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30일 리비아 시르테시에서 카다피 전 국가원수를 만나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직후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주 요르단 주정훈 서기관, 김종근 아중동국장(현 에티오피아 대사), 이상득 의원, 카다피 국가원수, 서종욱 사장, 알리 딸락 시르테 보안사령관, 이권상 대우건설 시르테 합작법인 대표.
“1979년 리비아 우조비행장 건설공사 현장에 ‘가 선생’이 나타났어요. 사하라 사막 남쪽 끝 차드와의 국경 인접지역인데, 당시 현장 책임자인 서만석 상무(작고) 등이 처음 만났죠(그는 배석한 강우신 전무에게 리비아 지도를 달라고 하더니 지도를 보며 자세히 설명했다). ‘가 선생’은 예고 없이 방문해 그곳에서 14일간 텐트 치고 머물렀어요. 직원들과 탁구도 치고, 일하는 모습도 지켜봤죠. 당시 몇몇 직원이 ‘가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이 사진 한 장이면 공항은 물론 리비아 전역을 다녀도 프리패스(Free Pass)였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직원들과 함께 야영 생활한 ‘가 선생’
▼ ‘가 선생은’ 왜 왔습니까?
“그 공사는 당초 이탈리아 업체가 진행하다가 기후 등 열악한 공사 환경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고 철수한 현장이었어요. 대우가 수의계약으로 넘겨받은 거죠. 한낮 기온이 40~50℃를 오르내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한국인들이 야영생활을 하면서 공사를 하는 게 궁금했나봐요. ‘가 선생’은 한밤중에도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인의 열의와 근면함에 찬사를 보냈어요. 우리는 무사히 공사를 마쳤고요. 이를 계기로 한국과 리비아 간에 국교가 수립됐어요.”
한국과 리비아는 1970년대 이전부터 수교를 추진했지만 정식 대사급 수교가 이뤄진 해는 1980년 12월이었다. 정식 수교 후 설치된 주한 리비아대사관은 2006년 리비아 외교관의 부정행위 연루혐의로 2007년 경제협력대표부로 격하됐지만, 지난해 이상득 특사의 방문 이후 대사급 관계가 복원됐다. 북한과는 이미 1974년 1월에 대사급 수교를 했다.
▼ 카다피 체제하의 리비아는 어땠나요?
“리비아는 140여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카다피는 관습과 전통이 다른 부족들을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통치하면서 전체 부족 간 화합으로 이끈 것으로 평가받았어요. 1969년 쿠데타 이후 반(反)서방 정책을 펴면서 비효율성 같은 문제점은 있었지만 부정적 측면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봐요. 하지만 장기집권에 따른 부작용은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이죠. 국민의 민주화 욕구가 잠재되어 있다가 올해 초 튀니지의 재스민혁명 등 중동, 북아프리카 국가에 불어닥친 민주화운동 여파로 한꺼번에 폭발한 것으로 봐요. 2011년 2월 최초로 봉기가 일어난 벵가지 지역은 카다피 집권 이전의 수도이자 전통적인 야도(野都)로 친정부 성향의 수도 트리폴리와는 대비되는 도시죠.”
▼ 리비아 사태가 일단락되면서 재건사업에 뛰어들려는 기업이 많은데요. 일각에서는 항만, 정유시설 등 최소 1000억달러 이상의 사업이라고 분석합니다.
“리비아에서의 비즈니스가 만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일반적으로 리비아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하지만, 역사적으로 상술에 밝은 아라비아 상인의 후예들이고, 정부나 발주처의 주요 인사들은 영국 등 선진국에서 유학한 엘리트들입니다. 자존심이 매우 강해 처음부터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게 쉽지 않아요. 한마디로 서구적 계약 관습에 익숙하면서 비즈니스는 철저히 따지는 성향입니다. 이런 성향부터 알고 면밀히 분석한 뒤 뛰어들어야죠.”
철저한 비즈니스 무장
▼ 어렵군요.
“대우건설도 33년간 때로는 손해도 보고 무작정 기다리기도 했어요. 행정 면에서 일관성이 부족해 행정처리가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점에서는 인내가 필요해요. 리비아에 뛰어드는 기업이 유의해야 할 리스크 1순위는 ‘정책의 일관성 부족’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핵심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현재의 엘리트 중심의 국가운영은 큰 변화가 없을 겁니다. 얼마 전 국가과도위원회(NTC)가 ‘카다피 정권 당시 진행된 공사계약을 승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으니 예의주시해야죠. 한편으로는 인간관계와 신뢰를 중시하는 동양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어요.”
▼ 행정처리가 늦으면 ‘급행료’도 줍니까?
“급행료요? 아, 아닙니다. 설명과 설득을 하고 사태의 긴박성에 대해 이해를 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거죠. 부패가 개입되는, 그런 연장선상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