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부론’<br> 애덤 스미스 지음,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전 2권
“여러 나라가 흔들리고, 시위는 격해지고, 실업률은 오르고, 적자는 늘어만 가니 자본주의 장점들은 의문을 받고 있구려. 내 지난 수백 년간 지켜본바 자본주의를 앞으로 수백 년 더 지속시키기 위해, 아니면 적어도 지난해보다 올해 더 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펜을 들었소. … 자본주의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자본주의가 단지 다른 대체물보다 더 낫다고 했을 뿐이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지. … 자본주의의 단점을 치유할 단순한 처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을 얘기하네. …”
지난해 세계적으로 들불처럼 번진 ‘월가를 점령하라’시위가 상징하듯 자본주의 위기론이 팽배한 것을 의식한 글이다. 루벤스타인이 애덤 스미스의 이름을 빌린 건 그가 ‘자본주의의 비조’로 숭앙받고 있어서다. 스미스의 대표작인 ‘국부론’이 경제학과 자본주의의 이론적 효시가 됐기 때문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본디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원제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라는 긴 제목의 책이다. ‘국부론’은 세계를 지배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제시한 기념비적 노작이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적인 면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저작이기도 하다.
‘국부론’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다. 시장이 자기 통제 기능을 갖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가리킨다. 개인의 이기심은 시장의 가격조정 메커니즘을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고 공공의 이익을 촉진한다고 스미스는 생각했다. 이처럼 중요한 말이 600여 쪽 분량의 ‘국부론’에서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신기하다. 마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표현을 책의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줄에 단 한 번 언급한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과 비슷하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쓴 책이다.
‘국부론’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대목은 개인의 이기심을 근거로 한 경제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점을 흥미롭게 표현한 부분이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의 자애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유리함을 말한다.”
이 책은 사회의 번영을 촉진하는 두 가지 원리로 분업과 자본 축적을 든다. 국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富)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는 철학이다. 스미스는 생산의 기초를 분업에 둔다. 한 공장에서 노동자가 모든 공정을 혼자 행하는 것보다 공정별로 나누어 여럿이 각자 전문적 업무를 수행하는 편이 더 높은 생산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분업과 이에 따르는 기계의 채용을 위해서는 자본 축적이 필요하며, 자유경쟁에 의해 자본 축적을 꾀하는 것이 국부 증진의 바른 길이라고 썼다.
보이지 않는 손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시장 이론의 핵심인 ‘보이지 않는 손’의 구실은 후대에 자본주의를 자유무역주의로 탈바꿈시키는 데 사용됐다. 일부에선 정부 규제를 없애 개인의 무제한적인 이윤추구 자유를 주장하는 데까지 악용하고 있다. 자유방임주의를 돈을 벌기 위해 기업과 기업인이 무슨 일을 해도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현상도 나타난다.
스미스 이후 주류 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보다 체계화하고 계량화하는 데 주력했다. 로잔학파의 일반균형이론은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적 증거를, 밀턴 프리드먼은 완벽한 시장경제에 대한 맹신을 퍼뜨렸다. ‘시장 성공 경제학’에만 관심을 뒀을 뿐 ‘시장 실패 경제학’에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스미스를 시장 만능주의자로 보는 건 오해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외친 것은 자유시장이 윤리적이란 얘기가 아니라 대자본의 탐욕을 경계한 때문이었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경제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했다. 여기서 개인은 사회에서 분리된 고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공감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다. 스미스의 또 다른 명저 ‘도덕감정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스미스는 ‘국부론’을 쓰기 전에 ‘도덕감정론’을 먼저 지었다. ‘도덕감정론’은 개인의 이기심을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파악한 건 맞지만, 이때의 개인은 타인과 서로 공감하는 도덕과 정의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한 공감의 원리는 ‘국부론’에서 시장의 원리로 확장된다. 공감의 원리와 시장의 원리는 스미스의 철학체계에서 모두 인간의 본성에 연유한다. ‘국부론’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도덕감정론’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긴요하다. 에든버러에 있는 그의 무덤에 새겨진 짤막한 비문이 이 점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