 영국의 프롬스가 단연 돋보인다.

    특히 영국 공영방송 BBC의 여름 클래식음악축제인 ‘프롬스(Proms)’(7월15일~9월10일)는 그 취지가 흥미롭다. 서민들이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회가 열리는 로열 앨버트홀의 경우 한국으로 치면 VIP석이 들어선 1층이 모두 입석으로 티켓은 5파운드(9000원 정도)에 당일 콘서트홀에서 판매된다. 이 표를 사기 위해 연주회 몇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물론 90파운드나 되는 비싼 좌석도 있다. 또 그란 티어 박스(Grand tier boxes)에는 개인 소유 자리들이 있어서 아예 티켓을 구입할 수 없는 좌석도 있다.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향유하게 하겠다는 음악회의 취지는 살아 있다.

    ‘프롬스’는 ‘산책하다, 산책공간’을 뜻하는 ‘프로미나드(promenade)’에서 온 말이다. 영국의 지휘자 헨리 우드가 1895년 시작했는데, 1927년부터 BBC가 이를 맡아서 운영해오고 있다. 외관이나 실내가 고풍스럽고 연주인이라면 누구나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로열 앨버트홀과 카도간홀에서 연주회가 열리고, 9월10일 마지막 날엔 하이드 파크의 야외 음악회와 로열 앨버트홀의 ‘프롬스의 마지막 밤’ 연주회가 대미를 장식한다.

    올해 프롬스는 리스트, 브람스, 드뷔시, 바르톡, 브리지(Bridge), 로시니, 말러 등에 특히 주목하고, 할리우드 영화음악까지 다채로운 곡들을 준비했다. 연주자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 피아니스트 에마뉘엘 액스, 소프라노 수전 불록,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숑,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메조 소프라노 사라 코놀리, 오르가니스트 데이비드 구디, 피아니스트 벤자민 그로수비너·마크 앙드레 해믈린·랑랑,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후드 등이 특별히 조명 받는다.

    프롬스에 지휘자 정명훈이 피아노 연주자로 등장하는 것도 구경거리다. 정명훈은 7월18일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에서 프랑스 출신의 형제 연주자인 르노·고티에 카퓌숑과 함께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연주한다. 정씨가 지휘자가 아니라 연주자로 무대에 서는, 흔치 않은 장면이다.

    브람스의 이름으로

    BBC 프롬스는 특히 브람스를 ‘복권’시키려는 듯 보인다. 연주회 안내 책자인 ‘BBC 프롬스 2011’에는 스티븐 존슨의 특별 기고글 ‘브람스로 돌아가라(Back to Brahms)’가 눈에 띈다. 존슨은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음악을 융합해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브람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기가 식기 시작했다’며 ‘스리 B’(three B: 바흐, 베토벤, 브람스)의 한 명인 브람스를 새롭게 바라볼 때라고 썼다. 올해 프롬스는 ‘대학축전서곡’, 클라리넷4중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교향곡 1~4번, 바이올린협주곡 등 10곡을 준비했다.

    브람스뿐 아니라 제아무리 유명한 작곡가의 곡이라도 클래식 하면 졸리다는 사람이 많다. 클래식이 뭔가? 우리가 고전음악이란 뜻으로 쓰는 클래식은 사실 영어로는 ‘클래시컬(classical)’이다. 클래식(classic)의 원뜻은 ‘전범이 될 만한 고전, 전형, 고대 그리스로마와 관련된 문화’ 등이다. 이런 용어의 혼란만큼 클래식 음악도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처음 들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가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그 음색과 멜로디가 온몸을 휘감을 때가 있다. 어차피 혼돈이고, 쉽지 않은 세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곳이 곧 피안 같다.

    클래식 음악에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노력을 하려는 차원에서 기자는 엉뚱한 노력을 많이 한다. 6월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프라하 방송교향악단이 ‘차이코프스크 교향곡 5번’을 연주할 때의 일이다. 이 곡은 한국인에게 6번 ‘비창’만큼은 익숙하진 않지만, 한때 국내 인기가요의 몇 마디가 1악장, 4악장의 선율과 비슷해 친근감이 든다.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한참 박수를 치면서 보니 주변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1층에서 나 혼자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클래식 연주회장에서 기립박수를 잘 보내지 않는다. 클래식은 점잖기 때문에 경망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언젠가 지휘자 금난새씨는 음악 설명회에서 일부러 사람들에게 휘파람을 불게 하고, 앙코르를 외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연주 도중에는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더라도 연주가 끝나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낼 필요가 있다. 연주자들은 그것을 먹고 사니까.

    여름 음악축제에서 재충전을!
    두 번째 엉뚱한 촌극을 소개한다. 어쩌면 기자가 생각해낸 아이디어 가운데 아내를 만난 것 다음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일 듯하다. 내 이름을 브람스(Brahms)라고 지은 것을 말한다. 바로 그 독일 작곡가의 성과 같은 철자다. 아버지가 ‘현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지만 영어로는 그 이름 앞에 ‘브람스’를 붙여 ‘브람스 현상(Brahms Hyun-sang)’이라고 쓴다. 아버지가 무덤에서 ‘네 이놈’ 하고 일어설 이야기일까? 요즘엔 국제 이름(international name)으로 데이비드니 존이니 케이티니 하는 다국적 이름을 쓰는 사람이 많으니, 뭐 난데없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국인들도 한번 들으면 잊지 못한다.

    이런 촌극을 펼친 것은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을 사랑하면서부터였다. 언젠가 노르베르트 바스 전 주한 독일대사를 만나서 브람스의 성을 무례하게도 이름으로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멋진 생각이다. 나의 성도 사실 스웨덴에선 이름으로 많이 쓴다”며 웃었다. 클래식음악이라는 바다를 내 안에 품으려면 뭐든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