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2월 장남의 대학 졸업식때 아내와 함께 한 김영철씨.
동물 세계를 보면 생식기능이 끝나면 생명도 끝난다. 수사자를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생식기능이 떨어지면 힘이 떨어지고, 힘이 떨어지면 곧바로 젊은 수사자의 도전을 받고 무리에서 추방되거나 부상을 당해 사망한다. 생식기능이 완료되면 곧 사망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 생식기능이 마감되더라도 10~20년을 더 산다. 바로 여기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시작된다. 동물에게는 없는 이 10~20년 동안 축적된 지혜가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문화적 장치’ 내지는 ‘찬란한 문명’이 이루어지는 기간이다. 특히나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어지간하면 80세를 넘기고, 암(癌)만 안 걸리면 100세까지도 수명을 유지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생식기능이 끝나고도 엄청난(?)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이는 동물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일 뿐 아니라, 인간 역사에서도 처음으로 겪는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一陰一陽之謂道
그렇다면 생식기능 완료 후의 30~4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인류사적으로는 문명의 축적이 이뤄지는 시간이지만, 개인사적으로는 힘든 시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문제로다. 색(色)은 끝났다 하더라도 식(食)은 유지해야 할 것 아닌가. 자식이 도와주는가, 보험이 보태줄 것인가. 아니면 자기 스스로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직장 다니던 남자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시점은 평균 50대 중반 전후다. 회사는 조금 더 빠르고, 공무원은 조금 더 늦다. 직장은 생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놀이터이기도 하다. 20~3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생계수단의 종료이기도 하지만, 놀이터가 사라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돈이 안 들어오는 것보다, 매일 직장 동료들과 만나 싸우고 지지고 웃고 술 먹던 놀이터가 사라지는 것이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청경(靑?)역학연구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역술가의 길로 들어선 김영철(金永哲·62) 원장을 만난 이유는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다. ‘인생 이모작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라고나 할까.
필자가 청경 선생을 처음 만난 시기는 2009년이다. 그때만 해도 이 양반은 공무원이었다. 광주지방공정거래사무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다. 창밖으로 무등산의 능선이 잘 보이는 빌딩 7층 사무실에 책상이 있고, 책상 위에는 단아한 난(蘭)이 한 분(盆) 올라 있었다. 여직원이 내온 진한 차향이 사무실에 가득 차 있던 기억이 난다. 이 깔끔한 사무실에서 집무를 보던 관료로 있을 때 그를 만났다. 보통 관료와 다른 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사주(四柱)였다.
공무원 사회에서 그는 ‘사주를 잘 보는 도사’로 소문나 있었다. 이 소문을 접한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어느 정도 내공을 갖고 있을까?”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이 명리학(命理學)이라는 ‘미아리’ 골목 바닥에 어떻게 들어왔을까?” “사부가 있다면 누구인가, 독학으로 배웠는가?” 등등이었다.
이 양반은 공무원으로 있다가 2010년 12월 3급인 부이사관으로 명예퇴직했다. 이후 1년 정도 집에서 놀다가, 2011년 겨울 역술관 사무실을 냈다. 청경역학연구원은 광주 치평동의 10여 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있다. 공정거래소장이 역술원장으로 둔갑해 있었다. 60세를 기점으로 이전이 밥통이 보장된 공무원이었다면 이후는 사람들의 운명을 감정해줘야 하는 역술원장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기업체들이 공정거래를 하는지 안 하는지 감찰해야 하는 권력직이었다면, 이제는 서민들의 고달픈 인생을 해석해주고 달래줘야 하는 역술가인 것이다. 대기업의 횡포가 심할 때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제검찰’로 불리던 시기도 있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