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12월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한국철도기술의 새 지평을 열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고속열차(HSR-350x)가 시속 352.4㎞를 주파하며 시험주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후 한국형 고속열차는 2005년 3월 시속 350㎞ 주행성능 인증을 받고, 그해 11월 누적 주행거리 12만㎞를 달성한다. 같은 달 호남·전라선 KTX 도입 계획에 따른 공개입찰에 참여, 2006년 6월 100량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상용화에 이른다. 이후 90량, 50량 등 3회에 걸쳐 240량 공급 계약도 맺었다. 2010년 3월 운행을 시작한 ‘KTX-산천(山川)’ 얘기다.
KTX-산천의 태동은 이처럼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줬지만,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운행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잇따른 고장으로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더니, 급기야 코레일로부터 ‘리콜 요청’을 받았다. 최근에는 고장으로 인한 운임 환불과 이미지 훼손 등을 책임지라며 코레일이 낸 송사에 휘말렸고, 감사원은 지난달부터 대대적인 감사를 진행 중이다.
한때 국민의 자부심이던 KTX-산천이 지금은 ‘KTX-황천(黃泉)’이라며 조소의 대상이 된 이유는 당연히 잦은 고장 때문이다.
‘KTX-황천’ 전락

지난 2월 광명역 인근 일직터널에서 발생한 탈선 사고 현장 모습. 선로 유지보수 직원의 실수로 발생했다.
KTX-산천 차량 위에 설치돼 전차선과 닿는 ‘팬터그래프’(전기공급 장치)는 중련편성(10량의 두 열차를 이음) 시운전을 할 때 문제가 발생해 제품을 모두 교체했다. 10량 편성 차량에 각 2대의 팬터그래프가 설치됐는데, 중련편성을 하면 전차선이 흔들려 정상모드에서는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장에 대해 당시 일부 철도 관계자는 “단순 고장이 아닌 중대 결함”이라며 제작사의 기술력을 의심했지만, 코레일과 제작사인 ㈜현대로템(이하 로템) 측은 “우려할 만한 수준의 사고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도입 초기 안정화 단계에는 어느 정도 고장이나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5월7일 고양차량사업소에서 KTX-산천 2호기 검수작업 중 모터감속기 고정대 두 곳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견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차량 밑바닥에 있는 모터감속기는 모터블록의 동력을 제어하는 장치로 무게만 약 350㎏에 이른다. 시속 300㎞로 달리다 모터감속기가 떨어졌다면 차체와 충돌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보고를 받은 코레일은 이 차량 제작 결함을 시정해달라며 로템에 ‘리콜’ 조치했고, 나머지 KTX-산천 18편도 정밀 점검했다.
자연히 ‘제작 결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코레일은 정비를 위해 KTX 개통 7년 만에 축소 운행이라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승객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모든 고속열차에 대한 집중 정비에 나선 것이다. 8월에는 그동안 KTX-산천의 고장으로 인해 2억8000만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며 피해구상 청구소송을 냈다. 로템은 2건(488만원)에 대해선 지연료를 납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