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등산복도 이젠 ‘원소스 멀티 유즈’

패션의 판도 바꾸는 아웃도어 룩

  • 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

    입력2011-07-21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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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서나 볼 수 있었던 등산복, 운동선수만 입었던 바람막이 점퍼가 누구나 평상시에 즐겨 입는 일상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야외 활동이 점차 늘어나면서 다양한 용도의 아웃도어 룩과 다기능 다목적의 야외 용품들이 무서운 속도로 팔리고 있다.
    • 아웃도어 시장의 판도와 요즘 트렌드를 짚어봤다.
    등산복도 이젠 ‘원소스 멀티 유즈’

    ‘K2’의 루클라 4인용 텐트.

    서울에 사는 50대 주부 김씨는 등산과 여행을 좋아한다. 중년의 나이에 지리산 종주를 해본 경험이 있고, 친구들과 계를 만들어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나가기도 한다. 그런 김씨도 집 근처 북한산에라도 가려고 하면, 복장을 고민하게 된다. 예전에는 전문점에 가서 맞춘 수제 등산화를 신고 맵시 있게 손수건을 묶거나 여러 가지 모자를 번갈아 쓰고 나가 나름 멋쟁이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브랜드 등산복을 입고 나오는 친구가 부쩍 많아졌다.

    “솔직히 등산복이나 용품이 너무 비싸요. 그렇게 비싼 옷을 평상복으로 입는 젊은이들을 보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앞산에 오면서도 전문 산악인처럼 다 차려입고 온 사람이 많기도 하고요. 산에서 등산객을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저 사람 입은 옷을 다 합치면 100만원도 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잘 갖춰 입은 사람이 더 보기 좋은 것도 사실이고…. 등산복 로고는 왜 그렇게 하나같이 가슴팍에 잘 보이게 해놓았는지 모르겠어요.”

    브랜드 배낭보다 짐 싸는 방법이, 티셔츠 색깔보다 땀 흡수가 중요하다고 스스로 위안해도 김씨처럼 어느 정도는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은퇴 후 아내와 귀향을 해서 시골에 사는 60대 차씨는 얼마 전 며느리를 봤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가 차씨 부부에게 선물이라면서 바람막이(Windbreaker) 점퍼를 들고 왔다. 쓸데없이 돈을 썼다고 자녀들에게 역정을 냈지만, 점퍼의 가슴에 박힌 브랜드 이름을 알아보고 부러워하는 친구가 많아 은근히 자랑하게 된다.

    “난 그런 브랜드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알아보더라고요. 식당에 갔더니 종업원이 ‘젊은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으셨네요’하면서 멋지다고 칭찬을 하는 거야. 쑥스럽더라고요.”



    젊은 층 공략하는 톱스타들의 광고 전쟁

    등산이나 캠핑처럼 야외 활동을 할 때만 입던 아웃도어 룩(Outdoor Look)이 일상생활 속에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 중장년층의 등산복만이 아니라, 청년층의 배낭과 중·고등학생의 점퍼까지 구석구석을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속속 점령했다. 실제로 아웃도어 룩 브랜드의 매출 신장세는 가파르게 솟고 있다. 업계 1위라는 골드윈코리아의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가 지난해 약 5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3년 안에 1조원을 내다볼 정도다. 올해는 Fnc코오롱의 ‘코오롱스포츠’와 케이투코리아의 ‘K2’ 역시 매출 5000억원 권에 안착할 전망이다. 대체적으로 아웃도어 의류는 노스페이스, 등산복은 코오롱, 등산화는 K2가 강세로, 이 세 브랜드가 3강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블랙야크’를 필두로 ‘컬럼비아’‘트렉스타’에 이어 ‘밀레’‘네파’ ‘라푸마’ 등 다른 브랜드들이 가세하면서 전체 아웃도어 시장의 규모가 올해 4조원, 심지어는 6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부푼 기대까지 나왔다.

    아웃도어 룩의 유행은 광고의 변화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웃도어 브랜드가 TV 광고를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 내용도 외국인 모델이 나와 등산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요즘은 블랙야크의 조인성, 노스페이스 하정우와 이연희, 코오롱스포츠 이승기와 이민정, K2의 현빈 등 젊은 톱스타들이 아웃도어 룩 브랜드의 간판 모델을 맡고 있다. 내용 면에서도 등산뿐 아니라 캠핑, 사이클링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보여준다. 그만큼 아웃도어 룩의 공략 대상이 연령과 분야 모두에서 넓어졌다는 증거다. 광고를 보고 매장을 찾은 20~30대 고객들이 ‘현빈 바람막이’와 ‘조인성 재킷’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웃도어 룩 시장의 현재 풍경이다.

    아웃도어 룩의 인기는 사회 전반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여가에 쏟을 수 있는 구매력이 향상됐으며,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난 것과 연관이 있다. 캠핑을 떠나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닌 만큼, 아웃도어 룩을 일상복으로 입어도 크게 튀지 않는 차림새가 됐다. 젊은 층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K2의 경우만 살펴봐도 2009년에는 20~30대 고객의 비율이 전체의 21%였는데, 2010년에는 28%로 증가했다. K2 멤버십 마일리지 카드인 ‘플러스 카드’ 가입 고객을 기준으로 하면, 1년 새 230%가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패션성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공격적인 스타 마케팅을 펼쳐 기존의 확고한 40~50대 고객층을 유지하는 것에 더해 젊은 세대를 공략해 시장을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 K2 측의 설명이다.

    비옷에서 요가복까지 다종다양

    등산복도 이젠 ‘원소스 멀티 유즈’

    최근 들어 캠핑족이 급격히 늘고 있다.

    기능과 패션은 아웃도어 룩이 좇는 두 마리 토끼다. 이전까지 기능성이 우선이었다면 요즘의 성장은 패션에 힘입은 바가 크다. 지난해 겨울 패딩 점퍼의 매출 호조로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이라고 불렸던 노스페이스가 대표적이다. 노스페이스 홍보팀의 박수경 과장은 “아동부터 노년까지 입을 수 있고 걷기부터 등산까지 적용할 수 있는 품종의 다양함이 노스페이스 인기의 비결인 것 같다”면서 “일상복과 섞어 믹스 앤 매치(Mix·Match)를 하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노스페이스는 ‘세미 아웃도어’ 룩을 표방하고 있지만, 다른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에도 이런 바람이 영향을 미쳤다. K2는 이번 여름에 ‘심플·샤프’라는 개념으로 감각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의 패션을 선보였다. 블랙야크는 K2만큼 전향적이지는 않지만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의 위치를 지키면서도 ‘도심으로 내려온 아웃도어’가 아니라 ‘산으로 올라온 캐주얼’이라는 개념의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이런 경향은 브랜드와 계절을 떠나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K2의 상품기획본부 이태학 상무는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과 세분화한 스타일을 통해 아웃도어 패션 열풍이 패션 전반에 걸쳐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투박하고 나이 들어 보인다는 아웃도어 룩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데 일조한 것은 여성 고객층이다. 비옷, 요가복, 피트니스복 등 활동 범위가 세분됐고 바지뿐 아니라 치마까지 스타일링도 다양해졌다. 신발도 여름 도심과 휴양지 양쪽에서 신을 수 있는 샌들에서 등산용, 달리기용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이제는 패션에 한층 민감한 여성 고객층의 구매력이 아웃도어 룩의 방향을 어느 정도 좌우하게 됐다. 여성을 위한 아웃도어 브랜드 ‘와일드 로즈’가 한채영을, 휠라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휠라스포츠’가 이효리를 모델로 기용한 것에서도 여성 고객을 사로잡으려는 업계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캠핑 품목의 주목할 만한 성장

    젊은 층과 여성 고객의 증가, 패션성의 강화 외에 아웃도어 시장에서 최근 가장 큰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캠핑 용품의 신장세다. 등산이나 낚시를 갈 때 야외에서 단순히 숙박만 하는 것을 뜻했던 캠핑이 식사, 휴식, 놀이를 포괄하는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블랙야크의 경우를 놓고 보면 전년 대비 캠핑용품 비중이 2008년 25%, 2009년 30%를 거쳐, 2010년에는 40%가량 늘어났다. 이른바 ‘주거형 오토 캠핑’의 부상으로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전문가용 외에도 가족을 위한 텐트와 관련 용품들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캠핑 용품의 대표 주자인 텐트가 뚜렷한 변화의 증거다. 요새는 4인 정도가 잠을 잘 수 있는 가족용 텐트가 아니라, 6~8인용 대형 텐트가 많이 팔리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아웃도어 업체들은 침실과 거실 및 부엌 용도로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텐트를 출시했다. 탁자를 내부에 설치할 수 있도록 천장을 높인 텐트나 그늘막이를 확장할 수 있는 텐트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이 눈길을 끌고 있다. 텐트 외에 화로, 야전침대, 탁자, 취사도구 등 관련 제품도 배 이상 쏟아져 나왔다.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에 대한 관심이 아웃도어 시장을 키웠다지만, 아무래도 아웃도어 용품 본연의 목적은 편리함에 있다. 등산, 트레킹, 캠핑 등의 활동에서 제 기능을 십분 발휘하고 나서야 외관도 따지게 된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기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소재 개발과 설계에도 여전히 열심이다. 아웃도어 룩은 야외 활동에서 흐르는 땀을 얼마나 잘 흡수 또는 배출하고 빨리 마르느냐가 중요하다. 고어텍스 소재가 몇 년째 각광을 받고 있으며, 휴대가 간편하도록 만든 가볍고 부피가 작은 제품이 사랑을 받는다. 신발은 충격을 잘 흡수하면서도 착화감이 부드럽고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장마철이나 여름철에는 빗물에 잘 마르는 기능성 슬리퍼와 운동화가 많이 팔린다. 나아가 바깥이 내다보이지만 습기는 막아주는 텐트, 부식되지 않는 휴대용 취사도구 등 아웃도어 룩은 패션이기 이전에 과학이다.

    등산복도 이젠 ‘원소스 멀티 유즈’

    ‘노스페이스’의 아웃도어룩. 평상시에 착용하기에도 손색 없는 디자인이다.



    아웃도어 시장의 승자는?

    아웃도어 시장은 오랫동안 아웃도어 전문 기업으로 뿌리를 내려온 국내외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의 아웃도어 라인, 그리고 패션 브랜드의 아웃도어 라인까지 합쳐져 혼전 양상이다. 등산과 캠핑을 넘어 해양 스포츠, 골프, 스키 등으로까지 눈을 돌리면 그 숫자는 더 많다. 대기업인 제일모직도 내년 봄에 아웃도어 라인을 내보내려고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런 경쟁이 시장의 크기를 키울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고 몰락하는 기업이 생겨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또 몰락하는 쪽이 트렌드를 못 따라잡은 전문기업일지, 아웃도어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패션기업일지 점치기도 힘들다.

    소비자로서는 질 좋고 멋들어진 용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면, 아웃도어 시장의 핏빛 경쟁이 반가울 수 있다. 반면 브랜드 거품이 끼어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용품을 더 비싼 가격으로 사야 한다면, 이 경쟁을 고운 눈으로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게다. 많은 사람이 휴가를 떠나는 여름이 가면 곧 야외 활동하기 더없이 좋은 가을이 온다. 시장의 무서운 확장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소비자의 꼼꼼한 준비와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Tip Box

    아웃도어 용품 고르는 법


    ● 등산복-등산복은 브랜드보다 소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경우에는 대부분 등산에 적합한 소재를 사용하므로 본인이 선호하는 소재를 잘 따져 선택한다. 점퍼는 모자를 떼고 붙이기가 쉬운 것, 상하의 모두 땀이나 비에 젖어도 흡수와 통풍이 잘되고 금세 마르는 것을 고른다.

    ● 등산화-등산화는 발목을 덮느냐 덮지 않느냐를 구분해 비교적 가벼운 등산에는 목이 낮은 것, 겨울철이나 오랜 등산에는 복사뼈 위로 높이 올라온 것을 고른다. 크기는 조금 여유 있는 것이 좋지만 아예 한 치수 큰 것을 고르면 등산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제 치수에 맞는 것을 골라 양말 등으로 조절한다.

    ● 텐트-물기가 스미지 않고 공기가 잘 통하는, 방습과 통기가 텐트 고르기의 관건이다. 자동차에 싣고 가는 여행이라면, 다소 무겁더라도 인원수보다 넉넉한 크기의 텐트를 고르는 것이 무리가 없다. 설치에 자신이 없을 때는 원터치로 설치가 가능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 배낭-등에 잘 붙는지, 쿠션감이 좋은지 확인한다. 어깨끈의 바느질 상태와 지퍼, 버클의 견고함을 살핀다.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의 배낭에는 열과 땀을 흡수, 배출하는 기능을 가진 제품이 많다. 여행 용도에 따라 수납공간의 위치와 크기, 개수를 구매 조건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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