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김정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노수희의 방북 행적 & 이적단체 범민련 실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2-07-19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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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수희, 방북 내내 북한 찬양 뒤 판문점 귀환
    • “통일방안 다른 문익환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아”
    • 충격 받은 문 목사, 결국 화병으로 숨져
    • 범민련 남측본부는 골수 주사파만 남은 쇠락 조직
    “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김정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부의장(왼쪽)이 6월 5일 판문점을 방문해 북한군 간부의 설명을 듣고 있다.

    7월 12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앞 고가도로 밑. 남자 셋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범민련 사무실 근처에 사는 주민의 40%가량이 중국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다. “범민련 사무실은 85m²(25평)로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는 7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아침부터 소주잔을 돌리던 이들은 “종북 놈들 탓에 동네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범민련 해체를 요구하는 보수단체가 이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68·구속)은 104일간 북한에 체류하면서 김일성 일가(一家)를 찬양하다 7월 5일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 북쪽의 환송자들은 “리명박 역적 패당을 타도하라!”고 외쳤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이튿날 “역적 패당은 노 씨가 판문점 중앙분리선을 넘어서기 바쁘게 야수적으로 달려들어 짐짝처럼 끌고 갔고, 경기도 파주경찰서로 연행해 취조놀음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 부의장은 7월 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기자가 찾아간 범민련 남측본부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장면이 담긴 대형 사진이 사무실 안에 걸려 있다고 이웃들은 말했다. 30, 40대 직원 5, 6명이 상근하고 있고 노인 열대여섯 명이 드나드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한 이웃 주민의 설명이다.

    “북한이랑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7월 6일 당국이 압수수색할 때 경찰버스, 경찰차가 떼로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재미난 게 그날 사무실에 있던 범민련 사람은 네댓 명밖에 안 됐다는 거예요. 노인네들은 그날은 안 나왔고요. 우파 할아버지들이 몰려와 ‘범민련 물러가라’고 시위를 했는데 그분들도 황당했을 거예요. 물러갈 사람이 몇 명 없었거든요.”

    문익환 목사가 범민련 산파역



    범민련 남측본부는 1991년 고(故) 문익환 목사 주도로 결성된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가 모태다. 초대 의장은 강희남 목사가 맡았다. 강희남 목사는 2009년 6월 7일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고 쓴 붓글씨와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전북 전주시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강희남 목사 자살에 대해 당시 민주당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이 땅의 완성된 민주주의는 살아있는 죄스러운 우리들의 몫이 됐다. 우리는 당신이 못다 이룬 뜻을 이어갈 것”이라고 논평했다.

    노수희는 올해 3월 1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야권연대 공동선언 행사에 참석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심상정·유시민 공동대표 등 당시 야권 지도부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노수희는 행사 참석 11일 뒤 중국 베이징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 민주당과 통진당은 노수희의 북한 체류 시 언행에 대한 논평을 지금껏 내놓지 않고 있다. 나이 지긋한 범민련 인사들은 이렇듯 진보진영에서 ‘원로’로 대접받고 있다. 범민련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탐구해보기 전에 노수희가 북한에서 과연 어떤 발언과 행동을 했는지 살펴보자.

    노점상연합서 출발한 노수희

    공안당국에 따르면 노수희는 30대 후반인 1980년대 초부터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노점상을 했다. 1980년대 후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간부를 맡으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93년부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산하 서울연합에서도 활동했다. 각종 시위 현장에서 물불 안 가리는 활약으로 유명했다. 1995년 범민련 남측본부 출범 때 참여하기 시작해 부의장까지 맡았고 남한에서도 친북 발언을 서슴지 않아 대표적인 종북세력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노수희는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 진로’와의 인터뷰에서 “(1988년 노점상 생존권 수호대회를 계기로) 떼로 모여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노수희가 3월 24일 중국을 통해 북한에 도착한 사실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공안당국도 까맣게 몰랐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평양 만수대창작사 광장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참배·헌화했다. 이튿날엔 김일성광장의 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헌화한 화환의 댕기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3월 26일엔 만경대·주체사상탑·개선문을 방문해 “(김정일) 국상 중에도 반(反)인륜적 만행을 자행한 이명박 정권을 대신해 조국 인민의 사과를 만경대에 정중히 사죄드립니다” “(개선문은) 하나하나가 과학적이고 구체적이고 체계적이고 역사적 의미까지 모든 게 얼마나 탁월하신 철학이십니까”라고 말했다. 김일성종합대를 방문해서는 전자칠판에 “주석님의 혼과 인민 사랑의 결정체 김일성대 민족의 산 교육장임을 영광으로 받아 안읍시다”라고 판서했다. 3월 29일 백두산 밀영(북한이 김정일 출생지로 선전하는 곳)에선 “인민을 위해 헌신하시던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야전열차에서 순직하셨습니다. 그이와 같으신 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북한 언론들은 노수희의 행각을 체제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

    “로수희 부의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고 하면서 그러한 령도자는 세상에 없다고 말하였다.”(3월30일자 민주조선)

    “로수희 부의장은 북녘겨레가 동포애의 정으로 따뜻이 환영해주고 있는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남북공동선언들의 리행을 위한 범민련 남과 북, 해외의 3자련대를 강화하여 자주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하였다.”(4월5일자 노동신문)

    “회의에서는 특히 동족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심히 중상모독하면서 나라의 정세를 최악의 전쟁 접경에로 몰아가고 있는 리명박 보수세력의 악랄한 도발책동을 강력히 단죄 규탄하고 이를 반대하는 거족적인 투쟁에 해내외(국내외) 온 겨레가 한사람 같이 떨쳐나설 것을 열렬히 호소하였다.”(4월27일 조선중앙TV)

    “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김정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노수희가 7월 5일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앞에서 열린 ‘평양시 환송집회’에서 한 발언에는 범민련의 지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러분! 파쇼와 반통일의 광란이 기승을 부릴수록 범민련의 의지와 기상을 유감없이 떨치며 민족이 기억하는 통일인사로 여생을 살겠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통일 애국의 길에 다진 맹세 변함없이 싸워 나갈 것입니다. 위대하신 김일성 주석님 만세! 만세! 만세!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 만세! 만세! 경애하는 김정은 최고사령관님 만세! 만세! 만세!”

    북, 노수희 대남 선동에 활용

    북한은 노수희 방북을 대남 선동 수단으로도 활용했다. 범민련 북측본부는 7월 6일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조선의 각계 단체들과 인민들은 악명 높은 ‘보안법’을 철폐하고 로수희 부의장을 비롯한 통일 애국 인사들을 석방시키며 리명박 역적패당을 완전히 쓸어버리고 자주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한 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할 것이다.”

    범민련 해외본부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범민련은 남측 보수 당국이 제아무리 발악해도 해내외의 각계각층과 굳게 련대해 동족상쟁을 부추기는 ‘보안법’을 철폐시키고 반(反)통일 보수세력의 극악무도한 동족대결 망동을 단호히 저지 분쇄하며 우리 민족끼리의 시대를 다시 안아오기 위한 거세찬 운동을 적극 벌려나갈 것이다.”

    한국의 친북세력은 즉각 화답했다. 범민련 남측본부 논평부터 보자.

    “노수희가 판문점을 넘어오는 날 (왜곡 보도를 한) 동아일보 기자들이 한 줄로 조아려 도덕군자, 따뜻한 인간, 남다른 애국자에게 사죄의 예를 갖춰줄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7월 5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렇게 밝혔다.

    “공안기관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 노수희 의장권한대행 자택, 원진욱 사무처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체포했다. 노수희 대행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노수희 대행의 입국과 동시에 벌인 탄압 또한 공안기관의 통일단체 성원에 대한 무분별하고 비이성적인 공안탄압이다.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북한 통일전선부에서 대남공작을 하다 탈북한 J씨는 “남한 인사가 북한을 찾으면 초대소에서 남한 정세 수집 방법, 투쟁 조직체 운영 방법, 노출되지 않고 활동하는 방법 등 공작교육을 시킨다. 종교단체 인사를 상대로는 은밀한 접대를 해 약점을 잡기도 한다. 구속 시 묵비권 행사 요령, 법정 투쟁 방법도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공안당국 한 관계자는 “북한이 노수희에게 종북세력을 결집시켜 반정부투쟁을 강화하라는 지령을 하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범민련은 도대체 어떤 단체인가.

    문익환 목사, 임수경 민주당 의원과 함께 통일운동을 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2년 전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북한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익환 목사를 국가안전기획부 프락치로 몰았습니다. 의견이 안 맞으니까 프락치라고 몰아세운 겁니다. 북한은 늘 그런 식이죠. 저도 순진했죠. 그런 말 안 되는 상대와 통일을 논했다니. 문 목사가 그것 때문에 화병에 걸리셨어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요. 친북세력은 숨기려고 하죠. 친북하는 사람들, 문 목사 존경하죠. 저 역시 지금도 문 목사를 존경합니다. 저처럼 가까이서 본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안기부 프락치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사람들과 싸웠거든요. 주사파도 아니셨고요. 살아계셨다면 저처럼 바뀌셨을 겁니다. 그렇게 돌아가셨지만….”

    “문익환을 안기부 프락치로 몰아”

    문 목사는 1989년 3월 25일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다. 두 사람은 남북한과 해외를 아우르는 통일운동 단체를 설립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문 목사가 남측본부 의장, 재독 작곡가 윤이상 씨가 해외본부 의장을 맡는 것으로 정리됐다. 소설가 황석영 씨가 대변인으로 선임됐다.

    범민련에 몸담았던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설명이다.

    “범민련 출범과 관련한 남북 간 물밑작업이 한창 진행될 때 황석영 선생이 북한에 머무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북한에서 남측에 통보도 없이 황 선생을 범민련 대변인으로 임명해버렸습니다. 남측에서는 굉장히 황당했죠. 남북이 물밑에서 조직 구성을 논의하고 있었거든요. 김일성은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비슷한 해외교포 단체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 일을 황 선생에게 맡기려고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안 되는 일을 하고자 한 거죠.”

    홍진표 상임위원은 주사파 출신으로 이석기 의원,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중국 공안에 구금) 등과 함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에서도 활동했다.

    김일성은 1950년 5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연방제 통일을 위한 전 민족 통일전선을 형성하라”고 지시했다. 범민련은 1990년 11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출범했다. 해외본부와 북측본부는 각각 1990년 12월, 1991년 1월에 설립됐으나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삼고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31개 단체가 참여해 결성될 예정이던 남측본부는 당국의 제재로 인해 1995년 2월이 돼서야 발족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이 남측본부에 참여했다.

    문 목사는 고려연방제로 상징되는 북한식 통일방안에 회의적이었다고 하태경 의원은 말했다.

    “말년에 북한과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문익환 목사께서 돌아가신 게 1994년 1월 18일이에요. 그날 점심 때 재야인사 몇몇과 점식식사를 하셨습니다. ‘내가 안기부 프락치냐’고 고함을 치시다 쓰러져 세브란스병원으로 실려 가셨어요. 현재 재야의 원로 격인 진관 스님도 문 목사를 향해 과한 말씀을 하셨어요.”

    문 목사와 북한 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재일 언론인이자 통일운동가인 정경모 씨의 회고록 ‘시대의 불침번’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문 목사는 범민련이라는 조직을 벗어나 새로운 운동체를 구상하게 되었고, 그것이 통일맞이였소이다. 그랬더니 대뜸 나서서 장기인 중상 공격을 시작한 것이 일본에 있는 한민통(한통련의 전신) 곽동의 나리였소이다. ‘문 아무개는 김영삼 정권과 어울려서 흡수 통일을 획책하고 있는 스파이다.’ 밑도 끝도 없는 뜬소문이 삽시간에 서울로 평양으로 돌더니 곽동의와 연결된 범민련 독일 지부 어느 분자로부터 발신된 전문이 문 목사에게까지 도달되었던 것인데, 이 한 통의 전문이 문 목사에게 죽음을 불러온 것이외다.”

    문익환 목사는 범민련 남측본부를 출범시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를 해체하기로 결심하곤 “남과 북의 대등한 통일이어야 한다. 남과 북의 장점만을 살려 새 나라, 새 사회, 새 문화를 창조해나가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 하나로 종합되는 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의원의 증언이다.

    “북한 처지에서 문 목사의 통일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문 목사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범민련 해외본부 임민식 사무총장이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로 팩스를 한 통 보냈습니다. 북한은 이 문건에서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았습니다. 민자통으로부터 팩스를 건네받은 주사파들이 이 문건을 복사해 대학 총학생회와 재야단체에 유포했습니다. 김일성의 지시로 만든 단체를 해체하겠다는 태도를 북한이 용납하지 않은 거죠.”

    문 목사 사망 이후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는 고수파와 해체파로 나뉘었다. 문 목사를 공격한 민자통 그룹이 고수파의 핵심이었다. 이창복 전 열린우리당 의원과 이승환 씨가 고수파에 맞서 싸웠다. 두 사람을 포함한 재야인사들은 범민련에서 떨어져 나와 민족화해협력범국민위원회(민화협)를 결성했다. 현재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이명박 대통령 측근인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별보좌관이 맡고 있다.

    “수령 향한 존경심 대단했다”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대표는 “나는 수령님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이 대단했다. 김일성 사진을 늘 갖고 다녔고 수령님의 전사로 살고자 했다”고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 목사를 공격한 민자통이 사수파의 핵심이었습니다.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유서를 쓰고 자살한 강희남 목사도 민자통의 지원으로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이 된 겁니다. 진보진영에서는 민자통을 구(舊)좌파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남측본부에서 활동하는 어르신들은 1960년대부터 좌익운동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할아버지들 거의 돌아가시고 얼마 안 남았어요. 그분들은 한마디로 뼛속까지 좌익이에요. 골수분자들이 문 목사를 공격했습니다. 결국 화병으로 돌아가셨고요.”

    하태경 의원은 “임종석 전 의원, 이인영 의원, 임수경 의원은 민자통과는 결이 달랐다. 고수파와 선을 긋고 떨어져 나왔다. 그러곤 대중정치인으로 거듭났다”면서 “범민련 고수파는 통진당 당권파이던 경기동부와 맥이 같다”고 말했다.

    현재의 범민련 남측본부는 문익환 목사, 윤이상 씨, 황석영 씨가 참여한 그것과는 성격이나 노선이 다르다. 대법원은 1997년 범민련 남측본부를 이적(利敵)단체로 규정했다. 골수만 남은 범민련 남측본부는 17년 동안 이적행위를 해왔다.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에 동조하면서 북학 핵실험 등 북한 문제가 이슈화할 때마다 기관지인 ‘민족의 진로’를 통해 북한의 처지를 적극 옹호하고 대변했다.

    “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김정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김정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이 범민련 남측본부의 행동지침이었다. 범민련은 매년 남측본부, 북측본부, 해외본부가 참여하는 의장단 회의를 열었다.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에 실린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을 고스란히 수용한 투쟁방안을 활동지침으로 삼았다.(표 참조)

    범민련은 현재도 북한 원전을 학습자료로 사용한다. 올해 학습한 문건 중 하나가 김정일이 1995년 12월 25일 노동신문에 기고한 “혁명선배를 존대하는 것은 혁명가들의 숭고한 도덕 의리이다’라는 글이다. 김정일 명의로 노동신문에 실린 이 문건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이명박 정권의 마녀사냥”

    “사회주의운동의 력사는 혁명선배들을 존대하고 그들이 이룩한 혁명업적을 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갈 때 혁명이 승리적으로 전진하게 되며 혁명선배들을 저버리고 그들의 업적을 부정할 때에는 혁명이 중도반단되고 좌절되게 된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일부 나라에서 당과 국가의 지도적 지위를 차지한 기회주의자들에 의하여 혁명선배들을 모독하고 그들의 업적을 말살하는 배신 행위가 감행됨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의 명예가 훼손되고 사회주의의 영상이 흐려졌으며 끝내는 사회주의 제도 자체가 허물어지게 됐습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주체사상 확립 30주년 기념으로 다시 소개하기도 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노수희 구속과 범민련 수사를 ‘공안몰이’ ‘마녀사냥’으로 규정했다. 범민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종북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종북주의란 악의적이고 배타적이며 대결적인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민중의 삶과 민족의 자주권을 내다버리고 전쟁과 분단의 고통으로 빠뜨린 것은 청와대 권좌에 앉아 있는 집권자들의 골수에 박힌 종미(從美·미국 추종)와 종일(從日·일본 추종)이다. 호시탐탐 대륙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일본 자위대에 대북 군사정보까지 넘겨주겠다는 발상은 일제의 혹독한 압제와 미국의 내정간섭과 경제침략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6·15공동선언을 부정하고 종북소동과 마녀사냥으로 공안몰이를 하려는 광란의 질주를 막아야 한다.”

    범민련 해체파이던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대표는 “범민련 남측본부는 쇠락한조직으로 현실적 위협이 거의 없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해방정국에서 남로당 세력은 실제로 체제를 전복할 힘을 가졌습니다. 당시엔 사회주의라는 대안이 있었어요. 종북주의는 북한을 대안으로 여기는 것인데, 대한민국에 북한식 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다만 주사파가 대한민국을 매우 힘들게 할 수는 있다고 봐요.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 때 종북세력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면서 집요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2008년 광우병 시위 때도 조직력을 가동했고요. 김정은 집단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남쪽에 꽤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것도 문제이긴 합니다만 종북파는 국민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현실적 위협은 거의 없어요. 반미친북 민족주의가 종북보다 더 위험합니다. 영국 총리 아서 체임벌린은 제2차 세계대전의 2차 책임자예요. 그는 히틀러를 달래자고 했습니다. 처칠은 독일을 용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고요. 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시간을 줘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이 일어난 거예요. 나치주의자가 독일을 도와줌으로써 히틀러를 달래자고 했다면 유럽인들이 혹하지 않았을 겁니다. 체임벌린 같은 멀쩡한 사람이 그러니 사람들이 동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체임벌린이 히틀러 추종자냐? 아니죠. 민주통합당의 486은 체임벌린을 닮았어요. 그래서 위험합니다. 운동권 출신은 기본적으로 반미와 친북(민족주의) 성향을 가졌습니다. 앞서 말했듯 북한 추종자는 현실적으로는 위험하지 않아요. 그들의 행태를 보고 사람들이 어이없어하고 있지 않습니까? 486 정치인은 북한 핵의 위협과 북한 인권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북한 정권을 달래야 한다고 여깁니다. 체임벌린과 논리가 똑같아요. 처칠의 지향에 답이 있습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1990년대 중반 해체파-사수파 대결 때 명망가가 다 떠나고 이제는 골수분자만 남은 쇠락한 조직이다. 7월 13일 오전 두 번째로 남측본부 사무실을 찾았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하루 전 고가도로 밑에서 소주를 마시던 남자 셋은 이날도 같은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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