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철이 되면 신문과 TV의 문화뉴스는 공포영화, 공포소설 등 납량특집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호러를 소재로 하는 TV 드라마도 집중적으로 방영된다. 이는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마찬가지다. 왜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지, 왜 어떤 사람은 공포물을 못 보고 어떤 사람은 공포물을 즐기는지 알아봤다.
영혼결혼식 : 바람둥이 구상원은 조아라를 사귀다 그녀가 아이를 갖자 헤어진다. 상심한 조아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구상원을 납치해 죽은 조아라와 섬뜩한 영혼결혼식을 치르게 한다.
영혼결혼식, 물귀신, 자살클럽…
물귀신 : K대학 여행 동아리의 임성준, 김진호, 박은미, 강민은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 등산을 떠난다. 이들은 다른 일행과 만나기로 한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텅 빈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다. 선잠에서 깨어보니 박은미는 마을 중앙의 나무에 목을 맨 채 죽어 있다. 남은 이들은 마을의 정체를 알고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자살클럽 : 숙희는 다른 여섯 명의 자살클럽 회원과 함께 펜션을 찾는다. 동반자살을 감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 회원은 중도에 포기하고 나머지는 차분히 죽음을 준비한다. 이들은 마지막 식사를 차려 맛있게 먹는다. 이어 클럽 회장의 진행에 따라 복어 독을 나누어 마신다.
이러한 스토리의 소설이나 영화는 여름 한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여름=공포영화·납량물’이라는 등식은 미국 할리우드나 우리나라 영화·방송계의 전형적 마케팅 전략이다.
올해엔 동물을 소재로 한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이라는 국산 공포영화가 등장했다. 동·서양에서 고양이는 공포의 대상으로 종종 다루어진다. 이 영화는 KBS 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SBS TV 드라마 ‘시티헌터’에 출연해 ‘안방극장의 요정’으로 자리 잡은 박민영의 영화 데뷔작이어서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른 국산 공포영화인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는 현재 8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미확인 동영상’ ‘기생령’도 개봉될 예정이다.
할리우드에서 공포영화는 멜로드라마, SF, 범죄물, 코믹물, 역사극 등과 함께 대표적인 영화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식스센스’ ‘디 아더스’는 국내 언론에서도 호평을 받은 할리우드 공포영화로 손꼽힌다.
TV에서는 본격적인 납량특집 드라마들이 방영되기도 전에 SBS TV 드라마 ‘신기생뎐’이 할머니 귀신, 장군 귀신, 동자 귀신을 등장시켜 논란을 불렀다. 여러 언론은 “최고급 기생들의 사랑과 애환을 그리겠다는 드라마에서 난데없는 귀신소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드라마 담당자의 출석을 요구했다. TV 연예오락 프로그램도 여름철엔 공포를 테마로 하는 납량 특집을 방영한다. 소설의 경우 ‘공포물의 제왕’인 스티븐 킹의 소설이 올여름에도 선보이고 우리나라 작가들의 공포 소설을 모은 ‘한국 공포 문학 단편집5’도 발간된다.
영화·방송계는 “공포물이 더위를 날려준다”고 마케팅한다. 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납량특집’에서 ‘납량’이란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공포감과 체감기온의 상관관계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상업적 견지에서 이러한 선전이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포물이 여름철 흥행을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장르라는 점은 지난 수십여 년에 걸쳐 확인되고 있다.
‘더위 날려준다’의 상업성
올여름 개봉되는 박보영·주원 주연의 공포영화 ‘미확인 동영상’.
미국 아이오와 대학 연구진은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44세 여성을 관찰했다. 이 여성은 희귀병에 걸려 ‘편도’라는 아몬드 모양의 뇌 부위가 파괴된 상태였다. 편도는 두려움을 촉발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이 부위가 없다면 공포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런지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고 알려진 세상의 모든 것을 이 여성에게 들이댔다. 무섭기로 소문난 공포영화들을 보여주었고 뱀이나 거미 같은 혐오스러운 동물을 근접시켰다. 유령이 나온다는 집에 데려다놓기도 했다. 과거에 겪었을 법한 무서운 일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도 던졌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여성은 정말로 ‘겁’을 상실한 상태였다.
연구진은 이 여성을 무려 20년 동안 연구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 여성은 남의 얼굴에 떠오른 두려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면 행복이나 슬픔 같은 다른 감정들은 정상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이 여성은 한밤중에 한 남자가 칼을 들고 나타나 죽이겠다고 위협할 때도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치료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전쟁을 겪은 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의 편도 기능을 어떤 약물로 완화시킬 수 있다면 불안감이 약화될 것이라는 구상이다.
편도가 두려움을 일으킨다는 가정은 1930년대부터 제기되어왔다. 한 실험에서 원숭이들의 뇌에서 편도를 제거하자 원숭이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 원숭이들앞에 뱀을 갖다놓자 이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뱀의 혀 앞에서 장난을 쳤다. 다른 여러 동물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아이오와 대학의 실험은 인간도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셈이다.
국산 공포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공포의 대상이 ‘귀신’이라면 서구의 공포물에서는 ‘흡혈귀’나 ‘좀비’가 이 자리를 대신한다. 특히 좀비는 최근 제작된 공포물에서 자주 나타난다. 좀비는 죽었음에도 살아서 움직이는 시체다. 본래 서인도 제도의 아이티에서 유래했는데 아이티어로 ‘죽은 자의 영혼’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백인들에게 전파되어 서구문명의 대표적 귀신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영화 속 좀비의 특징 중 하나는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공포란 자신이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측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다.
영화 속 좀비, 현실이 된다?
그런데 좀비는 설화 속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실존했던 존재일 수 있다. 아이티에서 부두교라는 토속종교의 사제들은 죽은 자를 소생시켜 넋이 나간 좀비로 만든 뒤 이들을 노예처럼 부리고자 했다. 부두교 사제들은 실제로 좀비를 만들었는데 이때 좀비는 죽은 자가 아니라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아가는 산 사람이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사제들은 동식물의 독을 이용해서 희생자를 가사상태로 만들었다. 이 독은 ‘쿠파드레’라고 불리는데 주성분은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이다. 복어 요리를 먹고 목숨을 잃는 사례가 간혹 나오듯 복어의 독은 사람에겐 치명적이다. 테트로도톡신은 청산가리보다 5배나 더 강해서 한 방울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여대생 기숙사’의 한 장면.
쿠파드레를 먹으면 곧바로 몸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먼저 입과 혀, 팔다리가 굳는다. 이어 체온이 떨어지고 심장이 거의 뛰지 않게 된다. 눈이 흐려지고 온몸이 창백해지면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희생자가 가사 상태가 되면 사제들은 죽은 양 매장한다. 희생자는 약간의 의식이 남아 있으므로 매장당하면서 정말로 공포에 질리게 된다. 더구나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니 커다란 심리적 쇼크를 받게 된다. 이렇게 산 채로 묻히면서 당사자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가 된다.
이후 사제는 무덤을 파내어 희생자를 소생시킨다. 희생자는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는 심장이 적출되어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좀비를 등장시킨다.
자연에서도 동물을 공포에 무감각한 좀비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달팽이를 감염시키는 기생충이 대표적이다. 달팽이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낮은 단계에 있으므로 본래 숨어 사는 생물이다. 그러나 이 기생충에 감염된 달팽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용감하게 풀잎이나 풀줄기를 타고 나무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달팽이를 본 새는 당연히 재빨리 집어삼킨다. 그러면 기생충도 달팽이와 함께 새의 몸에 들어간다. 기생충은 새의 몸 안에서 더 안락한 삶을 누린다. 즉 기생충은 새의 몸에 들어가기 위해서 달팽이의 뇌를 조종하는 것이다.
최근엔 좀비 개미도 발견됐다. 개미를 좀비로 만드는 것은 곰팡이다. 이 별난 곰팡이는 포자 상태로 개미의 몸속에 들어가서 자란다. 그러다 개미의 뇌에 침입해 개미를 조종한다. 이윽고 개미는 식물의 잎을 타고 올라간 뒤 잎을 꽉 문 상태로 죽고 만다. 나중에 개미의 머리에서 곰팡이 포자가 나와 밖으로 퍼진다.
톡소포자충이라는 아주 흔한 단세포 생물도 다른 생물을 좀비로 만들 수 있다. 이 생물은 숙주의 몸속으로 들어간 뒤 숙주의 신경계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종한다. 한 톡소포자충은 고양이류의 창자에서만 번식한다. 그러나 번식만 안 할 뿐 다른 온혈동물의 몸속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이 기생충은 고양이의 몸에 들어가면 수백만 개의 접합자를 고양이 배설물을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 이렇게 나온 접합자는 사람, 개, 쥐 할 것 없이 어떤 동물의 몸속으로든 들어갈 수 있다.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보는 것은 생쥐와 같은 설치류다. 생쥐는 본래 고양이류를 두려워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대대로 생존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생쥐는 정반대로 고양이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고양이 냄새를 향해 다가가기도 한다. 이런 생쥐가 고양이에게 먹히면 그 생쥐의 몸속에 들어 있던 톡소포자충이 고양이의 몸에서 다시 번식하는 것이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설치류를 조사한 연구자들은 편도에 든 접합자의 농도가 일반 설치류의 두 배에 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톡소포자충이 편도를 억제해서 생쥐의 두려움을 없앤 것이라고 가정해볼 수 있다.
공포영화 못 보는 사람의 경우
이러한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근원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기인하고 자연스러운 생존본능의 발현이라는 점이 나타난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는 두뇌 특정부위의 손상이나 감염 등에 의한 비정상적인 상태로 이해된다. 좀비는 이러한 비정상이 극대화되는 양상이다.
인간이 감염에 의해 좀비가 될 가능성과 관련해, 톡소포자충이 생쥐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감염된다는 점이 확인된다. 이것이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미국 마이애미 대학의 사미타 안드레안스키 박사는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바이러스가 실제로 출현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개에게 광견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좀비 바이러스의 일종이라고 본다. 광견병에 걸리면 공포를 잊고 갈증에 시달려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유일하게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있는데 이것은 물이다. 광견병에 걸린 개는 물을 매우 두려워한다.
안드레안스키 박사는 만약 중추신경계를 감염시켜 흥분, 환각, 불안을 일으키는 광견병 바이러스가 독감바이러스나 에볼라바이러스 같은 강력하고도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결합한다면 좀비 바이러스로 바뀔 수도 있다고 본다. 영화 속에서 좀비가 정상인을 물어 좀비로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이것이 호러영화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과학적 개연성임에는 틀림없다.
사람은 위험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포를 느끼도록 진화했다. 공포감은 ‘피하라’는 신호다. 생명을 걸고 위험을 무릅쓰는 것보다 그냥 위험으로부터 피해버리는 것이 생존확률을 훨씬 높이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두려움에 관여하는 뇌 부위는 편도만이 아니다. 편도는 본능적인, 즉 타고난 두려움을 관장하는 부위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은 칼날이나 뜨거운 다리미에 대한 두려움처럼 경험을 통해 새로운 두려움을 갖는다.
연구자들은 두려움의 학습에는 뇌의 다른 부위도 관여한다고 말한다. 케빈 코코 연구진은 타고난 두려움과 학습된 두려움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다른지를 실험했다. 연구진은 쥐에게 특정한 두려움을 갖도록 훈련시켰다. 특정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전기 충격을 가한 것이다. 그러자 쥐는 이 소리를 들으면 공포로 얼어붙었다.
공포영화 즐기는 사람의 경우
이어 연구진은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을 쥐의 편도와 이어져 있는 신경에 주입해 마비시켰다. 그러자 쥐는 같은 소리를 들어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정상 쥐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타고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즉 복어의 독으로 마비된 상태에서도 고양이를 보면 얼어붙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개체마다 학습된 두려움의 크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 “타고난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고 할지라도 외상 후 스트레스와 같은 학습된 두려움은 없앨 수 있다”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너무나 두려움을 많이 느껴 공포영화를 아예 못 보는 사람의 경우 타고난 두려움은 다른 사람과 비슷하지만 학습된 두려움은 다른 사람에 비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공포영화를 보면 몸이 얼어붙는 것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공포영화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본다. 공포영화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학자는 공포의 극복과 매력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공포를 극복하는 행위는 영화 속 주인공 차원에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 차원에서 각각 진행된다.
먼저 공포영화의 주인공은 살인마가 숨어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내려가는 것을 결코 망설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될 텐데 꼭 혼자서 감행한다. 이때 주인공은 자기 마음속에 내재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이고 이러한 두려움의 극복은 그 자체로 매혹적인 것으로 비친다.
이것은 두려움의 극복이 진보를 가져온다는 경험에 기인한다. 선사시대부터 인류역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은 모험가들에 의해서만 발전해왔다. 이러한 목격이 반복적으로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의 극복은 다수의 사람에게 매력적인 일로 인식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영화의 무시무시한 장면을 끝까지 직시하는 행위는 관객 자신 속에 내재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 된다.
살인마, 좀비, 귀신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면서 무서운 속도로 뒤쫓아오는 장면이 실제 눈앞의 현실이라면 대다수 관객은 무조건 줄행랑을 칠 것이다. 포식자를 피해 겨우 생명이라도 보존하려는 약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장면은 가상의 세계이므로 관객은 이런 무시무시한 현장에서 이탈하지 않은 채 용감하게 다 지켜본다. 현실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이러한 ‘정면으로 마주 대하기’ 행위는 오직 공포영화의 관람을 통해서만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두려움을 떨쳐낸 경험이 관객에게 만족감과 자신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적절한 수준에서 공포를 느끼거나 극복하는 것은 건강함의 징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