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 이대엽

2% 부족한 카리스마 비극적인 말로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입력2012-01-19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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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당이지만 멋있는 놈.” 이대엽의 영화를 보며 여러 번 생각했다. 한국 액션 영화에서 악당은 야비하거나 악질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대엽은 달랐다. 그의 연기에서는 정직하고 당당하게 몸으로 먹고사는 노동자의 자존심과 패기가 풍겨나왔다. 문제는 그것이 단 5분이었다는 점. 긴 호흡으로 영화를 끌고 가야 하는 주연으로서, 이대엽은 실격이었다. 결국 스크린 밖으로 나가 진짜 ‘악당’이 되어버린 ‘빨간 마후라’의 전설, 이대엽을 추억한다.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 이대엽

    주인공보다 더 강렬한 매력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배우 이대엽.

    레스토랑 문을 벌컥 열고 한 사내가 들어선다. 핏발 선 날카로운 눈매. 믿었던 보스의 배신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감방에 들어갔던 불운한 사내, 최무룡이다. 그가 분노한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하는 아내 윤정희가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다. 얼마나 사랑했던 여자인가? 그녀를 위해 암흑가를 떠나려 했고, 여자 때문에 조직을 떠나려는 최무룡을 괘씸하게 여긴 보스가 그를 함정에 빠뜨려 감옥으로 보낸 것이다. 레스토랑 구석진 곳에 윤정희의 남편이자, 최무룡의 보스를 몰아낸 명동의 새로운 주인이 앉아 있다. 단도를 움켜쥐고 윤정희의 현재 남편 앞에 선 최무룡. 다짜고짜 윤정희를 내놓으라고 한다. 윤정희의 남편은 눈에 핏발이 선 최무룡을 바라본다. 그의 눈빛은 ‘당신의 괴로움을 나는 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윤정희는 이미 나의 아내다’라고 말한다. 자기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대한 산 같은 사내 앞에서 최무룡은 당황한다. 악당이지만 멋있는 놈이다.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됐을 것이다. 영화를 보던 나도 최무룡과 똑같이 당황한다. “저 사내 너무 멋있잖아?”

    보통의 한국 액션 영화에서 저런 사내는 아주 악질이거나 야비하다. 최무룡이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뒤 윤정희는 최무룡의 소식을 알 수 없어 괴로워했고, 죽을 결심을 했을 때 윤정희 앞에 나타난 사내는 위안이 돼주었다. 결국 윤정희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간의 사정을 담담하게 말하는 남편. 최무룡의 귀에 그 말은 들리지 않는다. 최무룡은 사내 앞에 단도를 꽂고 말보다 칼로 해결해 이기는 자가 윤정희를 데려가자고 한다. 최무룡의 심사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내 역시 윤정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최무룡은 막무가내다. 이때 최무룡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윤정희가 나타나 둘의 싸움을 말리려 하다가 극단의 방법을 택한다. 자신이 죽으면 두 남자의 싸움은 없을 것이라며 자결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평상심을 유지하던 윤정희의 남편이 분노한다. 최무룡과 사내가 단도를 뽑아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를 찌른다. 최무룡의 칼이 사내의 급소에 더 가까웠다. 쓰러지는 사내. 이때까지 사내의 명령 때문에 지켜만 보던 부하들이 최무룡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벌집으로 만든다. 최무룡도 멋있었지만, 윤정희의 현재 남편으로 나온 사내가 훨씬 멋있었다. 30분짜리 옴니버스 영화 중 한 편에 단 5분 출연해 주인공 최무룡에게 가야 할 찬사를 나눠 가진 사내. 영화의 균형을 살려 관객에게 ‘사내 중의 사내’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한 배우는 ‘명동 잔혹사’(1972) 두 번째 에피소드에 출연한 이대엽이다.

    주연보다 멋진 조연

    영화가 끝난 뒤 극장 로비에서 20대 청년이 “윤정희 남편이 최무룡보다 더 멋있잖아. 배우 이름이 뭐지?”하는 소리를 들었다. 청년이 그 배우가 성남시장으로 있으면서 탐학을 일삼은 탐관오리로, 현재 교도소에 있는 ‘악당’임을 알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했다. 현실에서 이대엽은 악당이지만, 영화 속에서만큼은 멋진 사내 중의 사내였다.

    또 다른 영화의 한 장면을 기억해보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탱크가 38선을 넘어 밀고 들어오자 국군은 속수무책 피난민 행렬과 함께 후퇴하는 패잔병 신세가 된다. 장교 신성일은 무기력하게 패배한 군인은 직무유기를 저지르는 것으로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국민에게 사죄하는 길은 오직 하나. 적과 싸우다 죽을 자리를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뇌하는 군인 신성일이 죽을 자리를 찾으려 전선을 향해 올라가는데, 그 앞에 지프를 몰고 이대엽이 나타난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장교 이대엽은 지식인 장교인 신성일처럼 뭘 생각하고 자시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부하가 가져다준 커다란 사발에 찬물을 붓고 밥을 말아 후루룩 들이켜고는 “나 간다” 한마디를 남기고 지프 뒤에 폭탄을 가득 싣고는 적군의 탱크를 향해 돌진, 폭사해버린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내 이대엽. 기왕 이렇게 된 일. 칭얼거리는 것은 사내답지 못한 것.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돌진하는 청년 장교의 모습을 역시 5분도 안 되는 장면을 통해 명쾌하게 보여준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의 한 장면이다.



    또 다른 영화를 보자. 암흑가 보스 장동휘의 아내 문정숙은 모함과 오해에 얽혀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둥서방이란 자가 마약중독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시의 뒷골목 한구석에 문정숙이 서 있다. 다른 여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남자를 유혹하는데 그녀는 텃세에 밀린 것인지, 다른 여자들의 뒷전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문정숙의 얌전한 자태에 끌려 그녀에게 다가간 남자들은 얼굴에 난 흉한 상처를 보고는 질겁한다. 문정숙의 몸을 사려던 사내가 얼굴의 흉한 상처를 보고 자신을 속였다며 그녀를 때리려 하자, 둘 사이를 가로막는 사내가 나타난다. 이대엽이다. 그는 말로 하지 왜 여자를 때리느냐며 남자를 단숨에 제압한다. 그러고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나도 궁금해서 나왔는데 나하고 놉시다” 한다. 당당하고 구김살이 없다. 내뱉는 말은 짧고 명료하다. 그는 가난한 육체 노동자 신세여서, 밤거리 여자들의 신세를 지지만 적어도 야비하지는 않다. 상대가 창녀라도 지킬 것은 지킨다. 창녀들의 쪽방 마당에 들어서는 이대엽. 포주가 얼굴의 흉터 때문에 남자들과 트러블이 잦은 문정숙에게 방을 내주지 않으려 하자 지켜보던 이대엽은 “안되나? 갈란다 고마” 툭하고 내뱉고는 망설임 없이 돌아선다. 투박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쪽방 주인과 계약이 성사되고 문정숙과 방에 들어간 이대엽. 문정숙은 방에 들어가자 불부터 끈다. 아침에 일어난 이대엽은 얼굴에 흉한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그래서 그랬고마” 수긍한다. 불행한 여자 앞에서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짧고 투박하지만 지저분한 창녀촌의 쪽방을 훈훈하게 만들 만큼 정이 넘치고, 이해심이 있다. 이만희 감독의 1964년 작 ‘검은머리’의 한 장면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만희 감독, 1963)에서의 이대엽은 또 어떤가? 언제나 말없이 내무반 귀퉁이에서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있던 이대엽은 장동휘 분대에 전입해 온 최무룡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른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최무룡의 형은 이대엽의 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원수다. 대원들의 중재로 일단 화해는 한다. 자신의 동생을 최무룡이 죽인 것은 아니잖은가? 하지만 최무룡의 얼굴을 보면 억울하게 죽은 동생이 생각난다. 지금은 전쟁 중이고, 최무룡은 같은 분대의 전우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이대엽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운다. 울어서 푸는 수밖에 없다. ‘검은 머리’에서 무뚝뚝하지만 정이 철철 넘치는 사내였던 그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는 과묵하고 책임감 넘치는 병사를 연기해낸다.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 이대엽

    이대엽이 최무룡, 남궁원 등과 함께 출연한 영화 ‘빨간 마후라’의 한 장면.

    이만희 감독과의 만남

    1958년 경남 마산으로 촬영 간 한형모 감독의 눈에 들어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배우가 된 이대엽은 박노식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을 했듯 투박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를 영화 속에서 쓰고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한다. 전라도 사나이가 박노식이라면, 경상도 사나이는 이대엽이었다. 데뷔 초기 주로 한형모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는 한 감독의 1958년 작 ‘나 혼자만이’에서 김진규를 돕는 정의로운 청년 역을 맡아 평론가들에게 “키가 좀 작은 것이 흠이지만 장래를 보고 싶은 연기바탕을 가지 연기자”라는 칭찬을 받는다. 이후 주로 주인공을 돕는 정의로운 조연으로 출연하던 그가 개성 있는 자신만의 색깔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만희 감독 영화에 출연하면서부터다.

    1963년 작 ‘YMS 504의 수병’을 보자. 패기 넘치는 젊은 장교 박노식은 해군 사상 최고 말썽꾼들의 똥배라는 YMS 504호의 함장으로 부임한다. 부함장은 노상 술에 찌들어 바람둥이 아내의 무기력한 남편인 자신의 신세를 저주하는 개망나니 싸움꾼 알코올중독자 장동휘이고, 하사관의 최고선임 이대엽은 마음에 안 들면 주먹부터 날리는 싸움꾼에 술주정뱅이다. 이두박근에 여자 나체 문신을 하고 눈에 거슬리면 언제나 ‘계급장 떼고 한판 붙어보자’며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병사에게 웃통을 벗으며 덤벼든다. 박노식은 이대엽과 꼴통 수병들의 싸움질을 말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저런 꼴통들을 나더러 다루란 말이냐?”며.

    이대엽과 이만희 감독의 두 번째 만남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었다. 이후 세 번째 만남 ‘검은 머리’에서 이대엽은 장동휘와 문정숙을 두고 삼각관계에 휘말리지만, 사내답게 문정숙의 행복을 빌고 떠나가는 택시운전사 역을 맡아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다. 이후 ‘빨간 마후라’(신상옥 감독, 1964)에 출연해 인기를 한 몸에 모은 그는 이후 반공 전쟁영화의 단골 조연으로 출연하게 된다.

    모든 배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배우의 출연작 중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둔 영화에서의 연기가 그 배우의 연기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대엽의 대성공작은 ‘빨간 마후라’였다. 이후 이대엽의 캐릭터는 항상 의리 있고, 뚝심 있는 경상도 사나이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돕는 역을 했다. 비슷한 종류의 영화에서 비슷한 배역을 맡는 조연. 이것이 1960년대 중반까지 이대엽의 모습이었다. 좋은 감독과 좋은 작품을 만나면 배우는 성장한다. 이대엽의 연기를 물오르게 한 감독은 이만희였다. 그러나 개봉 이후 군사정권이 필름을 강제 소거해버려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은 영화 ‘7인의 여포로’(1965) 이후 이대엽은 이만희 감독 영화에 더 이상 출연하지 않는다.

    1960년대 중반, 이대엽에게는 넘어야 할 큰 산들이 있었다. 액션 영화에서는 장동휘와 박노식이었고, 멜로 영화로 가면 신성일을 비롯해 너무 많았다. 이대엽과 같은 시기에 데뷔한 남궁원은 훤칠한 키에 선 굵은 미남형 얼굴로 일찍부터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고 있었다. ‘빨간 마후라’에서 남궁원은 최무룡과 대결하는 주연이었지만, 이대엽은 그들을 보조하는 조연이었다.

    박노식과 이순재 사이

    배우는 얼굴이 중요하다. 이대엽의 얼굴은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와 비슷하게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개성을 지닌 선배들이 있다. 장동휘와 박노식은 항상 김진규, 신영균, 신성일 같은 미남배우를 괴롭히는 조연으로 영화에 출연했지만, 연기에 대한 남다른 욕심과 열정이 만들어낸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들은 미남 배우를 압도하는 악의와 광기를 발산해 영화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살린다. 특히 박노식의 경우, 자신에게 온 영화가 일생에 다시는 못 잡을 좋은 영화라는 판단이 서면 선후배 간에 싸움을 벌여 술병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까지 광기를 만들어내 영화에서 뭔가를 해내고야 만다. 그래서 그들이 스타이고 최고의 배우인 것이다.

    이대엽에게도 박노식, 장동휘 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요구되는 시기가 왔다. 이대엽이 비슷한 반공 전쟁 영화의 비슷한 캐릭터 단골 조연으로 굳어질 무렵인 1960년대 후반.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배우와 감독이 속속 등장한다. 그의 선배 세대인 장동휘, 박노식이 조연급 성격배우에서 주연급 연기파 배우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을 때, 이대엽도 연기력 있는 성격배우를 목표로 틈을 노린다. 당시 최고의 감독 김수용과의 만남이다. ‘까치소리’(1967) ‘순애보’(1968)에서 이대엽은 악역으로 출연해 주연급 배우들을 압도하는 성격 배우로 자신의 연기 영역을 넓히려 한다. 1960년대 초 이만희 감독과 작업하며 경상도 사나이의 투박한 매력을 연기했다면, 이제는 김수용 감독과 만나 자신의 연기 영역을 넓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연기에 주목하지 않았다. 연기가 나쁜 것도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해 만들어진 ‘카인의 후예’(유현목 감독)에서 압도적인 악역을 해낸 박노식에게 시선이 모였다. 박노식은 40대 연기자만이 할 수 있는 원숙한 연기에 광기 어린 카리스마까지 더해진 명연을 펼쳤고, 장동휘는 이만희 감독의 ‘암살자’(1969)에서 매력적인 니힐리스트 킬러를 연기했다.

    이대엽에게 박노식과 장동휘는 너무 큰 산이었다. 그들이 30대에 맡았던 역이 자신에게로 와야 하는데 아직 이대엽에게는 그런 카리스마가 없었다. 갈 길이 멀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성격 배우들도 만만치 않았다. 이순재, 오지명, 최불암 등. 탤런트란 이름의 배우들이 영화계로 치고 들어와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위로는 장동휘와 박노식이, 아래에서는 이순재, 오지명, 최불암, 문오장, 김성옥이 치고 올라왔다. 새로운 감독도 등장했다. 미스터리 액션 영화를 장기로 삼겠다는 장일호, 전쟁 영화의 고영남, 검객 영화의 최인현, 협객 영화의 김효천 등. 뭔가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갈림길이었다.

    이대엽에게도 기회는 온다. 홍콩 무협 영화 바람이 이 땅에 불어온 것이다. 40대 장동휘 박노식보다는 30대 이대엽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무협 영화에서는 액션 영화보다 난도 높은 액션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1968년 이대엽은 검객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된다. 이대엽의 얼굴에는 홍콩 무협영화 배우인 왕우에 뒤지지 않는 남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홍콩 영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1967)의 표절작인 ‘대검객’(강범구 감독, 1968)에서 이대엽은 남궁원과 함께 주연을 맡는다. 같은 해 박노식과 함께 정창화 감독의 ‘나그네 검객 108관’에도 출연한다. 그리고 다음 해, 마침내 단독으로 검객 영화 주연을 맡는다. 최인현 감독의 ‘3인의 여검객’, 임원식 감독의 ‘맹수’, 홍콩과 합작 영화 ‘용문의 여검’ 등이었다. 한홍 합작 영화 ‘용문의 여검’은 영화 프린트와 네거티브 필름 모두 남아 있지 않아 볼 수 없지만, 제목이 좀 그렇다. 여검이라니.

    영화 ‘맹수’가 시작되면 매우 젊고 아름다운 여자 검객이 등장한다. 맹인 검객이다. 아름다운 맹인 여협을 연기하는 여인은 누구일까? 놀라지 마시라. 사미자다. 비슷한 시기 홍콩에서 개봉한 여배우 정패패 주연의 ‘방랑의 결투(원제 대취협)’(1966)와 ‘심야의 결투’(1968)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나라에도 여검객이 등장하는 영화가 나온 것이다. 맹인 검객 사미자는 일본의 맹인 검객 ‘자토이치’가 쓰는 칼과 비슷한 지팡이 속에 날카로운 검이 숨겨진 맹인용 지팡이를 무기로 사용한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칠고 야비한 남성들과 갈대밭을 누비며 결투를 벌인다. 그녀의 뛰어난 검술과 미모는 사내들의 입을 타고 전해지고, 주막의 봉놋방 구석에 누워 자고 있는 사내의 귀에까지 전해진다. 사내들이 야비한 호기심으로 사미자의 인상착의를 이야기하자 벽을 향해 몸을 누이고 자는 것으로 여겨졌던 사내가 몸을 돌린다. 이대엽이다. 그가 바로 맹인 여협 사미자에게 검술을 가르친 사부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사미자가 나와 자신의 원수인 도금봉과 그녀의 일당을 찾아 헤맨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대엽 주연 영화가 아니다. 물론 영화에서 주연자리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영화를 위해 좋은 연기를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대엽은 이 영화에서 사미자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영화 ‘3인의 여검객’을 보자. 조선 건국 초기, 고려 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무리가 있다. 그들의 이름은 검계당. 두목 이대엽은 ‘우리가 조선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고려 왕조를 부활시키기 위함보다는 조선 왕조의 학정 아래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검계당이 가장 두려워할 것은 강도나 산적으로 변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부두목인 김성옥은 생각이 다르다. 그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칼로 표현한다. 이대엽을 불시에 기습해 다시는 칼을 쥐지 못하도록 손을 잘라버린 후 계곡 아래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검계당은 명나라로 가는 조선의 조공물을 약탈해 사리사욕을 취한다. 검계당은 이대엽을 죽인 것에 그치지 않고 이대엽의 갓난아기를 유괴하고 아내 윤정희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윤정희는 천우신조로 목숨을 구하고 아기를 되찾기 위해 검객이 돼 팔도를 유랑한다. 한편 이대엽은 깊은 산속 도사에게 구조돼 천하제일의 검법을 전수받고, 명검까지 손에 넣는다. 검계당에 복수하기 위해 떠나는 이대엽. 이때 윤정희는 검계당에 복수하려는 두 명의 자매 여검객과 만나 검계당과 대결한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이대엽. 아내 윤정희를 돕기 위해 나서는데 이게 뭐야? 그는 광대탈을 쓰고 그녀들을 돕는다. 이 영화에서 이대엽의 얼굴은 볼 수가 없다. 그가 자신의 얼굴로 연기하는 부분은 채 20여 분을 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무술 대역을 써야 하니 탈을 쓰는 주인공으로 쉽게 갔을 수도 있고, 당시 겹치기 출연이 많았으니 대역이 연기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대엽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만 것이다.

    사실 이대엽은 남자 연기자들과 있을 때보다 여자 연기자들과 있을 때 남성적인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검은 머리’가 그 예다. 하지만 두 편의 검객 영화 모두에서 1960년대 초 이만희 영화에서 보여줬던 투박한 남성의 멋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 이대엽은 욕심을 갖고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대충하는 것 같다.

    이탈과 몰락

    1970년대 초. 이대엽은 수많은 액션 영화에 출연한다. 하지만 남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작품이 별로 없다. ‘암흑가의 25시’(1970)라는 김효천 감독 영화가 있다. 미남 배우 남궁원이 살금살금 호텔 방 안에 숨어든다. 그런데 그 방에는 먼저 같은 목적으로 침입한 자가 있다. 독기 어린 실눈을 한 김성옥이다. 두 침입자가 서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견제를 하는데, 두 침입자보다 먼저 이 방에 들어와 볼일을 다 본,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이대엽이다. 남궁원은 007의 숀 코너리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연기를 하는데 제법 매력적이다. 태국 스파이인 김성옥은 정보에 능통한 자. 그리고 중국인인 이대엽은 표창의 명수인 킬러다. 세 침입자가 찾는 것은 황금 불상. 그들은 목적을 위해 서로 연합하기로 한다. 이 팀에 두 사람이 더 합류하는데 알코올중독자이며 날건달인 일본인 독고성과 이들의 목적을 방해하기 위해 악당 최불암이 심어놓은 배신자 오지명이다. 그런데 영화가 흘러갈수록 남궁원과 독고성, 오지명만 재미있고, 이대엽의 캐릭터는 전혀 재미가 없다. 마지막에는 그가 왜 있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약해진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미스터리 스릴러 전문 김묵 감독의 협객 영화 ‘일대일’(1972)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대엽은 처음에만 반짝하고, 영화 마지막에는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된다. 이상하게도 이대엽은 영화의 라스트에 이르면 사라져버리는 배우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에서조차 라스트에서 그의 존재감을 느낀 경우가 별로 없다.

    왜 그랬을까? 배우는 좋은 감독과 좋은 영화를 만나면서 거듭 태어나는 불사조다. 그러나 동시에 한 편의 영화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며 자신의 힘만으로 거듭나는 불사조이기도 하다. 좋은 배우는 영화 전체를 파악하고 자신이 불타오를 곳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뒤 연기한다. ‘카인의 후예’에서 박노식이 해낸 라스트를 보라. ‘암살자’에서 장동휘가 해낸 장대한 라스트는 또 어떤가. 이대엽의 연기에는 그것이 없다.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 이대엽
    오승욱

    1963년 서울생

    서울대 조소학 학사

    영화 ‘킬리만자로’ 각본 및 연출

    1999년 제36회 대종상 영화제 각본상


    1970년 대 초 이대엽의 연기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명동잔혹사’에서의 5분이다. ‘맨주먹으로 왔다’나 ‘팔도강산’ 시리즈 같은 서민극에서 가난 속에서도 당당하게 버티는 서민 연기를 할 때도 매력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1960년대의 연기에 나이가 주는 관록이 더해졌다는 점 외에, 그의 연기에서는 성장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대엽의 연기가 가장 멋졌던 1960년대 초반. 그의 연기에는 정직하고 당당하게 몸으로 먹고사는 노동자의 자존심과 패기가 서린 모습이 있었다.

    액션 배우들은 몸을 통해 남성의 판타지를 구현해내는 압도적 카리스마를 보여줘야 한다. 이대엽은 자신의 연기를 점프시켜 그의 선배들이 해낸 압도적 카리스마로 영화의 라스트를 힘 있게 몰아가는 그런 배우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길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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