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009년 1월22일자에 실린 기사의 부제목이다. 이 기사는 문학수첩에서 6월경 출간할 예정인 댄 브라운(‘다빈치 코드’의 작가)의 신작 ‘솔로몬의 열쇠’(가제)의 선인세로 100만달러를 지급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해외 번역서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한국 출판계가 ‘국제 출판시장의 호구(虎口)’로 전락해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꼬집었다. ‘한국 출판계의 굴욕’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했다.
해외 번역서의 선인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2만달러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10만달러, 20만달러가 우습게 여겨졌다. 그러다가 2008년에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컴퓨터 공학 교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가 64만달러를 기록하면서 곧 100만달러 돌파가 점쳐졌는데 이 기록을 댄 브라운의 신작이 보란 듯이 넘겨버렸다.
필자는 그 기사에 “해외 작품에 선인세 10만달러 이상은 안 주는 것을 불문율로 여기고 지키는 일본 출판계와 비교된다”는 멘트를 달았다. 또 “100만달러면 한국의 작가 200명과 계약할 수 있는 금액”이기에 “출판사들이 국내 콘텐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 저자 발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도 했다.
선인세 100만달러짜리 책 발간 초기에만 반짝
기사에서 언급한 댄 브라운의 ‘솔로몬의 열쇠’는 2009년 12월에 ‘로스트 심벌’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잠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별 힘도 쓰지 못하고 슬그머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사라졌다. 이 책의 선인세는 매우 과도한 투자였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문학수첩은 전세계에서 64개 언어로 번역돼 4억 부가 팔려나간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의 번역본을 펴내 2000만 부 이상 판매한 출판사다. 원래 이 소설의 출발은 매우 미미했다. 중고 타자기로‘해리포터’의 최종원고를 타이핑한 조앤 K. 롤링은 원고를 복사할 돈이 없어 한 번 더 타이핑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이 원고는 영국의 12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끝에 블룸스베리 출판사에서 받아들여졌고, 1997년 6월26일 첫 권‘해리포터와 현자의 돌’이 초판 500부로 출발했다. 하지만 1997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미국에서 출간할 원고를 찾고 있던 스콜라스틱 출판사의 편집이사 아서 레빈의 눈에 띄면서 이 책은 마법에 걸린 책으로 거듭난다.
첫 권이 발매된 지 불과 사흘 뒤 블룸스베리는 이 책의 미국 내 판권을 입찰에 부쳤는데 레빈은 전례 없이 높은 가격인 10만5000달러에 판권을 사들였다. 출판을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대하는 미국인들은 무명 저자를 띄우기 위한 방편으로 높은 선인세를 주고 이를 홍보하기도 하는데 ‘해리포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스콜라스틱은‘해리포터와 현자의 돌’이라는 제목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이름을 바꿔 1998년 8월 초판 5만부를 발행했다. 이후 이 시리즈는 세계 최초의 신화를 써나간다.
스콜라스틱이 10만5000달러나‘질렀다는’사실이 국내에 알려지자 한국의 출판사들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곱 권이나 되는 이 책의 선인세가 걸림돌이었다. 당시 권당 선인세가 1만5000달러였으니 10만5000달러를 한꺼번에 지불하는 것은 위험한 모험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의 명망 있는 출판사들도 모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이 책의 판권을 확보한 출판사는 뜻밖에도 어린이 책을 펴낸 경험이 전혀 없는 문학수첩이었다. 문학수첩의 편집자가 다섯 번이나 사장을 설득해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고 하는데 그 편집자는 바로 문학수첩 김종철 사장의 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