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호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1970년대 패기 넘치는 영웅 신화의 주인공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입력2011-12-21 15: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스크린 속 그의 눈빛은 언제나 번뜩였다. 야수 같은 마음과 괴물 같은 힘,
    • 사내의 내면에서 아우성치는 원념이 샅샅이 드러나는 눈빛이었다.
    • 김두한, 김춘삼, 시라소니…. 한국 현대사의 신화적인 주먹이
    • 모두 그의 몸을 통해 부활했다. 1990년대 이후 수많은 배우가 액션 영화에
    • 출연했지만, 한 시대를 상징한 영웅은 그가 마지막이었다.
    • 한국 영화의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을 추억한다.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이대근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2007년 영화 ‘이대근, 이댁은’의 한 장면.

    1975년2월의 어느 날.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고 돌았다. 영화 ‘실록 김두한’(김효천 감독·1974)이 끝내주게 재미있다고. 일주일간의 제3개봉관 상영일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모양새를 바꾼 신촌로터리의 신영극장을 찾았다. 극장 매점에서 크라운 산도 과자를 하나 사고 자리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영화가 시작됐다. 당시 인기 있던 아역 배우가 소년 김두한으로 등장한다.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라던 소년 김두한은 영문도 모르고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불행에 의해 고아가 돼 거리를 떠돌다 종로 수표교 다리 밑의 거지왕초 허장강에게 거둬진다. 세월이 흐르고 햇살이 쨍한 겨울의 어느 날 아침. 멀리 보이는 수표교 아래서 거지들이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면 20대 초반의 청년이 보인다. 청년은 입김이 풀풀 나오는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웃통을 벗어 맨살을 드러낸 채 운동을 하고 있다. 몇 해 전,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수표교 다리 밑으로 흘러들어온 고아 소년 김두한이 성장한 것이다.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에 곰처럼 두터운 가슴. 아직 애송이 티를 벗지는 못했지만 싱싱하다. 청년은 그를 눈여겨보던 건달 이대엽에 의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자신이 왜 거리로 쫓겨나 이 수표교 다리까지 왔는지. 청년 김두한의 아버지는 청산리 대첩의 명장. 그는 바로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불행의 근원이 일본 제국주의라는 것을 안 청년 김두한은 서서히 변화한다. “나는 수표교 다리 밑의 거지새끼가 아니라 장군의 아들이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김두한은 과묵해지고, 매사에 신중해진다. 청년 김두한의 가슴속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새겨진다. 비록 거지새끼지만, 아버지가 그랬듯 뭔가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일본인 야쿠자들로부터 방패막이 될 것을 결심한다. 일본인 야쿠자와 일전을 치르면서 그의 싸움 실력이 보통이 아니란 것이 알려지고. 청년 김두한은 신마적과 종로를 놓고 패권을 다투는 우두머리가 된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가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일본 고등계 형사의 독사 같은 눈길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일본인 야쿠자가 보낸 자객에 의해 수표교 다리 밑 생활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친구가 죽자 김두한의 분노는 폭발한다. 호랑이 같은 두 눈이 붉어지고, 훤한 이마에 핏줄이 곤두선다. 새로 단장한 하얀 양복을 입고 일본 야쿠자와 대결하기 위해 종로 거리를 걷는 김두한. 이쯤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두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생이던 나는 영화를 보며 주인공이 악당에게 이기거나 뭔가 큰 결심을 위해 일어설 때 관객이 박수 치는 것을 아주 창피한 행동이라 깔보고 있었다. 게다가 유치한 한국 액션 영화를 보고 박수를 치다니. 당시 한국 영화를 보던 관객의 최고 쿨한 행동은 끝나기 10분 전쯤 “알았어. 라스트는 안 봐도 뻔하다고!”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벌떡 일어나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청년 김두한이 일본인 악당과 대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데 박수를 치다니.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있나! 영화가 끝난 뒤 극장 문을 열고 나서면서 내가 외친 탄성은 “우와 재미있다!”였다. 이렇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서 한국 액션 영화를 본 경우가 그때까지 거의 없었다. ‘실록 김두한’은 ‘황야의 7인’이나 알랭 들롱의 프렌치 누아르, 이소룡과 왕우의 홍콩 액션 영화만큼의 몰입도가 있었다.

    영웅의 탄생

    당시 나는 한국 액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에게 몰입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할리우드 영화나 홍콩 영화와 비교할 때 몰입을 방해하는, 부족하고 민망한 장면이 끊임없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의 한국 액션 영화 중 하나였던 챠리 셸 주연의 태권도 영화들 역시 어디지 모르게 엉성하고, 홍콩 영화에서 본 듯한 줄거리가 나와 김이 새고, 더구나 주인공의 카리스마가 나를 압도하지는 않았지만 발차기가 좀 남다르게 멋있으니, 하며 보았다. 그런데 처음 본 저 배우. 이대근에게 나는 완전히 몰입했고, 영화 처음에는 애송이 같고 뭔가 불만족스럽던 그에게 점점 압도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이야기가 홍콩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웠다. 물론 ‘실록 김두한’이 대단히 잘 만든 걸작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수가 주된 골격인 당시의 한국 액션 영화와는 달랐다. 주인공이 쏟아내는 격한 감정에 동화될 수 있는 독특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이대근은 김두한, 김춘삼, 시라소니 등을 연기한 선 굵은 액션스타였다.

    1974년 만들어진 ‘실록 김두한’은 김효천 감독의 두 번째 김두한 영화다. 김효천 감독은 6년 전 ‘팔도 사나이’란 영화로 한 번 김두한 이야기를 만들었었다. 당시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두한이라 짐작되는 주인공의 이름은 휘였다. 영화에 김두한의 실명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두한이라 추정되는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장동휘. 영화가 시작되면 장동휘는 이미 종로 바닥의 영웅이다. 하지만 완전히 패권을 거머쥔 것은 아니다. 그 앞에는 태산과도 같은 권력을 지닌 일본 야쿠자와 일본 헌병들이 있다. 일본 헌병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야쿠자만큼은 종로 바닥에서 몰아내고 싶은 것이 장동휘의 생각이다. 그런 장동휘에게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닌 싸움꾼 하나가 나타나 도전을 한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용팔이. 장동휘는 그를 원 펀치로 제압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용팔이는 무릎을 꿇고 장동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한다. 장동휘의 인품에 반해버린 것이다. “좋은 동생이 생겼구나” 하고 용팔이를 거둬들인 장동휘는 전국에서 자신의 왕좌를 노리고 올라온 한다하는 싸움꾼과 대결하고, 그들을 동생으로 거둬들인다. 그뿐이 아니다. 이름난 싸움꾼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장동휘는 그곳으로 가서 그 지역의 싸움꾼과 일전을 치러 그를 거둬들인다. 그리하여 전국 팔도에서 내로라하는 주먹들이 장동휘 휘하에 모여들고 장동휘는 그들과 힘을 합해 야쿠자와 대결을 벌인다. 송강의 인품에 반해 그의 휘하로 모여든 108명의 호걸. 즉 수호지의 세계다.

    김효천 감독은 김두한의 실명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영웅 김두한의 탄생 편을 만들어낸다. 김두한 단 한 명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은 거지가 돼 깡통을 들고 동냥질하지만 고귀한 혈통을 지닌 소년. 그 소년이 각성해 밑바닥에서 출발해 정상에 오른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아더 왕의 이야기, 주몽 이야기,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담과 같은 세계다. 즉 영웅 신화인 것이다. 그 영웅 신화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배경으로 들어와 그 역할에 어울리는 청년 영웅의 모습을 지닌 이대근을 내세워 당시에는 볼 수 없던 명쾌한 영웅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장동휘에 이은 제 2대 김두한의 탄생이고, 동시에 새로운 세대 액션 히어로의 탄생이었다.

    파격적인 캐스팅

    당시만 해도 무명이던 이대근은 TV 방송국 공채 탤런트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문턱이 높은 영화계로 진출하려 기회를 노리던 그는 1960년대 말 최무룡 감독의 액션 영화 ‘흑점. 속 제3지대’로 처음 충무로 영화계에 발을 내디딘다. 이대근은 최무룡이 한국 최고의 배우라 생각해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최무룡이 주연·감독·제작한 영화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해 도산하자 이대근은 방송국으로 돌아가 ‘수사반장’에서 범인 역할 같은 조연으로 생활하다가 ‘실록 김두한’ 단 한 편의 영화로 액션 스타가 됐다. 어떻게 당시 무명이던 이대근이 액션 영화의 주연이 됐을까? 김효천 감독은 감독이라기보다는 협객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의 협객 기질은 선 굵고 투박한 영화의 내러티브와 남자 주인공 캐스팅에서 드러나는데, 무명이라 할지라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도박을 즐겼다. 그의 그런 행동은 이후에도 곧잘 나타나는데 인물도 매력적이지 못한 조연 출신 이강조를 갑자기 주연으로 승격시켜 시라소니 역을 준 것이나, 당시 하이틴 영화의 조연이던 진유영을 ‘인간시장’의 주연으로 내세운 것. 당시 무명이던 윤승원을 갑자기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본 대부’를 만든 것 등이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협객 맹상군이나 수호지의 협객 조개처럼 자기 휘하로 들어오는 사람을 마다않고 보살피다 그들을 비장의 카드로 내세워 일을 도모하는, 영화계에서는 좀 보기 드문 파격적인 캐스팅을 하는 감독이었다. 이런 캐스팅이 마냥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김효천 감독은 박노식·장동휘로는 청년 김두한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대근 내면에 숨은 마그마를 직감으로 알아차려 캐스팅한,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의 성공작이었다.

    ‘실록 김두한’ 이후 이대근은 김효천 감독과 ‘협객 김두한’을 촬영한다. 영화의 첫 장면이 김두한의 무덤인 속편은 전편보다 더 재미있었고, 김두한이 전편부터 자신의 뒤를 쫓아다닌 일본 고등계 형사에 의해 감옥으로 들어가는 라스트는 장대했다. 그리고 1975년 한 해에 이대근의 영화가 무려 6편이나 개봉된다. 이대근은 이 시기를 ‘영화 세 편 출연하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던 때’로 회고한다. 1970년대 초. 이소룡 영화가 들어오면서 명동 깡패를 다룬 깡패 영화들은 시들해져간다. 1960년대를 주름잡던 최고의 액션 배우들. 장동휘, 박노식, 최무룡의 영화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면서 한국 극장가에는 홍콩 무술 영화와 비슷한 한국 무술 영화들이 액션 영화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1975년이 되면서 한국 무술 영화가 차지하던 자리에 다시 한국 깡패 영화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깡패 영화는 모두 이대근 주연작이었다.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2010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은 이대근이 시상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두한은 시리즈를 거듭해 만들어진다. 1975년 김두한 시리즈의 세 번째 속편 ‘속 김두한 3부’가 만들어지고 같은 해 4부가 나온다. 그 다음해 ‘김두한 서대문 일번지’가 만들어지면서 김두한 시리즈는 총 5부작이 된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대근은 ‘거지왕 김춘삼’에 출연, 한국 현대사에 등장하는 거물급 주먹을 두 명이나 연기하게 된다. 몇 년 후 ‘시라소니’에서 주연을 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신화적인 깡패 세 명을 모두 연기해낸다.

    이대근은 1960년대의 액션 스타 장동휘, 박노식과는 다른 유형의 액션 스타다. 1960년대의 액션 스타들이 거의 모두 자신이 깡패로 살아온 과거를 뉘우치고 새 삶을 살려 했던 것에 비해 그는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영웅담의 주인공이었다. 1960년대 액션 영화 주인공들이 전후 비참하고 가난한 조국을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 태어나야 할 죄의식을 가진 인물이었다면 이대근에게는 죄의식이 없다. 그에게는 고귀한 혈통이 있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삼아 영웅으로 등극한다. 석유산업과 철강, 자동차산업을 기반으로 선진화를 향한 꿈에 부풀어 있었던 1970년대에 가장 어울리는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1960년대만 해도 과거는 제거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제는 신화화된 과거가 오늘의 자신에게 광휘를 입혀주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이대근은 영웅담의 주인공에서 벗어나 순수한 사나이의 활극인 ‘제삼부두 고슴도치’ ‘오륙도 이무기’ ‘동백꽃 신사’에 출연한다. 이 영화들 역시 대단히 재미있었다. 그는 쾌활한 주인공이었다. 개과천선해야 할 깡패가 아니다. 신분을 속이고 깡패 소굴에 잠입해 좌충우돌하는 형사다. 언뜻 그가 존경했던 액션 황제 박노식의 용팔이와 비슷하지만, 이대근은 박노식보다 더 가볍고 경쾌하다. 이대근이 출연하는 액션 영화에서 과거 죄의식의 그림자가 있는 배역은 없었다.

    깡패를 넘어

    1970년대 말 이대근은 액션 영화를 넘어서 그의 연기 지평을 확장한다. 첫 번째 성공작이 유현목 감독의 ‘장마’다. 구렁이가 돼 해마다 제삿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삼촌. 그는 누구인가? 그 어떤 원혼이 있어 귀신도 못되고 흉물인 구렁이의 몸을 빌려 나타나는가?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마을에서 그동안 힘쓰는 일밖에는 모르고 업신여김을 당하며 죽어라 일만 하던 이대근은 완장을 찬다. 그동안의 업신여김은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 보니 자신은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이 영화에서 이대근은 용암처럼 분출하는 거칠고 격한 감정을 토해낸다. 그 감정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영화를 보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이대근이 그 배역의 감정에 어느 정도까지 빠졌는가 하면, 제삿밥을 먹으러 마당을 기어오는 구렁이까지 자신이 연기하고 싶었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대근을 격한 감정만을 토해내는, 그런 다혈질의 배우로만 기억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듬해 출연한 ‘최후의 증인’에서의 이대근은 또 다르다. 음흉하고 더러운 생각만으로 똘똘 뭉친 반공 청년단 단장 역을 맡은 이대근은 깊은 밤, 소리 없이 마을 유지의 사랑방 앞에 선다. 오늘 밤, 전멸 위기에 처한 빨치산 대장의 투항 조건을 이야기하는 비밀 회동을 하기 위해 마을 유지의 주선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다. 마을 유지가 방으로 들어오라 하자, 이대근은 시꺼먼 군화를 벗으려다 만일을 위해라며 군화를 신은 채로 방 안으로 들어간다. 콩기름을 먹인 노란 장판 위를 군홧발로 걸어가 앉는 이대근. 빨치산 대장이 나타나자 신중하면서도 머릿속의 더러운 생각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아! 저 사람이 언제 영웅 김두한을 연기한 배우였던가 싶을 정도로 뻔뻔하고 야비한 연기를 능청스럽게 한다. 이 영화에서 이대근이 보여준 연기의 압권은 야비한 술수로 정윤희를 아내 삼고 그녀의 재산을 모두 가로채 가족을 이룬 노년의 모습이다. 이제는 마을의 최고 부자로 군림하고 정윤희와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장성해 최고로 행복해야 할 그다. 그러나 정윤희의 마음만은 갖지 못했다. 아니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안다. 고등학생이 되어 도시로 유학을 떠났던 자식들이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반갑게 맞이하는 이대근. 자식들도 오랜만의 만남이니 화기애애하다. 정윤희는 아이들의 얼굴만 보고 소리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이대근은 머쓱해진 얼굴로 “저 사람 또 저런다. 쌀쌀맞기는…” 한다. 자신의 허세뿐인 권위와 거짓 평화를 들키지 않으려 허튼소리로 무마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하자마자 거짓 권위와 평화는 깨지고 아이들은 모두 정윤희에게로 가고 이대근 혼자 넓은 마당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 이대근은 악당 남자 최고의 연기를 해낸다.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영화 ‘연산군’에서 주연을 맡아 장녹수 역의 강수연과 호흡을 맞춘 배우 이대근.

    이대근의 연기는 1980년에 이르러 물이 올랐다. 물 오른 연기 최고의 성취는 자타공인 이두용 감독의 영화 ‘뽕’이다. 비천한 머슴으로 출연한 이대근은 “왜 나만 안 줘?”라며 절규한다. 이미숙이 비록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몸을 팔아 생활하지만, 그녀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한량인지 사기꾼인지 정말로 독립군인지 모호한 남편이 지아비인지라, 머슴이라는 비천한 출신의 이대근에게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하하. 여기서 재미있어진다. 비록 수표교 다리 밑에서 거지새끼로 생활하지만 민족의 영웅, 독립군 장군의 아들인 김두한과 비록 몸은 팔지만 독립군의 아내라는 이미숙. 그와 그녀의 앞뒤가 안 맞는 지독한 결핍과 그것을 감추려는 허세. 그것은 대한민국의 내면이 아닐까?

    마그마 같은 원념

    이대근이 출연한 1970년대의 수많은 액션 영화 중 기억해야 할 한 편의 영화가 있다. 김동리 소설을 영화로 만든 ‘황토기’다. 시대를 잘못 만난 두 남자가 있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장군감인데 일제강점기 농촌에서 사내는 할 일이 없다. 농사로 일생을 보내기에는 야수 같은 흉한 마음과 괴물 같은 힘이 밤마다 아우성을 친다. 미칠 것 같다. 한밤중에 일어나 산속을 달려 집채만한 바위를 들어올려봐도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사내가 마을에 나타난다. 둘은 서로를 처음 본 순간 같은 피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 한심하고 따분한 세상에서 파멸시켜 구원해줄 것임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시비를 걸고 싸울 구실을 만들어 싸움질을 해댄다. 죽을 때까지. 이 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누구겠는가? 1960년대라면 장동휘와 박노식이었겠지만, 1970년대에는 단연코 이대근 하나뿐이다. 영화는 썩 뛰어나지 못하다. 이대근의 상대역이 너무 약하고, 사내의 마그마 같은 울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싸울 구실에 불과한 여자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괴물 같은 사내들의 무서운 원념을 표현해내지 못하고 말았다.

    자, 여기서 했던 이야기를 또 하자. 1970년대 말. 한국 최고의 액션 배우로 등극해 미국 LA로 교민 위문 공연을 떠나는 스타의 행렬에 이대근이 있었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대근은 자신이 흠모했던 왕년의 액션 스타 박노식과 조우한다. 1960년대의 액션 스타는 한국 땅에서 쫓기듯 떠나는 신세였고, 새로 등극한 액션 스타 이대근은 공연을 떠나는 참이었다. 참 운명적인 만남이다. 마치 ‘황토기’의 두 사내처럼 두 사람은 마주 본다. 선배 박노식이 입을 연다. “대근아 나한테 한 방 맞아주라” 영화의 꿈을 접지 않던 박노식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달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대근은 기꺼이 맞아주겠다고 했고. 그 약속은 몇 년 뒤 박노식 감독의 마지막 작품 ‘돌아온 용팔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장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장면. 완장을 찬 이대근이 죽창으로 첫 살인을 한다. 그는 이념이 뭔지 모른다. 다만 자신이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에 도취돼 있다. 계속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 완장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한 이대근이 어머니 황정순 품에 고개를 묻고 울면서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라고 고백한다. 이 연기로 이대근은 더 이상 액션 히어로가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점프한다. 대신 우리 액션광들은 액션 히어로를 잃었다.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오승욱

    1963년 서울생

    서울대 조소학 학사

    영화 ‘킬리만자로’ 각본 및 연출

    1999년 제36회 대종상 영화제 각본상


    시대가 바뀌어도 액션 배우는 항상 등장하는 것. 그러나 액션 히어로들에게는 마그마와 같은 원념의 힘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수많은 배우가 액션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나 액션 히어로로 한 시대를 상징한 배우는 이대근이 마지막이었다. 이대근은 라스트 액션 히어로였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희화화돼 개그 소재로 쓰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원념이 들끓어 올라 눈에 핏발이 서고, 이마에 핏줄이 곤두서는 그 연기조차 이제는 ‘마님’이라는 대사가 입혀져 포복절도를 자아낸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