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대 총장, “공안은 우등생, 특수는 열등생”
- ‘수사 하나, 안 하나’…갈등 빚은 한상률 개인 비리 수사
- “첩보 잘 받았냐?” “못 받았는데…” 캐비닛으로 들어간 대검 첩보
- 기자들, “특수2부장 인사상 불이익 주지 마라”
- 검찰 고위 간부, “갈등 없었다. 수사 보안 때문에 배당 늦춰”
- 한 총장, 수사 관련 보도에 “니들은 왜 항상 법원 핑계만…”
‘신동아’가 이미 지나간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수사팀과 수뇌부 간 갈등이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생명인 검찰문화를 생각할 때 통상적인 수준을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독 국세청 관련 수사에서 잡음이 났다는 점, 논란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이 현재의 검찰총장이라는 점, 공익과 직결된 중요 사건을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이라는 점에서도 취재와 보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대체 중앙지검의 국세청 관련 수사 과정에선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시곗바늘을 6개월 전으로 돌려보자.
한상률 수사를 둘러싼 논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지난 2월24일 전격 귀국했다. 예고되지 않은 귀국이어서 검찰도 언론도 많이 놀랐다. 한 전 청장 관련 수사를 맡고 있던 특수2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선 처음부터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 간에 갈등이 불거졌다. 직권남용, 인사청탁, 골프장 인사로비 같은 기왕에 제기된 의혹을 바라보는 시각이 수사팀과 수뇌부 간에 달랐다는 것이다. 수사팀이 한 전 청장 관련 사건에 의욕을 보인 반면 수뇌부에선 신중론에 무게를 실었다.
이와 관련, 당시 중앙지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의혹의 대부분은 처음부터 수사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부산에 본사를 둔 태광실업을 서울지방국세청이 세무조사한 것을 두고 나온 직권남용 논란, 골프장에서 인사청탁이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수사대상이 안 된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특수2부는 검찰에 파견 된 국세청 직원들을 수사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나중에는 아예 철수시키면서까지 수사에 정열을 불태웠다. 국세청 직원들이 수사 정보를 빼간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문제로 인해 한때 검찰과 국세청 간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있었다. 국세청 주변에선 특수2부를 겨냥해 “우리도 한번 (검찰을) 뒤져볼까”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한 총장 등 당시 중앙지검 수뇌부는 한 전 청장 관련 수사가 개인비리 문제로 계속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기업으로부터 받은 자문료 등으로 수사가 번지는 것도 마뜩지 않게 생각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윤갑근 3차장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었다. 자문료 관련 부분은 애초 수사를 시작할 때는 몰랐던 것을 우리가 수사과정에서 새롭게 찾아낸 것이다. 이번 수사의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수사방향이나 내용에 대해 의견차이가 있었다는 정도면 몰라도 갈등이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한상률 관련 수사는 누가 와서 다시 해도 더 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8월11일 한상대 검찰총장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검찰 총수로서의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 수사팀에서는 D사와 관련, 한 전 청장이 2007~08년 이 기업이 주류면허를 재발급받는 과정에서 당시 자신의 최측근이던 S씨(현 세무사)를 통해 로비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검토했다. 그러나 수뇌부는 이에 반대했다. 실제 올해 4월경 D사에 대한 수사 여부가 검찰 주변에서 관심사로 떠올랐을 무렵 ‘수사를 하는지’의 문제를 두고 수사팀과 수뇌부의 입장이 달라 기자들 사이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문제를 두고 수사팀 주변에서 당시 ‘검찰 수뇌부가 수사를 방해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이 논란과 관련해 윤갑근 3차장은 “수사팀이 수뇌부에 불만을 표시했다거나, 수사를 방해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수뇌부에서 수사를 할 것인지의 문제에 대해 판단한 것이다. 만약 수사대상자와 (검찰 수뇌부가) 어떤 커넥션이 있어서 수사를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겠지만, 수사의 실효성 등을 판단해 수사를 조율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수사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수사 방해라고 표현한다면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는 검찰조직 자체가 필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윤 차장은 또 “기업수사라는 게 그렇다. 수사할 부분은 아주 작은데, 단서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검사가 ‘일단 뒤져보자’는 식으로 나오면 그걸 정리해주는 역할을 윗사람이 해야 한다. 지난번 프라임저축은행의 경우 수사한다는 사실이 보도된 것만으로도 하루 500억원이 빠져나가는 뱅크런이 벌어졌다. 그런 것은 막아야 한다. 기업을 죽이는 수사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만약 ‘수사로 인해 기업이 볼 피해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검사가 있다면 그런 검사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검 첩보 논란
이희완(63) 전 국세청 국장과 관련된 특수2부의 수사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현재 이 전 국장은 국내 최대 편입학원인 김영편입학원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3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수감돼 있다. 이 전 국장은 2006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을 끝으로 국세청을 퇴임한 이후 최근까지 5년간 SK그룹 계열사 여러 곳에서 30억원가량의 자문료를 받은 사실도 확인돼 별도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윤갑근 중앙지검 3차장은 기자들에게 “(이 전 국세청 국장이 SK그룹에서 30억원가량의 자문료를 받은 것과 관련)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 3월 말, 대검찰청은 이 전 국장이 김영편입학원에서 3억원을 받은 것과 관련된 첩보를 중앙지검으로 내려 보내 수사를 지시했다. 검찰 직제상 중앙지검 3차장은 대검 중수부의 지휘를 받는다. 이 첩보는 통상적인 절차를 거쳐 수사팀에 배당될 예정이었다. 당시 이 전 국장 관련 첩보를 생산, 내려 보낸 대검 중수부 라인은 우병우(현 부천지청장) 대검 수사기획관과 전현준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이었다. 검찰 일각에서는 “우병우 기획관, 전현준 기획관, 최윤수 부장이 모두 서울대 법대 동창이다. 대학 때부터 가까운 관계였다. 한상률 수사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최 부장에게 동창들이 선물로 내려 보낸 것이다”라는 말도 나왔다.
지난 2월28일 검찰에 출두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
참고로, 이 전 국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세청, 검찰 주변에서 한 전 청장의 재산관리인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인물이다. 2008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을 맡아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윤갑근 3차장도 “2008년 당시 수사를 진행할 때부터 이희완씨와 관련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한 전 청장의 재산관리인이란 소문이었는데, 당시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고 개인비리도 발견되지 않아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의 배당은 첩보를 보낸 대검 중수부와 이 사실을 알게 된 특수2부 측의 문제제기가 있은 후에야 이뤄졌다고 한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첩보를 내려 보낸 뒤 한 달쯤 후 대검은 특수2부에 수사 상황을 문의했다. 우병우 대검 수사기획관이 직접 최윤수 부장에게 확인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특수2부에서는 그런 첩보가 중앙지검에 내려와 있는지도 몰랐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검찰 관계자는 “최 부장이 윤 차장에게 항의성 문의를 하고, 대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문의했다고 들었다. 그러고 나서야 사건이 배당됐다. 사건이 배당된 건 4월 말 께로 알고 있다. 첩보가 내려간 건 3월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 사건은 수사팀과 수뇌부 간 갈등이 표면화된 결정적인 사건이 됐다고 검찰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 대해 당시 수사팀을 관할하던 검찰 간부의 얘기는 다르다.
“사실이 아닙니다. 일단 수사에 보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배당을 늦춘 것입니다. 배당한다고 해도 사건 수사를 바로 진행할 상황이 아닌데, 덜컥 사건을 내려 보냈다가 보안이 새면 수사를 시작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수사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속도조절을 한 것이 사건 수사를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판단합니다. 당시 이 사건의 배당과 관련해 대검 중수부와 갈등은 전혀 없었습니다. 수사팀과도 문제가 없었는데 왜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 없으면 수사하지 말라”
한 총장은 당시 특수2부의 국세청 관련 수사상황이 언론에 계속 알려지는 것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후문이다. 이것이 특수2부 수사에 불신을 갖게 된 원인 중 하나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한 총장은 특수부에서 수사상황을 일부러 언론에 흘린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이 전 국세청 국장 사건과 관련해 김영편입학원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한 일간지에 보도된 것이었다.
“검찰이 국내 최대 규모의 편입학원인 김영편입학원(이하 김영학원)이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롯한 당시 국세청 조사 라인에 거액을 건넨 단서를 잡고 (5월)27일 김영학원 본사를 압수수색했다.…한 전 청장을 비롯한 국세청 관계자들에게 10억원대 로비자금을 건넨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일보 5월28일자)
이 보도가 나간 뒤 한 총장은 최윤수 특수2부장을 직접 불러 호통을 쳤다. 기사에 한 전 청장 관련 내용이 적시된 것도 문제였다. 평소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윤갑근 차장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때는 한 총장이 정말 화를 많이 냈다”고 말할 정도다. 윤 차장이 화가 난 한 총장에게 “법원에서 흘러나간 것 같다”고 했는데 한 총장은 “너희들은 항상 법원 핑계만 대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당시 특수2부는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면서 영장에 “이 전 국장이 받은 돈이 한 전 청장에게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한 총장은 “한 전 청장 관련 내용을 명시하지 않으면 영장이 안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수사팀의 설명에 대해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수사를 하지 말아야지”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윤갑근 3차장은 “같이 팀워크를 이뤄 일을 하다보면, 굳이 말로 안 해도 궁합이 딱딱 맞는 관계가 있고,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다. 그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다. 최 부장과 한 총장은 서로 기질상 잘 안 맞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것을 ‘갈등이 있었다’는 식으로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말 많았던 검찰 인사
지난 9월5일자로 단행된 검찰 간부 인사를 두고도 검찰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특히 한 총장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최 부장이 이번 인사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는 최고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인사를 앞두고 검찰 주변에서는 “한 지검장이 총장이 되면 최 부장이 검찰을 떠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이런 얘기는 검찰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최 부장 인사와 관련해 몇몇 검찰기자들이 의견을 수렴해 최 부장 인사에 대한 건의를 권재진 신임 법무장관에게 했을 정도였다. 한 검찰기자는 “기자들이 최 부장을 법무부 대변인으로 보내달라고 청원을 했다. 인사에서 너무 불이익을 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다. 어차피 총장하고는 대화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장관에게 건의하기로 했다. 인사권도 법무부에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인사를 앞둔 지난 8월 중순 한 검찰 고위 간부도 기자에게 “말은 안 해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너무 표 나게 안 좋은 곳으로 보낼까봐 걱정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더 안 좋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주변의 우려가 전달된 것인지, 최 부장은 부산고검으로 발령은 났지만 법무연수원 대외교류협력단장을 맡으며 서울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처지가 됐다. 특수부장 출신의 다음 보직치고는 한직이라는 평이 많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총장과 장관이 이 문제로 상의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나쁘지 않은 자리다. 수사부서가 아니라는 것만 빼고는 괜찮다. 최 부장도 이번 인사에 큰 불만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갑근 차장도 “본인도 이번 인사에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기자들의 청원이라는 것도 매번 인사 때처럼 기자들이 ‘누구를 대변인으로 보내달라’고 의견을 제시하는 그런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이번 검찰 간부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들은 모두 비(非)수사부서로 발령이 났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담당한 이동열 특수1부장은 서울고검(금융부실책임조사본부 파견)으로, 송삼현 특수3부장은 법무연수원 교수로 나갔다. 최 부장은 법무연수원 대외교류협력단장을 맡게 됐다. 한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면서 유일하게 칭찬했다는 오리온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한 이중희 금융조세조사3부장이 특수1부장에 기용된 게 눈에 띌 정도다. 반면 공안검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왕재산, 곽노현 수사를 맡은 이진한 공안1부장은 대검 공안기획관으로, 쪼개기 정치후원금을 수사했던 안병익 공안2부장도 대검 감찰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수부는 열등생”
한 총장과 특수부의 갈등이 특수수사 방식을 신뢰하지 않는 한 총장의 성격 때문이라고 말하는 검찰 관계자도 많다. 한 총장이 서울고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같이 근무했던 한 검찰간부의 말을 들어보면 이 말이 대략 이해가 된다.
“형사부 출신인 한 총장은 특수통 검사들의 수사 스타일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요. 한 총장처럼 형사부 수사를 오래한 사람들은 판단력과 직관력이 좋거든요.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확인하고, 뭔가가 나올 때까지 뒤지는 식의 특수수사를 좋아하지 않죠. 스마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죠. 언젠가 한 총장과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부딪친 일이 있었는데, 한 총장이 ‘그게 바로 특수부 출신인 당신과 나의 차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군요.”
이번 간부 인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한 총장은 특수부보다는 공안부에 힘을 싣는 정책을 펴고 있다. 8월12일 취임식에서도 종북(從北)좌파 척결을 선언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취임 직후엔 대검찰청 범죄정보담당관실에 공안정보 강화를 지시하기도 했다. 한 총장이 검찰총장 내정자 시절이던 7월29일 터진 일명 ‘왕재산 간첩사건’이나 취임 직후 불거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후보매수 사건은 모두 중앙지검 공안부의 작품이었다.
한 총장은 내정자 시절 대검찰청 기획관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공안부는 우등생, 특수부는 열등생”(2011년 8월25일자 매일경제)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는데, 이 발언은 한 총장의 성격과 관심사, 한상대 검찰의 미래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로 검찰 주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