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얼마 전부터 내가 변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별것도 아닌 자극에 자주 훌쩍대는 게 아주 가관이다. 영화와 TV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제출한 창작 과제물도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뭉클해 눈물까지 보이면서도 과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나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분명한 건 하품할 때 흘리는 자연발생적 눈물보다 정서적인 눈물이 몰라보게 많아졌다는 것. 눈물의 양이 적어진 탓은 아닐 텐데 열 살이 넘은 후에는 울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정서가 메마르고 감성을 제어하는 이성의 힘이 강해진 탓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눈물은 나약함의 상징’이라는 진부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눈물의 나약함을 받아들이자
난 확신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나약함을 인정하는, 매우 굴욕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난 어리석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를 왜 부정하고 회피했을까? 내 데뷔작 ‘베사메무쵸’(2001)에 등장하는 철수(전광렬 분)도 눈물에 인색한 가장이다. 철수에게 한 여름 퍼붓는 소나기처럼,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닥쳐온다. 친구 빚보증으로 어마어마한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시련을 겪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한 달 후 온 가족이 아파트에서 쫓겨나며, 설상가상 직장마저 잃는다.
네 아이와 사랑하는 아내 영희(이미숙 분). 어깨가 무거운 가장, 철수에게 아파트는 가족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벽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파트만은 지켜내야 한다. 한 걸음도 내디디기 어려운 때 세상은 영희에게 치명적인 유혹을 한다. 어린 시절 영희를 짝사랑했지만 이제는 대기업의 CEO가 된 ‘선배’가 돈을 빌리러 온 영희에게 제안한다.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면 1억원을 주겠다고.
영희는 생각할 가치도 없는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지만, 무섭게 다가오는 빚 상환 날짜에 몰리게 되면서 갈등한다. 결국 하룻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빚을 갚고 아파트를 구한 뒤 가족들은 예전의 평화를 되찾는다. 하지만 영희는 남편에게 1억원의 제안을 고백하고 괴로움에 집을 나간다.
아내가 없는 어느 여름밤. 철수는 큰 아들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말한다. “아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래서 사람들 앞에선 절대 약한 모습 안 보였어.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빤 울지 않았어…근데…왜 지금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빤 정말 잘하려고 했거든. 잘하려고 열심히 했어…정말 열심히 했는데…아빤 니들한테 상처만 주고 엄말 지켜주지 못했어.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왜….”
아빠가 흘린 ‘남자의 눈물’에 공감한 아들은 조용히 흐느끼며 아빠의 상처를 위로한다. 두 남자는 눈물로 고통을 나누며 성장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할 당시 나는 서른한 살, 미혼이었다. 가족과 부부와 가장이라는 키워드를 영화로 녹여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이켜보면 ‘눈 가리고 외줄타기’한 느낌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위로와 눈물의 가치, 측은지심이 갖는 정서적 에너지를 알게 됐다. 그 후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얻었다. 그리고 몇 작품을 통해 정서적 성장을 경험했다. 요즘 부쩍 많아진 내 눈물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버지를 위로한 내 영화
몇 해 전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떠나시기 몇 달 전, 아버지는 아들의 영화를 보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세 번이나 극장을 찾았다. 위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식욕을 잃었지만 내가 감독한 영화 ‘식객’의 화려한 음식에 군침이 당기셨다고 했다.
‘초대박’은 아니지만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내가 연봉 300만원의 조감독 생활을 할 때는 ‘취직 언제 하냐’고 연일 걱정만 하시던 어른이니, 오죽 기쁘셨을까? 식객이 300만 관객을 막 넘었을 때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하다’고 칭찬하셨다. 아들이 만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으니 장하다고 말씀하시는 건 당연한데 칭찬의 뉘앙스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원인은 신문에 실린 ‘식객’ 관련 기사에 있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기가 막혔다.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애국자가 됐고 나를 칭찬하는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아래는 그때 그 기사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식객’ “편집하라고?
일본 수출 안 해”강경.
영화 ‘식객’이 일본 판매를 거부했다. ‘식객’(감독 전윤수·제작 쇼이스트㈜)이 아시아 각국의 판권 경쟁이 뜨거운 가운데 전 감독이 일본의 편집 요구를 거절했다. 영화 막바지 한일 양국의 역사적 해석 부분을 마음에 걸려 한 한 일본 바이어가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대한 설정을 편집하지 않으면 구매하기 힘들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 감독은 “절대 편집하지 않을 것이다. 이익을 위해서 작품을 해치는 것은 타협할 사항도 아닌 데다 그 이유가 역사적 문제라면 더욱 할 수 없다. 일본에 수출 안 하면 그만이다”는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07.11.18 기사
처음 고백하건대 위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 작품 계약과 동시에 감독은 자동적으로 저작권이 포기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적 문제를 이유로 영화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 영화 산업 구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기사가 홍보성 기사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기사를 감쪽같이 믿으셨고 나를 애국자로 여기셨다.
난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애국자가 된 아들 덕에 투병의 괴로움을 위로받으셨다면 난 그걸로 만족했다. 아버지 장례식 날 영화계 선후배가 많이 찾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걸 보셨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위로해줬다. 큰 위로가 됐고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염하는 날, 창백한 아버지 얼굴에 입을 맞췄다. 열 살 이전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아버지 얼굴에 입술을 대는 게 최초로 느껴졌다. 장례지도사에 의해 면도를 끝낸 아버지 얼굴에서는 기분 좋은 스킨로션 냄새가 났다.
선산에 유골을 뿌리며 투병 중 내 영화로 위로받으셨을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들이 만든 영화를 보러 힘을 내서 지팡이를 짚었을 것이고, 침침한 눈으로 좌석 번호를 확인하셨을 것이며, 불 꺼진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향해 눈빛을 빛냈을 것이다. 그리고 신문에 난 홍보성 기사를 보고 아들을 칭찬하기 위해 내 휴대전화 번호를 하나하나 눌렀을 것이다. 그리고 눈 감는 순간 임종을 보지 못해 괴로워할 아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나는 안다. 위로를 받은 건 아버지가 아니라 오히려 나라는 것을.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위로의 영화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좋아한다. 존 오브라이언의 반자전적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절망 끝에 선 두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 사랑,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그리고 있다. 매번 느낀다. 알코올 중독자 벤과 창녀 세라의 사랑에는 관객을 향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음을.
죽음을 앞둔 아버지로부터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은 것처럼 세라도 죽음의 끝을 향해 달리는 벤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그녀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벤이 변하길 기대하지 않았죠. 그 사람도 날 그렇게 대했어요. 그 사람 인생이 좋았어요. 벤한테는 제가 필요했어요. 그이를 사랑했어요. 정말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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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매번 훌쩍거린다. 대학 강의 때마다 이 자료를 활용하니 적어도 6번이다. 앞으로도 안 울 자신은 없다. 나는 16㎜ 필름이 뿜어내는 거친 이미지에 취한다. 그리고 벤과 세라의 수중 키스와 감미로운 음악에 위로받는다. 그러고 보니 난 너무 많은 위로에 익숙해져 있다. 이젠 줘야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에게 위로가 돼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찍는다. 그것이 내가 위로 받는 길이고 내가 성장하는 길이며 마르지 않는 눈물샘을 유지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