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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이웃사람’으로 돌아온 월드스타 김윤진

“배우는 내 인생의 축복, 새 작품 할 때마다 교훈 얻어요”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스릴러 ‘이웃사람’으로 돌아온 월드스타 김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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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월드스타

김윤진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연기 활동을 한 지도 어언 8년째. 그는 시즌별로 촬영하는 미국 드라마의 휴식기를 활용해 한국 영화에 출연해왔다. 그의 미국 진출에 물꼬를 튼 작품은 ABC-TV 드라마 ‘로스트(LOST)’였다. 2004년 방송을 시작해 2010년 시즌6를 끝으로 막을 내린 이 드라마는 세계 300여 개국에서 방영할 정도로 크게 히트하고 골든글로브 작품상까지 받았다. 드라마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계 미국인 ‘선화’를 열연한 김윤진도 제12회 미국배우조합상 TV시리즈 부문 앙상블연기상을 수상했다. ‘로스트’로 유명세를 타자 할리우드에서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대표적인 예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다. 제작진은 ‘아바타’의 파일럿 작업에 참여한 그를 여주인공감으로 점찍었지만 공교롭게도 ‘로스트’와 촬영 일정이 겹쳤다. 그는 “출연을 거절한 게 아니라 시간이 안 맞아 포기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작품이 좋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할리우드 진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죠. 그건 제 오랜 꿈인 걸요. 비록 ‘아바타’에 출연하진 못했지만 파일럿에 참여하며 좋은 경험을 했어요. ‘로스트’ 출연 역시 제 배우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죠. 어울리지 않게 월드스타란 칭호를 얻었잖아요. 드라마 한 편 했다고 월드스타라고 하니 민망하지만 그 말이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죠.”

어릴 적 그의 꿈은 “미국에서 배우로 성공하는 것”이었다. 서울 태생인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 뉴욕의 스테이튼 아일랜드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1996년 MBC TV 드라마 ‘화려한 휴가’로 데뷔하기 직전까지 14년을 살았으니 그의 영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인 건 놀랄 일도 아니다. 게다가 그는 뉴욕 예술고를 졸업하고 보스턴대와 영국드라마아카데미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연극무대에서 활동했다. 이미 준비된 ‘월드스타’였던 셈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8년 동안 영어로 연기를 해서 미국 TV나 영화에 당연히 출연하게 될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먼저 활동할 기회를 잡았죠. 운 좋게도 제 능력에 비해 과분한 기회를요. 처음엔 짐가방 하나 달랑 들고 한국에 왔는데 짐이 조금씩 늘어났어요. 어머니도 절 돌보려고 왔다 갔다 하다가 한국에서 사시게 됐죠. 한국에 정착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정말 계획에도 없던 일이 벌어진 거예요. 미국에서 배우 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이렇게 오래 연기생활을 하는 게 더 놀라워요. 한국어를 정말 못했거든요.”



▼ 미국에서는 한국어를 쓰지 않았나요?

“부모님이 집에서는 한국어를 쓰게 해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한자가 들어간 단어는 전혀 몰랐어요. ‘화려한 휴가’ 때는 대사가 많지 않은 역을 맡아서 한국말을 잘 몰라도 문제가 없었는데 ‘예감’이라는 드라마를 찍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버터 발음에 단어를 잘 몰라 엄청 헤맸어요. 특히 ‘~토대로’ 같은 한자어가 나오면 숨이 턱 막히는 거예요. 게다가 촬영 들어가기 20분 전에 쪽 대본이 나오던 시절이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또박또박 외우기만 했으니 연기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웠겠어요. 다행히 오래된 작품이라 재방송을 안 하더라고요. 감사한 일이죠(웃음).”

“무대만 서면 자신감 생겼어요”

▼ 배우를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굉장히 예민한 나이에 이민을 가서 미국 아이들처럼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게 창피했어요. 숫기도 없고 말도 안 통하니 학교에서 벙어리처럼 있다 오기 일쑤였죠. 보다 못한 엄마가 절 드라마 클럽에 보냈는데 그 덕에 중학교 때는 교내 뮤지컬 무대에 서곤 했어요. 그때까지도 발음이 원어민만큼 정확하진 않았는데 무대에 서면 자신감이 생겼어요. 영어도 못하고 친구도 없어서 만날 주눅 들었던 제가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고, 평소에 안 쓰던 목소리로 크게 노래를 부르고…. 제 잃어버린 목소리를 다시 찾은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연기에 빠져 ‘페임(Fame)’으로 유명한 뉴욕 예술고에 들어가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죠.”

‘페임’은 1980년 앨런 파커 감독이 제작한 동명의 영화를 2009년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로 뉴욕 예술고 학생들의 꿈과 사랑, 성공과 시련을 그렸다. 원작에서 팝가수 아이린 카라가 부른 주제곡 ‘페임’은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당시 롤 모델이 있었나요?

“그때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양 배우가 거의 없었어요. 맨 처음 본 동양 배우가 청룽(成龍)이에요. 더빙이 어색했지만 그래도 큰 화면에 동양 사람이 나오는 걸 보면 신기했고 나도 배우가 될 수 있겠구나싶었어요. 궁리(鞏?)는 저한테 대단한 우상이었죠. 소극적이던 제가 자부심을 느끼고 어깨를 펴게 만들었으니까요.”

▼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가요?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차별이 더 심한 것 같아요. 캔자스처럼 동양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서는 오히려 동양 사람을 신기하게 보죠.”

▼ 미국에 진출한 후 현지 교포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교포 2세, 3세는 영어를 잘하지만 부모 세대는 영어에 약해서 제가 나온다고 일부러 드라마를 더 챙겨 보진 않아요. 한국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DVD로 빌려보죠. 미국에 사는 동양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요.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LA)에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 인구의 5%도 안 돼요. 마케팅 효과를 보려면 전체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라틴계 미국인이나 흑인을 캐스팅하는 게 더 합리적인 거죠. 그 사람들은 같은 혈통인 라틴계 배우나 흑인 배우가 주연하는 영화는 다 보러가고 소비 패턴이 굉장히 적극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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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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