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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서울 이젠 동방예의지국 아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

  • 정수복│사회학 박사

서울 이젠 동방예의지국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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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충격

서울로 다시 돌아온 지 5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는데 점차 서울 풍경에 눈이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새봄이 오면서 나의 서울 생활이라는 나무에도 잔뿌리가 내리는 느낌이다.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유학시절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를 공유한다. 그 친구들에게는 나처럼 유럽과 한국을 비교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10년, 20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유럽의 흔적을 벗고 한국 사람이 됐다. 유학을 마치고 처음 한국에 돌아왔을 때 느끼던 생소한 느낌은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리고 여느 한국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당연한 시선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후배들에게 서울 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느끼는 문화적 충격 또는 문화적 차이를 기록해서 글로 써보라고 권하곤 했다. 그런데 각자 서울 생활에 적응하면서 자기 전공 분야 논문을 쓰기에 바빠서 아무도 그런 체험을 글로 써서 발표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결국 강제적 논문 쓰기의 의무에서 벗어나 있고 파리에 한 번 유학한 게 아니라 두 번이나 길게 체류했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내가 그 일을 직접 담당하기로 했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문화 사이를 오가며 느낀 나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서울과 서울 사람들을 다소 거리를 두고 관찰한 기록을 남기는 것을 나의 의무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서울의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간 서울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크고 작은 풍경들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느낀 점을 적어놓아야겠다는 의무감이 이 글을 쓰게 했다. 기록해놓지 않으면 세월이 한 달 두 달 흘러갈수록 처음에는 새롭게 보이던 풍경들이 당연하고 일상적인 풍경으로 바뀌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하는 말이 다소 장황했다. 이제 서둘러 관찰기록으로 들어가자.

풍경 #1 얼굴 표정



서울 이젠 동방예의지국 아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2002년 다시 파리로 가서 살게 되었을 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물끄러미 승객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모두 다 제각각의 모습이었다. 각자 다 자기 나름의 분위기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라는 분위기를 얼굴에 풍기는 파리지앵들은 도도해보였고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다. 뭐 그렇게 잘났다고 그렇게 오만한 분위기로 앉아 있는지 다소 기분이 상할 정도였다.

2012년 서울에 돌아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얼굴 표정에 개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20대 여성들은 그들만이 공유하는 특성을 80% 정도 가지고 있고 20% 정도만 개인성을 드러낸다. 50대 남자는 90%는 공통 요소고 10% 정도만 자기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튀지 말아야 한다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삶이 만들어낸 얼굴 표정들이다. 서울 사람들은 파리 사람들에 비해 겸손해보이지만 때로 지루해보이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 출신의 화가 이우환은 도쿄와 파리의 아틀리에를 6개월에 한 번씩 오가며 작업을 했다. 그는 파리에 가는 이유를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의 얼굴이 다양해서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사람들보다도 무표정한 도쿄 사람들의 얼굴이 그에게 지루함과 답답함을 주었을 것이다.

파리에 여행 가는 아시아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일반적으로 단조롭다. 1970년대에는 일본 사람들이 밀려가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한국 사람들이, 2010년대에는 중국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다. 단체관광을 가서 집단으로 함께 다니는 그 사람들의 얼굴이나 거동에는 개인성이 없다. 단체관광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다니는 한국 사람들의 경우에도 옷차림, 머리 모양, 얼굴 표정에 큰 차이가 없다. 가족적 유사성이라고 불릴 수 있는 비슷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파리가 인종, 국적, 종교와 문화가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이 섞여 사는 코스모폴리탄 도시인 반면 서울은 외국인의 유입이 거의 없었고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자기들끼리 살아온 도시라는 점이 얼굴 표정의 다양성과 동질성을 어느 정도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인 차이로 얼굴 표정의 차이를 설명할 수도 있다. 개성과 특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집단의 동화와 순응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사회와 어른의 말을 잘 듣고 어른의 지시를 따르도록 유도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들 사이에는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고, 그것이 얼굴 표정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풍경 #2 탈(脫)동방예의지국

서울의 지하철은 파리의 지하철에 비해 훨씬 더 깨끗하고 쾌적하다. 여름이면 냉방이 되고 겨울이면 난방이 잘되며 정거장 안내가 소리와 영상으로 친절하게 이루어진다. 이상한 눈초리로 젊은 여성을 바라보거나 붐비는 시간에 육체적 접근(?)을 시도하는 치한도 많이 사라진 듯하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에서는 서로 몸이 닿거나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파리에서는 지하철의 환승구간이나 지하철 차량 안에서 옆 사람과 스치기만 해도 ‘파르동’(Pardon!·미안합니다!)이라는 말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들은 공공장소에서도 각자 자기가 관할하는 공간이 있는 듯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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