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라에게 제13회 파나마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1975년 영화 ‘마지막 포옹’의 한 장면.
고3 때인지, 재수할 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느 날. 나는 어느 변두리의 재개봉 극장 안에 있었다. 관객은 나를 포함해 서너 명밖에 없었다. 수험생이 공부는 안 하고 밝은 대낮에 극장 안에 있다는 약간의 불안감과 꼬박꼬박 액션 영화를 챙겨 보는 열혈 액션 영화광이기는 했지만 해가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한국 액션 영화를 보러 왔다는 약간의 창피함으로 김희라·박근형 주연, 김효천 감독의 ‘오사카의 외로운 별’(1980)을 보고 있었다. 별 기대 없이 영화를 보던 나는 넓은 등판에 붉은 꽃이 만개한 김희라의 압도적인 분노를 느끼는 경험을 하고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것이다.
재일조선인 깡패 김희라는 단검을 들고 조총련계 야쿠자의 소굴로 홀로 향한다. 사랑하는 여인 이경실을 뒤로하고 추운 겨울의 이른 아침 거리를 나선 것이다. 그는 살아서 이 거리에 돌아올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김희라. 인기척을 느낀다. 남자의 기침 소리. 누군가 김희라를 기다리고 있다. 박근형이다. 김희라가 존경하는 선배였던 그는 폐병에 걸려 이미 은퇴한 몸이지만 김희라의 복수에 목숨 걸고 동반을 자청한 것이다. 김희라가 천천히 다가오자 박근형은 그의 옆에 서서 나란히 걷는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씨야.” 두 사내가 마주 보고 미소 짓는다. 하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오사카의 외로운 별’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쏟아져 나온 일본 임협(任俠)물, 즉 야쿠자 영화의 줄거리에 재일조선인 깡패 주인공과 조총련의 대결을 입힌 짝퉁 야쿠자 영화였다. 하지만 서울 극장가에 성룡의 쿵푸 영화, 복성 시리즈, 미스터 부 시리즈 같은 홍콩 코미디 액션 영화와, 홍콩 영화를 무조건 베끼거나 닮으려 했던 짝퉁 한국 무술 영화 일색이던 시기, 포악한 사내들의 땀과 피가 흐르고 비릿한 짐승 냄새가 풍기는 그런 액션 영화였다.
쓸모없는 사내의 못난 자존심
지독한 남근 숭배자이며 반공주의자인 김효천 감독이 1975년 ‘협객 김두한’을 만든 후 칩거하다 5년 만에 김희라를 주연으로 내세워 만든 영화가 바로 ‘오사카의 외로운 별’이었다. 이 영화 한 편으로 나는 김희라의 팬이 돼버렸다. 비슷한 시기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을 봤다. 지금은 철거돼 사라진 중랑천의 뚝방 동네 빈민촌.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아내 김보연이 벌어오는 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하다, 제 성질에 못 이겨 애 패고, 마누라 패고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꼬장질’과 ‘깽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높이는 사내로 김희라가 출연한다. 애틋한 김보연과 그의 옛사랑 안성기가 꼬방동네에서 재회한다. 아내 김보연을 매일 구박하고 머리채를 잡아 패는데 그녀를 안성기에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고 두려워하는 김희라. 한 평이 채 못 되는 좁은 판잣집 안에서 빨간 빤스 하나 걸치고 빈둥거리는 김희라는 내가 살던 모래내 천변의 그 아저씨들이었다. 술에 얼큰히 취하면 기분을 내며 동네 사람들 걱정도 해주고 그 동안 깽판 친 일들을 사과도 해서 흐뭇한 풍경을 연출하다가도 무엇 때문에 기분이 더러워졌는지 일순간 폭력적으로 변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싸움질을 하고, 옹색한 집안 살림을 부수고, 집안 살림만큼이나 옹색한 마누라와 아이들을 패고, 마지막에는 파출소에 끌려가거나 달을 보고 대성통곡하거나, 흙 묻은 속옷 바람으로 길바닥에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자던 그 아저씨들을 김희라가 영화 속에서 연기해냈다. 1980년대 초, 10대의 마지막을 보내던 나는 김희라를 통해 조악하지만 낭만적이던 1960년대 깡패 영화의 마지막 스타가 연기한 자기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남성 판타지의 세계를 봤고,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룸펜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애환과 분노를 봤던 것이다.
배우 김승호의 아들 김희라는 1969년 임권택 감독의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데뷔한다. 문희, 박노식 같은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출연한 첫 영화에서 신인 김희라는 두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임권택 감독과 박노식이다. 그의 배우 데뷔에 관한 몇 가지 일화가 있다. 하나는 김희라 본인 입으로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하나는 충무로를 떠도는 ‘믿거나 말거나’의 수많은 전설 중 하나다. 김희라는 인터뷰에서 아버지 김승호의 49재가 있던 날 임권택 감독을 처음 만났고, 그의 제의로 영화에 출연했고, 하다보니 영화배우란 것이 해볼 만해서 계속 한 것이란 말을 한다. 임권택 감독의 말에 의하면 김희라에게 연기자의 길을 열어준 것은 연민 때문이었지만, 연기를 시켜보니 그는 다듬지 않은 보석이었고,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잘난 아들을 방치해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거친 삶을 살게 한 배우 김승호에게 분노까지 느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