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3월 ‘장애인 차별철폐 공동투쟁단’ 소속 장애인들이 장애인 인권 보호를 요구하며 인권위 사무실을 점거한 모습. 인권위 사무실에서는 장애인 단체의 점거 농성이 수차 벌어졌다.
“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말한다.”
이 법은 제2조 4항에서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로 19가지 유형을 열거한다. 헌법 제11조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더해 장애, 나이, 출신지역, 출생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적 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이 명시돼 있다. 법이 제정된 2001년 당시의 세계적 기준과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인권관념보다 앞선 것이었다. 특히 ‘성적 지향’은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의 자율적 권리를 보호하는 취지로 서구에서는 이미 상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때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우리 며느리를 남자로 맞으란 말이냐!”같이 지극히 자극적인 구호로 무장한 어머니 부대의 데모야 웃어넘길 수 있지만, 말 없는 다수의 도덕관념에 익숙하지 않은 이 주제는 인권위의 대중적인 기반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사유가 돼왔다.
차이와 차별
2012년 3월 위원회법의 개정으로 종전에 제외됐던 사립학교와 공기업도 침해의 주체에 포함됐다.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만큼 인권위의 역할과 존재 의미가 강화된 셈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에는 인권위를 통째로 없애려 들었고, 그게 여의치 않자 막무가내로 정원을 축소했다. 그런 정부가 어떻게 이런 법에 동의했는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소리 없이 인권위의 인원도 늘었다. 줄일 때는 언제고 늘리는 건 또 뭔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이런 고무줄 정책인가? 정권 말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초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신을 차린 셈인가? 아니면 웬만큼 채찍질로 길들이기에 성공했으니, 이제 당근 몇 뿌리로 달래겠다는 뜻인가? 어쨌든 인권위로서는 잘된 일이다. 한 정부 관료는 전직 인권위원장인 내게 “그때 ‘빼앗았던’ 것을 ‘돌려드린다’”며 생색을 냈다. 그 말에 실소하고 말았다.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다. 나쁜 뜻만은 아닐지 모른다. 영혼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정권과 시류에 부침하지 않고 중립, 객관적인 원칙에 따라 업무를 집행하는 소신이라면 말이다. 그게 헌법이 보장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헌법 제7조가 규정한 공무원의 자세다. 그러나 원칙은 팽개치고 오로지 출세와 보신을 위해 수시로 영혼을 바꾸는 속물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