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별 뜻 없어요. 그냥 저희 창업 멤버 한 명이 ‘나중에 카페를 열면 써먹어야지’ 하고 만들어놓은 이름인데, 그냥 예쁜 이름이라 저희가 먼저 썼어요.”
작명 과정만큼 종잡을 수 없는 회사다. 2년간 스마트폰 및 태블릿PC용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160여 개를 만들어 매출 20억원을 올렸으면서, 한 대표는 “우리 회사는 앱 개발사가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그렇다면 바닐라브리즈는 무엇을 판매하는 회사인가? 한 대표는 “우리 회사는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판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평상시 소비할 때는 인터넷 가격비교사이트를 뒤져보거나 여러 상품을 비교하면서 합리적으로 결정하지만, 놀이공원이나 여행 갈 때는 큰돈도 아끼지 않죠. 본래 사람들은 ‘특별한 경험’을 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아요. 바닐라브리즈는 그렇게 사람들이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을 팝니다. 앱뿐만 아니라 음악, 게임, 문화콘텐츠 등 다양한 형식이 가능하겠죠.”
한 대표의 경력은 매우 다채롭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야후 본사에 취직했다. 2000년 코카콜라 마케팅팀에서 일하다 2003년부터는 한 M·A부티크에서 부동산 자산평가사로 일했다. IT, 마케팅부터 부동산까지 다양한 경력을 쌓으면서 한 대표는 ‘IT 얼리어답터’로 블로그 활동을 꾸준히 했다. 2008년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자 친구 2명과 “잘은 모르겠지만 재밌겠다”며 벤처를 창업했다.
“1년만 해보자” 10번째 ‘아이건 대박’
“지금이야 아이폰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팔렸는지, 앱스토어를 통해 얼마나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 앱스토어 시장이 확고한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어요. 정말 단순한 호기심에서 사업을 시작한 거죠.”
창업 당시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로 주식시장이 요동치면서 한 대표가 가지고 있던 펀드도 반 토막 났다. 동업자 3명이 겨우 최소한의 자본금을 만들어 선배의 홍익대 사무실 한편에 자리를 폈다. “딱 1년만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창업 이후 바닐라브리즈는 매달 한 개씩 앱을 출시했다. 첫달 출시한 앱 매출은 381달러(약 42만원). 다음달에는 고작 100달러 늘었을 뿐이었다. 사람 수로 나눠봤자 교통비도 안 나왔다. 그렇게 아홉 달이 흘렀고, 열 달째 드디어 ‘대박’이 터졌다.
2009년 3월 아이폰 앱스토어에 출시된 ‘아이건(I-GUN)’은 아이폰의 동작 인식 기능을 활용한 게임 앱이다. 아이폰의 진동과 소리 덕에 총을 장전해 쏘는 것 같다. 총을 선택해 ‘다다다닥’ 총알을 발사하자 손끝에서 머리끝까지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진다.
‘아이건’은 출시 5일 만에 앱스토어 전체 랭킹 100위에 진입했고, 출시 1년 만에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6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특히 총문화가 발달한 서구권에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한 대표는 “아이건 수익 중 한국 수익은 3%에 불과하고 미국, 영국, 캐나다 등 3개국 매출이 75%에 달한다”고 말했다.
“누가 스마트폰으로 총싸움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어요. 뭔가 신선하고 독창적인 경험을 하는 순간 소비자는 즐거워하면서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겁니다.”
바닐라브리즈가 지난해 선보인 앱 ‘클래식 뮤직 마스터 콜렉션(이하 클래식앱)’ 역시 큰 화제를 모았다. 바닐라브리즈는 저작권이 소멸된 클래식 음원 1000곡을 모아 하나의 앱에 담았다. 또한 클래식 입문자에게 도움이 될 음악가 정보도 포함했다. 애플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음원 1곡은 0.99달러. 1000곡을 모았으니 999.99달러(약 100만원)로 가격을 정했다. 그는 “처음 출시할 때는 100만원짜리 클래식앱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궁금했다. 첫날 멕시코에서 3명이 앱을 구입했다”며 웃었다.
출시 1년 만에 전세계에서 600만 건 이상 다운로드한 ‘아이건(왼쪽)과 8개 국 앱스토어에서 1위를 차지한 클래식 뮤직 마스터 콜렉션’.
“일본에서는 ‘우리 클래식앱 때문에 아이폰 산다’는 분들도 계셨어요. 왜냐하면 일본은 CD 1장에 3000엔(약 4만원) 정도로 아주 비싸거든요. 근데 1000곡 음원을 단 1달러에 판매하니까 아이폰 기계값을 빼도 남을 만큼, 정말 말도 안 되게 싼 거죠. 저희도 이 경험을 통해 SNS의 파급력과 사람들이 느끼는 ‘가치의 차이’를 똑똑히 느꼈습니다.”
2014년 창의력 발휘할 사옥 지을 것
IT기업의 생명은 창의력에 있다. 직원 3명으로 시작한 바닐라브리즈는 이제 직원 30명 규모로 커졌다. 조직이 커질수록 사고의 유연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한 바닐라브리즈의 아이디어도 독특하다.
요즘 바닐라브리즈는 사무실 한편에서 ‘바닐라브리즈 유니버시티’를 연다. 직원 2~3명이 한 팀이 돼 1박2일 동안 주제에 맞는 앱, 보드게임, 음악 등 ‘창작물’을 만든다. 기자가 사무실을 찾은 날은 직원들이 직접 찍은 뮤직비디오 상영회가 열렸다. 직원들이 직접 만든 음악에 어울리는 장면을 촬영해 편집까지 마친 것이다. 벽 한편에는 각자 ‘가르치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은 것’을 써붙였다. ‘커피 내리는 법’ ‘예쁜 캐릭터 그리는 법’ 등 다양하다. 이렇게 직원들은 하루는 선생님이, 하루는 학생이 된다. 한 대표는 “나도 직원들에게 부동산 등기부등본 보는 법을 가르쳤다”며 웃었다.
“2년 동안 바닐라브리즈가 앱 160여 개를 숨 가쁘게 세상에 ‘던져’왔다면 이제 숨을 좀 고를 때가 된 것 같아요. 기계적으로 앱을 개발할 게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야죠.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직원들이 즐겁게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장입니다.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 중 실제 앱으로 개발하거나 사업으로 발전시킬 만한 것도 있어요.”
한 대표의 목표는 2014년까지 바닐라브리즈의 사옥을 짓는 것이다. “단독 사옥을 가질 정도로 회사를 키우겠다는 얘기냐”고 묻자 그가 손사래를 쳤다.
“제가 나름 자격증도 있는 부동산 전문가잖아요.(웃음) 대부분 상업용 부동산은 건물 임대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어졌어요. 그만큼 창의력을 요하는 집단이 사용하기에는 좋은 공간이 아니에요. 한 연구결과를 보면 유난히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되는 대학 연구실 천장이 아주 높대요. 그만큼 탁 트인 공간은 확장적인 사고를 하기에 좋아요. 저희도 제품 개발을 할 때 좋은 아이디어는 회의실, 사무실이 아닌 커피숍에서 나오거든요. 저는 저희 회사 직원들이 자신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저희 직원들의 특별한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아주 편안하고 독특한 공간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