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리시 아치울마을 자택에서 딸 호원숙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생전의 박완서 작가.
이후 자료관 건립은 급물살을 탔다. 구리시는 추경을 통해 예산을 마련했고, 9월14일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가 설계를 맡기로 확정됐다. 국립국악당·독립기념관 등을 지은 김 대표가 525㎡(약 159평) 규모로 예정된 공공도서관 부속 건물의 건축을 맡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구리시의 전화를 받자마자 ‘하겠다’고 했다. 박완서 선생을 기념하는 일에 힘을 보태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했다.
“전북 고창에 있는 미당시문학관도 제가 지었습니다. 고창군수가 중학교 은사인데 ‘설계비 공사비 합쳐 4억원밖에 없다. 이래도 할 수 있겠느냐’ 하시더군요. ‘당연하지요’ 말씀드리고 바로 현장에 내려갔어요. 미당의 생가 옆 문학관 터에 가만히 서 있으려니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집디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던 미당의 시 ‘자화상’이 떠올랐습니다.”
김 대표의 말이다. 이 첫 느낌이 설계의 단서가 됐다. ‘높이 올라가는 전망대를 만들자, 바다가 보이고 바람이 느껴지고 그래서 ‘자화상’이 절로 떠오르게 하는 공간을 짓자.’ 미당시문학관의 18.35m 전망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꼭대기에 서면 누구나 ‘자화상’의 그 바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좋은 문학관이 꼭 거대한 건물일 필요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예산 문제로 노출 콘크리트 전망대에 아무 치장도 할 수 없었는데, 대신 심은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올라가 이제는 어떤 장식보다도 근사한 마감재가 됐습니다. 예산 적고, 땅이 좁은 것은 좋은 건축을 하는 데 아무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박완서의 네 남자
김 대표가 기자를 만난 날은 마침 그가 구리시 토평도서관을 막 답사하고 온 다음날이었다. 그는 “시 관계자는 도서관 부속건물이라 공간이 너무 좁지 않은지 계속 걱정하던데, 나는 마음에 들었다. 박완서 선생의 명성에 비춰 결코 옹색하지 않은 자료관을 만들 자신이 있다”고 했다.
“경복궁이 자금성에 비해 작다고 한국 건축이 보잘것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거대한 성당보다는 아무 장식 없는 프란체스코 성인의 기도실이 더 큰 감동을 주는 법이지요.”
그가 구상하는 ‘박완서 자료관’이 바로 그런 공간이다. 그는 “도서관 내 부지에 서니 선생이 살던 아치울 마을이 건너다 보였다. 선생이 산책을 다녔다는 길도 지척이더라. 땅을 통해 선생의 삶과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게 참 좋았다”고 했다.
“아직 건축 콘셉트를 정하지는 못했어요. 오늘이 구리시에서 제안을 받은 지 꼭 7일째 되는 날입니다. 원래 생각하는 게 느린 편이라 한참은 더 숙성시켜야 할 것 같아요. 그 과정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요즘은 하루 종일 선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선생의 작품뿐 아니라 문인들이 선생에 대해 쓴 글도 찾아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