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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⑤

나전칠기 명장 1호 손대현

“자개가 아름다운 건 옻칠이 잘 되었기 때문이죠”

  • 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나전칠기 명장 1호 손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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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주문한 매우 귀한 다기가 있었는데, 일 끝나고 동료들과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그런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면 무슨 맛일까’ 궁금해해서 고량주를 따라 마시게 됐어요. 다음 날 선생님께 금방 탄로가 났지요. 선생님은 매일 작품을 꺼내 확인하시고 냄새를 맡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잘 씻어놓았지만 향이 남았던 거지요.”

장인으로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정신 상태에 대해 일장 연설을 들었던 기억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라니, 옻칠 말고 이 남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싶다.

진짜 옻칠 배우고 싶어 민종태 선생을 찾아가다

그가 옻칠을 만나는 운명의 순간은 일찍 찾아왔다.

“친구 소개로 일하러 다니게 된 사무실이 서울역에 있었는데, 그 건물 2층에 나전칠기 작업장이 있었습니다. 가끔씩 들러 작업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어른들 담배 심부름도 해드리곤 했어요. 어느 날 갔더니, 마침 완성품을 포장하는 날이었는지 자개가 박힌 보석함과 쟁반을 상자에 넣고 있더군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무지개 색으로 반짝이는 영롱한 자개 빛깔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 열다섯 살 소년은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 자리에서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곧 ‘칠장이’로 나섰다. 그러나 당시 그 작업장에서 하던 칠은 천연 옻칠이 아니라 합성도료인 캐슈 칠이었다.

“그곳에서 3년간 캐슈 칠을 하면서 선배들에게 옻칠의 세계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옻칠의 대가로 김봉룡, 민종태, 김태희 세 분이 계시는데 그중에서도 민종태 선생님이 일도 많이 하시고 인품도 넉넉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민종태와 김봉룡 장인은 조선시대 마지막 나전칠기장인 전성규 선생의 제자다. 특히 김봉룡 장인의 나전은 디자인이 매우 뛰어났다. 스승 전성규와 함께 파리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은 스승의 작품이 동상을 수상할 때 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다른 제자인 심부길 장인 역시 끊음질(자개를 끊어가면서 붙이는 섬세한 기법)의 대가였다. 전성규의 제자는 아니지만 김태희 선생 역시 옻칠의 명수이자 채화칠기로 유명했다.

“그때는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그저 선배들 이야기를 들으며 민종태 선생님을 혼자 존경하고 흠모했습니다.”

기술자와 장인의 차이는 ‘발심(發心)’에 있는 것 같다. “이왕 이 일을 시작했으니, 진짜 옻칠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1968년 다짜고짜 민종태 선생이 운영하는 성남의 작업장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그토록 존경해온 민 선생님은 얼굴도 못 본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무실 사람만 겨우 만날 수 있었지요.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찾아갔습니다.”

평생 자신이 원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루고야 마는 끈질긴 성격대로 그는 민종태 선생의 작업장을 계속 찾아갔고, 마침내 한 자리가 비게 되었을 때 출근하라는 허락을 받아냈다. 당시 일본 고객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주문을 도맡아 했던 민종태 선생의 공방은 소목부와 조각부, 옻칠부, 나전부 등 직원이 서른 명이나 되는 큰 규모였다. 그는 옻칠부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마냥 행복해서 열심히 했지요. 또 비록 캐슈 칠이지만 칠 작업을 몇 년 동안 해온 경험도 있는데다 선배들도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무릎 꿇고 작품을 받았던 일본인

공방 바로 옆에 친구와 함께 자취하던 그는 퇴근 후에도 공방에 들러 아무도 없는 작업장을 청소하고 습기가 부족하면 물을 뿌려놓곤 했다.(옻칠은 습기가 있어야 잘 마른다.) 그런 성실함은 차차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마침내 민종태 선생도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덕택에 옻칠부 책임자였던 선배가 독립해 나갔을 때 그는 책임자 자리를 꿰찼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일 때였다.

그가 기억하는 스승 민종태 선생은 솜씨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사내답게 잘생긴 대장부의 모습이다.

“일본에서도 작품을 의뢰하러 많이 왔었는데,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오동잎 같은 문양을 넣어달라고 하면 ‘그렇게는 안 한다. 내게 작품을 부탁하려면 문양까지 내게 맡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전칠기 명장 1호 손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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