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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 VS 리오넬 메시

천부적인 슛의 달인

  • 장원재 축구평론가|drjang12@gmail.com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VS 리오넬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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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와 순발력의 귀재 호날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VS  리오넬 메시
호날두의 드리블은 화려하다. 빠르다. 거침이 없다. 앞을 막아선 수비수를 상대로 헛다리 짚기를 할 때도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위풍당당한 풍모를 유지한다. 메시가 아무도 모르는 지점으로 소리 없이 다가와 골을 성공시킨다면 호날두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곳에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구질과 스피드의 슛으로 고지를 함락한다. 메시에게 발목이 있다면 호날두에겐 스피드와 순발력이 있다. 페널티 박스 바로 바깥, 수비가 공을 처리할 공간을 압박하며 들어온다. 이제는 패스할 시공간이 다 없어졌다고 생각할 즈음 호날두는 전후좌우를 살피고 발바닥으로 공을 50㎝ 정도 밀어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만든 공간을 활용해 슛을 날리거나 패스를 연결한다. 그 연결동작은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깃털 옷을 입고 달리는 신선의 형상이 저러했을까. 그리고 그의 발명품 무회전 프리킥. 직선강타나 회전구 슛이 더 멀리, 더 빨리 나간다는 정설을 배반한 축구사의 작은 혁명. 1982년 OB베어스의 박철순이 이 땅에 처음 본격적으로 선을 보였던 무회전 너클볼의 원리가 축구로 건너간 동화 같은 얘기다. 빨랫줄처럼 날아가던 축구공이 골키퍼 앞에서 예측불허 무정형의 움직임을 보이며 마구 흔들리는 불가사의한 경험.

바둑으로 보자면 호날두는 조훈현, 메시는 이창호다. 권투로 치면 메시는 김태식이고 호날두는 박찬희다. 그러나 이 둘이 정말 역대 최고일는지는 한번 숨을 고르고 찬찬히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이 둘은 프리메라 리가(호날두의 경우는 EPL까지)에서 이미 전설이 되었지만, 유럽선수권 대회나 월드컵에서 아직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또 다른 지적도 있다. 스페인 리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구조적 취약점이 있다. 잉글랜드나 이탈리아에 비해 상위 팀들과 하위 팀들 간의 실력차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세대 간 논쟁이 붙으면 올드팬들은 펠레와 마라도나의 신기(神技)를 극찬하면서, “거기에 비하면 메시와 호날두는 평범함을 좀 멀리 벗어난 수준이지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젊은 팬들은 바로 반격에 나선다. “펠레와 마라도나 시대는 공격수와 수비수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플레이하던 목가주의 시대이며 그만큼 선수들 간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묘기에 가까운 플레이가 요즘보다 더 자주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축구는 콤팩트 축구이며 예전에 비해 더 빠르고 격렬하고 몸싸움이 심하다”고 역공한다. 경기 스타일상 현대 축구가 공격수에게 더 불리한 상황인 것은 맞다. 하지만 현대의 축구선수들은 보다 나은 의료진과 장비의 도움을 받는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건 3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혼자서 열 명 몫 해낸 마라도나



미세한 신체 기능 저하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동능력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의료기술의 발전은 축구에서 정신력의 비중을 줄이고 과학의 중요성을 증대시켰다. 1950년대는(펠레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우승 멤버다) 축구화 무게가 거의 1㎏에 육박하던 시절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양 발에 족쇄를 달고 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기복이나 정강이 보호대까지를 포함하면, 장비가 선수들에게 가하는 물리적 제약은 지금 선수들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었을 터이다. 그래서 말한다. 목가적 스타일의 축구는 콤팩트 축구를 구사할 능력이 떨어졌기에 출현했던 축구가 아니다. 여건과 상황에 맞춰 진화하고 성장했던 당대 최신의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심판도 그렇다. 1966년 월드컵까지는 선수교체 제도가 없었다. 다리가 부러지든 코뼈가 주저앉든,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가거나 끝까지 뛰거나 이 둘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대의 관념을 기준으로 하면, 축구 선수들은 전장에 나간 병사와 같았기에 어떻게든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관중도 선수 자신도 굳게 믿던 시대다. 앞서 말한 1954년 결승전, 푸스카스는 발목과 종아리 부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그의 기용을 두고 헝가리 감독은 당일 아침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교체선수 제도가 있어 푸스카스를 벤치에서 쉬게 하고 마지막 15분에 투입하는 작전을 짰더라면 그날의 승부는 달라졌을 것이다.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물리친 신화도 마찬가지다. 전반 34분 백태클을 시도하던 이탈리아 수비수 불가렐리가 무릎 골절로 실려 나가 상당시간을 11명 대 10명으로 경기한 것이 북한 승리의 원동력이다. (물론 이 상황은 백태클을 시도한 불가렐리의 파울이다. 상대방의 무릎 위로 넘어진 북한 선수에게는 고의성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떠나 당시 북한은 세계 정상급의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심판들도 어지간한 파울에는 휘슬을 불지 않았다. 지금이야 웬만한 경기에 수십 대의 카메라가 따라붙고, 심판들이 미처 잡아내지 못한 파울도 사후에 발각돼 징계위에 회부되는 시대지만 과거의 선수들은 제도로부터도 심판으로부터도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 ‘선수보호’라는 관념이 그만큼 희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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