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심층 분석

술·담배 들어가면 청소년 유해물? 일관성 실효성 없는‘뒷북 행정’

음반심의제도의 불편한 진실

  • 임진모│대중음악평론가 jjinmoo@daum.net, www.izm.co.kr

술·담배 들어가면 청소년 유해물? 일관성 실효성 없는‘뒷북 행정’

2/3
술·담배 들어가면 청소년 유해물? 일관성 실효성 없는‘뒷북 행정’

한국 대중가요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유신 시절에는 공연윤리위원회(공륜)가 전체 국민을 상대로 사전심의 즉 검열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19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의된다는 점을 일부 여론이 간과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는 수준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신 시절 송창식의 ‘고래사냥’은 전 국민이 들을 수 없는 노래로 묶인 반면 지금 비스트의 ‘비 오는 날엔’은 19세 아래만 청취불가인데 마치 근래 미디어는 이 상황을 뭉뚱그려 전 국민 정서에 대한 검열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는 얘기다.

‘19금’으로 지정되면 어떤 후속조치가 따를까. 청소년에게 유해한 곡이므로 방송사는 청소년보호법이 정한 청소년 보호시간대인 평일 오전 7~9시, 오후 1~10시(주말에는 오전 7시~오후 10시)에는 해당 곡을 방송할 수 없다. 또 음반에는 ‘19세 미만 판매금지’ 스티커를 부착해야 하고, 다운로딩 사이트에서도 성인 인증이 필요한 ‘19금’ 표시를 달아야 한다. 어른들은 당연히 이 곡들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고 구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소년 보호시간에는 이런 노래들이 방송되지 않기 때문에 청취에 제약이 어느 정도 가해진다고 볼 수 있다.

들쭉날쭉한 비일관성 심의

또 다른 문제는 오락가락 들쭉날쭉한 비일관성 심의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술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그룹 ‘바이브’의 노래 ‘술이야’를 보자.

‘슬픔이 차올라서 한 잔을 채우다가/ 떠난 그대가 미워서 나 한참을 흉보다가/ 나 어느새 그대 말투 내가 하죠/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널 잃고 이렇게 내가 힘들 줄이야…’



술 한 잔에 그대 모습 비춰본다는 표현이 19금이라면 ‘맨날 술이야’는 29금 판정도 받을 만한 가사로, 의당 청소년 유해물이 돼야 한다. 하지만 이 곡은 2006년 봄, 발표 당시 방송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청소년 사이에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청보위가 구성된 2006년 11월부터 음반과 음원에 대한 심의가 이뤄져 이 곡은 다행히(?) 19금에 묶이지 않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미 많은 사람이 이 곡을 충분히 듣고 소비했다. 그런데 올해 ‘나는 가수다’ 열풍으로 장혜진이 ‘술이야’를 다시 불렀을 때는 19금 판정이 내려졌다. 한 곡을 가지고도 시대가 달라진 탓인지,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까닭인지 심의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곡마다 살펴볼 때도 비일관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장혜진의 ‘술이야’는 청소년 유해물인데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담배가게 아가씨’, 한대수의 ‘하루아침’ 그리고 최백호의 ‘입영전야’는 술과 담배가 노랫말에 등장하는데도 19금에서 비껴났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 송창식 ‘고래사냥’

‘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나를 보며 웃어주는 아가씨 나는 정말 사랑해/ 아자자자자자자자/ 아 나는 지금 담배 사러 간다…’ - 송창식 ‘담배 가게 아가씨’

‘…시간은 열한 시 반 아 피곤하구나/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소주나 두 잔 마시고 소주나 석 잔 마시고…’ - 한대수 ‘하루아침’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연기/…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 최백호 ‘입영전야’

근래 청보위의 심의 행태에 따르면 해석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19금 스티커를 붙일 소지가 있는 노래들이다. 술을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마시거나 흡연을 미화, 조장하는 노래가 청소년에게 해롭다고 본다면 ‘소주나 석 잔 마시고’나 ‘나는 담배 사러 간다’는 꽤나 위험한 가사가 아닌가. 만약 옛 노래를 심의 대상에 넣어 소급 적용하고자 한다면 예외를 두어서는 안될 터. 그런데 앞의 사례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에는 19금 족쇄가 채워졌다. 심의가 얼마나 오락가락하는지를 다시 한 번 웅변한다.

상기한 노래 가운데 상당수는 유신체제에서 가요규제 조치에 따라 금지곡이 됐지만 민주화가 이뤄진 1988년 모두 방송 금지에서 풀려났다. 그런데 새천년 들어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이 리메이크해서 청소년에게도 널리 알려진 ‘한잔의 추억’이 이제와 새삼스럽게 19금 판정을 받은 것이다. 청보위나 음반심의위원회는 “단 한 명이라도 청소년 피해자가 나온다면 판정을 해야 하고, 또 앞으로 나올 가사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할 게 분명하다.

청소년에게 바른 생활관을 심어주려는 신념은 가상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노래에 19금 딱지를 붙이는 것은 ‘뒷북 행정’의 전형이라는 시각이다.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도 그렇지만 청소년에게 큰 호응을 얻은 그룹 십센치의 ‘아메리카노’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나를 받아주오’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메리카노’는 심지어 CF의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됐고 두 곡 모두 근래에 보기 드물게 수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박’을 친 상황에서 19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심의기준에 종교관 반영?

신속히 막을 수도 없고 사후심의라서 심의과정을 마련하는 시간 때문에 이미 대규모로 소비된 곡을 뒤늦게 청소년 유해물로 묶는 것은 기실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뒷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음반심의가 이뤄지는 배경으로는 사후심의를 빌미로 한 국가의 도덕적 책무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다. 청소년을 나쁜 것으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일종의 도덕적 강박이다.

이 때문에 과잉심의라는 의혹을 낳는 것이다. 또 애매한 심의기준이 결국은 청소년 보호 차원이라기보다 정부 입장에 편승해 생겨난 것이라는 불필요한 의심도 사는 것이다. 한마디로 “DJ 국민의 정부나 노무현 참여정부에서는 있지 않았던 일이 왜 이번 정부에서는 벌어지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대중음악에 대한 일련의 심의 판정 결과가 최고 통치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관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새삼 술과 담배에 그토록 과잉반응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2/3
임진모│대중음악평론가 jjinmoo@daum.net, www.izm.co.kr
목록 닫기

술·담배 들어가면 청소년 유해물? 일관성 실효성 없는‘뒷북 행정’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