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중국 선양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가족. 힘겹게 자유를 찾은 탈북자들이 다시 한국 국경을 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을힘을 다해 두만강을 건넜고, 목숨을 걸고 한국에 들어왔던 그들이 다시 한국을 떠났다.
‘탈남(脫南) 탈북자’ 수는 정확히 집계된 바 없다.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은 지난해 “2004년 이후 영국 내 탈북 망명 신청자가 1000명 이상이고, 이 중 70%가 한국을 거친 ‘탈남 탈북자’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미국의 소리 방송(VOA)은 유엔난민기구(UNHCR) 비공개 통계를 인용해 2010년 말 영국에 사는 난민 신분의 탈북자가 581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소장은 “2007년 전후로 탈북자 사회에 영국행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한때 영국 내 한인교회들이 탈남 탈북자 뒤치다꺼리하느라 본 기능이 마비됐을 정도”라고 전했다.
짧게나마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는 제3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에 주민등록을 마친 탈북자가 해외로 이민하는 경우에는 난민에게 지급되는 복지기금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대다수 탈남 탈북자는 영국 등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태우고 “한국에 간 적 없다”고 발뺌한다. 만약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불법이민자 혹은 망명신청자로 전락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고려대 언론학부 오원환 박사는 2003년부터 탈북청소년대안학교 ‘셋넷학교’ 자원교사로 활동하며, 한국을 떠나는 탈북자 10여 명을 추적·연구했다. 이들은 현재 대부분 20대다. 오 박사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 ‘탈북 청년의 정체성 연구: 탈북에서 탈남까지’를 8월 발표했다. 이 논문을 발췌·수록한다.
‘위장망명’이 아니라 ‘탈남’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다. 고향을 떠난 지는 14년이 됐다. 이미 분단은 익숙한 것이 됐고, 북쪽은 이상한 나라가 됐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나는 한국 사람이 되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촌티를 빨리 벗어야 했다. 다들 그렇게 말했다. 난 열심히 한국 사람이 됐다…. 그러나 나는 껍데기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최금희, 2002년 한국 입국)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한국에서 국적을 얻고 정착했다가 다시 제3국으로 망명하는 탈북자들에 대해 ‘탈남’ 대신 ‘위장망명’이라는 말을 쓴다. ‘위장망명’이라는 말에는 탈남이 한국 사회가 아닌 탈북자 집단 자체의 문제로 일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탈북’이라는 말에 ‘부정적 공간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의미가 있듯, ‘탈남’이라는 표현에는 한국이 북한처럼 부정적 공간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꼭 탈북자뿐 아니라 많은 한국인도 ‘탈남’을 했다. 이제 ‘탈남’을 탈북자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이 탈남하는 이유에 대해 구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탈북 청소년들이 중국 혹은 제3국에서 기대했던 것과 한국의 현실은 많이 달랐다. 다음은 오 박사가 탈북 청소년들을 대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한국에서 느낀 감정’을 종합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탈북자가 한국에 입국하면 “이제부터 잘살 수 있다”고 기대한다. 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에서처럼 한족이나 조선족으로 가장하지 않아도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임금을 못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드디어 임금을 제대로 받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의사소통이 되니 중국에서처럼 말이 안 통해 답답한 일도 없다. 경찰이 ‘불법 월경자’라고 체포하는 일도 없으며, 신고 당할까봐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는다. 중국에 숨어 지낼 때 TV 드라마를 통해 봤던 한국 등장인물들의 삶이 내게도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