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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서울 이젠 동방예의지국 아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

  • 정수복│사회학 박사

서울 이젠 동방예의지국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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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사람들은 왜 개성적인가.
  • 서울 사람들은 왜 표정이 없는가. 파리에선 100년 된 아파트를 살려 쓰는데, 서울에선 30년도 안 된 아파트를 재개발하지 못해 왜 안달인가. 파리에서 10년 만에 돌아온 사회학자 정수복 씨가 흥미롭게 비교하는 서울과 파리의 서로 다른 장면 101개가 앞으로 독자를 찾아간다.<편집자>
서울 이젠 동방예의지국 아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연재될 이 글은 프랑스 파리에서 10년을 살다 대한민국 서울로 돌아온 한 중년 남자의 서울 관찰기록이 될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10년 만에 돌아와 다시 보고 느끼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풍경은 10년 전의 모습과는 판이하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어버렸다는 옛말이 떠오를 정도다. 나의 이런 느낌은 어쩌면 배가 난파되어서 어쩔 수 없이 무인도에 살다가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로빈슨 크루소의 심정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풍경들이 나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똑같은 사물이나 풍경도 관찰자의 관심, 경험, 지향점,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 아닌가? 그렇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시선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오랜 기간 프랑스 문화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계속 한국 문화 속에서 살았던 사람과는 다른 이방인의 시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파리에서의 장기 체류는 나를 알게 모르게 프랑스화된 한국 사람으로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법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서울에 살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서울의 다양한 풍경을 조금 다른 눈으로 관찰하게 된다. 나는 서울에 사는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울 방배동 주변에 모여 사는 프랑스 사람들과도 다르다. 그들에게는 한국 문화가 이방의 문화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로울 것이고 오로지 프랑스적인 관점에서 서울과 서울 사람들을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한국 문화 속에 들어가 있다. 아니 내 뼛속 깊이 한국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서울에서 초·중·고교와 대학원까지 다녔으니 내 몸속에는 한국 문화가 피처럼 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세월 파리라는 이방의 도시에서 살았으니 내 마음속에는 프랑스 문화의 요소들이 여기저기 깃들어 있을 것이다.

파리 17년, 서울 40년

서울 관찰기록을 써내려가기 전에 관찰자의 신상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 두는 것이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6·25전쟁이 끝나고 두 해가 지난 1955년 세상에 태어났다. 나의 할아버지 세대는 한 마을에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의 아버지 세대는 농촌을 떠나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이주한 첫 세대다. 나의 세대는 한반도를 떠나 미국과 유럽, 중국과 일본으로 자유롭게 떠날 수 있게 된 세대다.



1982년 6월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1989년 초에 귀국했다. 그 후 서울에서 13년을 살다가 2002년 초 서울 생활을 접고 다시 파리로 갔다. 그곳에서 10년을 살다가 2011년 말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공간적으로 보면 서울-파리-서울-파리의 삶을 산 셈이고 시간적으로 보자면 이 세상에서 보낸 57년의 세월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17년이라는 시간을 파리에서 보냈다. 스무 살을 성년의 시작으로 치자면 성인기의 거의 반에 가까운 17년을 이방의 땅 파리에서 산 셈이다.

나의 세대 가운데 프랑스에 유학한 사람은 꽤 있지만 나처럼 유학 이후 다시 프랑스로 가서 10년을 살다 돌아온 사람은 흔하지 않다. 유학생으로 갔다가 그곳에 눌러앉아 교민이 된 사람들은 있지만 나처럼 두 번씩이나 파리에 장기적으로 체류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사람은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나는 서울과 파리를 번갈아 오가며 살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인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서울 생활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파리 생활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영원한 ‘떠돌이’다. 나는 서울에서는 파리 사람의 시선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고 파리에서는 서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당연하고 익숙한 세상에 남보다 쉽게 권태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무언가 낯선 풍경이 있어야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유학을 마치고 13년 동안 서울에 살다보니 서울 풍경이 너무 당연하게 보였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 다시 파리로 갔다. 그런데 세계 어느 도시든 그곳에 한 해 두 해 살아가다보면 낯설게 보이던 풍경들이 점차 익숙해지고 신기하게 보이던 것들이 점차 사라진다. 신기함과 경이로움의 체험이 점점 줄어들어 간다. 파리에서 10년을 살다보니 파리가 ‘당연의 세계’가 돼버렸다. 그래서 다시 낯설게 보이는 서울로 왔다. 낯설음과 당연함 사이가 내가 숨 쉬며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이 글의 배경에는 나의 파리 생활 체험이 녹아들어 있다. 2002년 파리에 가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5000개가 넘는 파리 시내의 모든 길을 다 걸어 다니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매일 오후 파리의 스무 개 구(區)를 샅샅이 걸어 다니는 ‘파리를 걷는 남자’가 되었다. 내가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듣고 글을 쓰던 서재의 책상 맞은편 벽에 파리전도를 붙여놓고 내 발로 직접 걸어 다닌 길들을 저녁마다 초록색 형광펜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지도는 점차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해 몇 해가 지나니까 온통 초록 숲이 되었다. 한 번 가본 길도 있지만 수백 번을 걸어 다닌 길도 있다. 요즈음 서울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내 눈앞에는 가끔씩 내가 파리에서 걸어 다니던 길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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