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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내 가서 지식 자랑 마세요’

생명운동의 본산 지리산 실상사와 산내면 사람들

  • 이상락│작가 writersr@daum.net

‘지리산 산내 가서 지식 자랑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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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지 않아도 시골 사람

산내 지역에 살고 있는 도시 출신의 귀농자 대부분은 치열한 자기 모색과정을 거친 뒤에 농촌에 귀의해 육체노동의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을 텐데, 내 처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몸뚱이만 지리산으로 옮겨왔을 뿐 여전히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그쪽에다 전적으로 생계를 의탁하고 있는 터에 누구한테 염치없이 ‘나 지리산으로 이사와 산다’고 얘기를 건넬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얼마 전 텔레비전을 켰다가 마침 도법스님이 출연한 대담 프로를 접했는데 그 발언에 솔깃한 바 있었다.

“농촌 어른들은 대개 지금도 괭이나 삽을 들고 땅을 파거나 경운기로 짐을 나르거나 혹은 톱질을 하는 등 오직 육체노동 하는 것만을 ‘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상사가 있는 산내지역의 어른들은 다릅니다. 귀농자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어떤 사람에게는 그림 그리는 일이 밥벌이가 될 수도 있고, 풍물놀이만 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며,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글만 쓰는 것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다 압니다. 산내면은 산촌이어서 농지가 턱없이 부족한데 도시의 귀농자들이 어떻게 다 농사만 짓고 살 수 있겠습니까.”

도법스님의 그 발언은 내게 ‘그럼 나도 산내면 주민 행세를 해볼까?’하는 용기를 갖게 하는 한편으로 ‘귀농학교 그 후 10년’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주었다. 그러다 어느 비 오던 날, 나는 실상사 극락전으로 향했다.



도법스님은 2003년에 주지를 그만두고 회림원이라는 암자로 올라가 거처해왔는데 지금의 주지스님이 내려오라 청해 실상사 안의 극락전으로 옮겨와 지내고 있노라 했다.

“초기에 귀농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전업농부가 될 결심이 안 된 사람들은 귀농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귀농학교를 운영하면서 관찰해보니 그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서 현대사회의 삶을 살아간다는 건 아무리 소박하게 산다 하더라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처음에 반농반업(半農半業)을 제안한 것입니다. 부부가 귀농했다면 한 사람은 농사를 짓고 또 한 사람은 다른 쪽에 종사해서 용돈을 벌어 쓰자는 거지요. 우리 농촌사회는 너무 단조로워서 현대 도시적 삶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오기에는 너무 삭막해요. 기존에 살고 있는 농촌의 주민들을 위해서도 농촌사회의 정서와 문화가 훨씬 더 다양해지고 풍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든 농촌으로 돌아온 것 자체를 통칭해서 귀농으로 봐야 합니다.”

도농공동체

실제로 도시에서 산내면에 내려와 사는 사람들의 경우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의 교사로 일하기도 하고,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운영하는 방과후학교나 혹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며, 산내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기도 한다. 건축에 관심 있는 귀농자는 거주지를 산내면에 두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생태주택을 짓는다.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은 산림청의 숲 해설사로 일하기도 하고, 혹은 지리산 둘레길의 안내 일을 맡기도 한다. 오히려 이런 다양한 직종의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우리 농촌사회의 문화를 훨씬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도법스님이 주춧돌을 놓거나 계기를 마련해서 생겨난 모임이나 기구나 시설들이 하도 여러 가지여서 한달음에 정리를 해내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귀농학교를 해보자 해서 시작됐는데 이후에 도시와 농촌을 연결할 도농공동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런 차원에서 대안중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가 생겼고, (사)한생명, 여성농업인센터, 인드라망 생활협동조합, 실상사작은마을, 우리옷인드라망 등이 생겨났다. 이 기구나 모임들이 저마다 하나의 구슬이 되어서 인드라망생명공동체라는 구슬그물로 통합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실상사라는 사찰의 운영방식이다. 도법스님이 주지이던 시절에 귀농학교, 작은학교 등 실상사가 중심이 된 공동체사업을 추진해왔는데 2003년에 주지를 그만두게 되자 이 사업들이 흔들리게 된다. 이후 세 번째로 주지를 맡은 지금의 해강 스님이 도법스님이 해오던 활동에 찬동하고 이를 수용해 “사부대중공동체를 하겠다”고 천명함으로써 사찰의 운영방식이 재가자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실상사는 사부대중 공동체입니다. 물론 출가자와 재가자가 신앙적으로는 위계질서가 있으나 사찰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서는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하고 협의합니다. 스님들은 주로 종교적 의식을 집행하거나 불교를 가르치는 등 수행과 교화활동을 하는 데에 열중하고 사찰의 관리와 운영은 재가자가 중심이 되어 이뤄집니다. 실제로 실상사를 운영하는 데 출가자 중에서는 주지스님 한 사람만이 행정적인 소임을 맡습니다. 나머지는 행정을 총괄하는 종무실장이 중심이 되어서 재가자들이 운영해나가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사찰 차원에서 “사부대중공동체를 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동안 도법스님이 해오던 제반 사업을 실상사 차원에서 맡아서 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된 것이다.

최석민(52)씨는 귀농학교 초창기인 1999년 서울에서 내려와 산내면에 살고 있는 귀농 1세대 격이다. 맞벌이를 하던 남편이 귀농을 하겠다며 내려간 뒤 부인 정상은(55)씨는 남편의 귀농이 미덥지 못해 5년 동안이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더 하다가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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